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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 'Police'가 없는 이유, 듣고나니 짠해졌다

중앙일보 2019.08.21 11:00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28)

19세기 초반의 정치인 다니엘 오코넬 이름을 딴 더블린 시내의 오코넬 스트리트. 카톨릭 해방을 이루고 아일랜드 자치에 기여한 오코넬은 우리의 세종대왕만큼 아일랜드인에게 추앙받는 영웅(좌). 2003년 아일랜드가 GDP로 영국을 넘어선 경제성장을 이루고 진정한 독립을 기념하여 세운 120m 높이의 더블린 첨탑(우). [사진 박재희]

19세기 초반의 정치인 다니엘 오코넬 이름을 딴 더블린 시내의 오코넬 스트리트. 카톨릭 해방을 이루고 아일랜드 자치에 기여한 오코넬은 우리의 세종대왕만큼 아일랜드인에게 추앙받는 영웅(좌). 2003년 아일랜드가 GDP로 영국을 넘어선 경제성장을 이루고 진정한 독립을 기념하여 세운 120m 높이의 더블린 첨탑(우). [사진 박재희]

 
“우리도 언젠가 광화문 네거리에 요런 기념탑 하나 세울 수 있기를!”
“그런 날이 오기를!”
 
잘 지낸다는 안부를 전하며 더블린 첨탑을 찍은 사진을 함께 보낸 후 이런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더블린 오코넬 거리 중심에 우뚝, 뾰족하게 솟아있는 스파이어 첨탑(The Spire)은 2003년 아일랜드 GDP가 영국의 GDP를 넘어서고 식민시대의 종지부를 찍었다는 기념으로 세워 올렸다. 120m 높이의 말 그대로 찌를듯한 그리고 찔리면 진짜 아플 것 같은 이 기념비가 처음엔 심미안이 없는 내 눈에 그리 멋지게 보이지 않았었다.
 
높은 건물이 없는 더블린 시내라 어디서든 눈에 쉽게 띈다고만 생각했는데 올여름, 내 나라의 상황이 특별한 시기를 지나고 있어서인지 이번 여행에서는 달리 보였다. 일본이 경제전쟁 선전포고라고 할 수출 무역 규제 조치로 우리나라를 찌른 직후라 문학과 낭만의 더블린보다는 식민지배 피지배국으로서의 아일랜드에 더 감정이입이 되었다.
 
크라이스트 처치에는 가난한 사람, 노숙자의 모습을 한 예수가 벤치에 누운 청동 조각품이 있다. 이 곳을 찾는 이들이 풍요로움에 불편함을 느끼며 주변과 이웃의 빈궁함을 생각하라는 작가의 의도에 멈추어 상생을 생각해본다. [사진 박재희]

크라이스트 처치에는 가난한 사람, 노숙자의 모습을 한 예수가 벤치에 누운 청동 조각품이 있다. 이 곳을 찾는 이들이 풍요로움에 불편함을 느끼며 주변과 이웃의 빈궁함을 생각하라는 작가의 의도에 멈추어 상생을 생각해본다. [사진 박재희]

1850년대 대기근을 상징하는 조형물. 800만이던 아일랜드 인구가 대기근을 기준으로 600만이 된다. 모든 농작물을 수탈당하고 감자로 연명하던 아일랜드인들에게 감자흉작은 죽음을 의미한다. 아사와 병사, 그리고 신대륙으로 난민이 되어 떠난 이민자로 인해 1/4의 인구가 줄었다. [사진 박재희]

1850년대 대기근을 상징하는 조형물. 800만이던 아일랜드 인구가 대기근을 기준으로 600만이 된다. 모든 농작물을 수탈당하고 감자로 연명하던 아일랜드인들에게 감자흉작은 죽음을 의미한다. 아사와 병사, 그리고 신대륙으로 난민이 되어 떠난 이민자로 인해 1/4의 인구가 줄었다. [사진 박재희]

