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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콜래트럴 데미지

중앙일보 2019.08.21 00:42 종합 27면 지면보기
최지영 산업2팀장

최지영 산업2팀장

일본이 지난달 1일 한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 꼭 필요한 3대 품목의 수출을 규제하며 시작된 양국 갈등이 50일을 넘겼다. 지나고 보니, 일본 무역 규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IT 기업이 아니었다. 일본산이거나, 일본과 관련이 있거나, 일본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 제품을 파는 기업들임이 드러나고 있다. 한·일 갈등으로 촉발된 일본제품 불매 운동은 국내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불매 운동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 차 불태우기 같은 정부가 부추긴 중국의 폭력적 불매 운동을 목격했던 한국 소비자들은 “정부는 빠져라, 일본산만 골라내는 핀셋 불매 운동을 하겠다, 원산지의 0.01%까지 따지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하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 줄타기를 잘하고 있던 불매 운동이 의도치 않은 피해자를 만들어 낼 조짐도 보인다.
 
롯데그룹은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3조원 이상의 손해를 본 데 이어 이번엔 일본 이슈가 터졌다. 롯데그룹 측은 “일본 기업이냐, 한국 기업이냐를 신동빈 회장이 나서서 밝히라”는 