 
지배당한 역사로 치자면 800년간 영국에 수탈당한 아일랜드보다 더한 나라도 흔치 않다. 아일랜드를 덮은 참나무는 철을 제련하는 연료였으니 지금으로 치면 석유자원만큼이나 군침이 도는 자원이었을 것이다. 12세기부터 시작된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800년간 지속해 오면서 영국인에 의해 아일랜드인들은 ‘게으르고 음흉하며 술에 취해 사는 흰털 원숭이’라고 묘사되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그런 영국인을 어떻게 견뎠을까? 아일랜드는 식민지 피지배국으로서는 처음으로 지배국을 넘어 더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지긋지긋하게 수탈당한 사람들이 영국을 향해 통쾌하게 날린 하이킥(X침이라고 하려다가 지면이라 표현을 바꾼다)을 바라보았다. 나는 스파이어에 손을 대고 주문을 걸었다. 대한민국이 아일랜드에 이어 식민지배국보다 더 잘사는 피지배국의 두 번째 경우가 될 거라고. 이번 아일랜드 여행이 시작부터 좀 무겁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는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1592년에 세운 대학이다. 9세기에 만들어진 켈즈 복음서를 포함하여 20만권이 넘는 고서를 소장한 고서박물관은 대표적인 관광지이기도 하다. [사진 박재희]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는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1592년에 세운 대학이다. 9세기에 만들어진 켈즈 복음서를 포함하여 20만권이 넘는 고서를 소장한 고서박물관은 대표적인 관광지이기도 하다. [사진 박재희]

 
‘Poblacht na hÉireann 대체 뭐라고 적은 거지? 이게 어느나라 말이야?’
 
아일랜드에 도착한 후 제일 처음 나의 관심을 잡은 건 간판, 표지판이었다. 여행자가 표지판에 민감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좀 다른 관심, 즉 표기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다. 아일랜드는 영어를 쓰는 나라다. 그런데 더블린 공항에 도착하니 영어보다 먼저 눈에 뜨인 것은 읽기도 힘든 낯선 언어였다. 잠시 멍한 기분이 되었는데 아일랜드가 800년간 영국 지배를 받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낯선 표기는 게일어, 아일랜드 사람들이 빼앗겼던 언어인 것이다.
 
모든 표지판은 아일랜드어(Gaeilge) 그리고 영어를 함께 적는 방식이다. 19세기 이후 민족의식이 높아지고, 영국에서 독립한 후 되찾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우리말’을 이제 자기들 말이 되어버린 지배자의 언어, 영어 앞에 세우고 있었다.
 
800년 영국 지배를 받으며 잃어버린 말 게일어는 영어와 병기된다. 국민의 90%가 게일어를 읽고 말하는데 불편함을 느끼지만 계속되는 '우리말 찾기' 운동이라고 보여진다. [사진 박재희]

800년 영국 지배를 받으며 잃어버린 말 게일어는 영어와 병기된다. 국민의 90%가 게일어를 읽고 말하는데 불편함을 느끼지만 계속되는 '우리말 찾기' 운동이라고 보여진다. [사진 박재희]

 
“학교에서 게일어(아일랜드어)를 배워. 공무원 시험을 치려면 필수과목이기도 하고. 근데 졸업하고 취직하고 나면 안 쓰니까 다 잊어버려.”
 
영국 통치를 겪으며 아일랜드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잃고 잊었다. 더블린에서 만난 친구 로스(Ross)가 마치 더듬더듬 시를 외우듯 아일랜드어를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당했던 일제 지배를 떠올렸다. 36년 일제 식민지였던 동안 창씨 개명을 해야했고 우리말은 금지되고 우리 말을 쓰면 매질 당했다.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가 고문 끝에 죽임을 당하는 시대를 겪지 않았나. 만약 36년이 아니라 800년이었다면 우리에게 말과 글은 과연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섬뜩했고 그날부터는 공연히 아일랜드어 표기가 애틋했던 것 같다.
 
공항, 거리, 공공기관, 관광지, 캠퍼스 내 표지판 할 것 없이 모두 아일랜드어로 쓰고 뒤에 영어를 쓴다. 이제는 자기들도 잘 모르는 ‘우리말’을 모든 사람이 다 편히 아는 영어로 해석해주는 모양새로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들은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이 며칠 지났을 무렵 로마자 표기 없이 아일랜드 말로만 쓰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유일하게 단 하나의 단어가 영어 없이 게일어로만 쓰인다. Garda 경찰이다.
 
Police는 세계 공용어라 할 만큼 많은 나라에서 쓰는 말이다. 비영어권 나라의 경찰복에도 Police 표기가 익숙할 정도인데 영어가 공용어인 나라에서 경찰만 영어 없이 Garda라니? 의문과 호기심으로 아일랜드를 여행하는 동안 열심히 찾아보았다. 경찰 Garda옆에 Police라는 영어를 쓴 곳은 아일랜드 어디에도 없었다. 영어 Police는 쓰지 않는 단어였다. 왤까? 왜지? 궁금했다.
 
“왜 모든 말은 다 영어로 쓰면서 경찰 Police은 쓰지않는거야?”
“우리는 그 단어를 싫어해. 너무 나쁜 뜻이 담겨있어서 싫어해. 쓰지않아.”
 
로스는 그 대답을 하면서도 Police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고 그 단어라고만 했다. 그 순간 궁금증이 풀렸다. ‘Police는 아일랜드 사람들에게는 ‘순사’ 느낌인 거야.’ ‘일본 순사’ 잡아가는 사람, 때리는 사람, 우리를 억울하게 하고 공포에 떨게 했던 그 대상 말이다. 공인된 단체나 기관의 해석을 들은 것이 아니라 진위야 알 수 없지만 난 그때 알아버렸다. 아일랜드인들에게 Police는 우리에게 '일본 순사' 인 거라고! 일본강점기를 직접 당한 적 없는 내게도 ‘순사’라는 단어는 몸서리쳐지는데, 800년 영국 경찰 Police에게 당한 아일랜드에서 그 단어가 금기인 것이야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영어와 아일랜드어를 동시에 쓰며 모두 병기하지만 Garda 경찰은 영어로 말하거나 쓰지않는 단어이다. Police 경찰은 일종의 금기어인 셈이다. 800년간 쓰지않아 사라졌던 게일어는 아일랜드의 국격이 상승하고 꾸준한 노력으로 인해 2007년 유럽연합의 공식어로 지정된다. [사진 박재희]

영어와 아일랜드어를 동시에 쓰며 모두 병기하지만 Garda 경찰은 영어로 말하거나 쓰지않는 단어이다. Police 경찰은 일종의 금기어인 셈이다. 800년간 쓰지않아 사라졌던 게일어는 아일랜드의 국격이 상승하고 꾸준한 노력으로 인해 2007년 유럽연합의 공식어로 지정된다. [사진 박재희]

 
“우리나라 시인도 우리말로 시를 썼다고 고문을 당하고 죽었어. 난 그 말이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 나는 로스에게 말해주었다. 우리도 일본식으로 이름까지 바꿔야 했다고, 우리도 말을 잃을 뻔했다고, 800년이 지난 후에도 게일어를 지킨 사람들이 남아있고 그 말을 다시 찾아내는 게 너희가 대단하다고.
 
기네스 맥주로 건배한 후 난 로스에게 엄지를 두 개 올려주었다. 그날 이후에 아일랜드를 여행하는 동안 Garda 경찰차만 보면 윤동주가 떠올라 뭉클했다. 어쩌겠는가 떠오르는 것을. 시작부터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번 여행은 어쩔 수 없이 계속 떠오르고 뭉클하고 이렇게.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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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필진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 한량으로 태어나 28년을 기업인으로 지냈다. 여행가, 여행작가로 인생2막을 살고 있다.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나는 여행자다. 길에서 직접 건져올린 이야기, 색다른 시각으로 비틀어 본 여행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여정을 따라 함께 걸으며 때로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 생생한 도보 여행의 경험을 나누며 세상을 깊이 여행하는 길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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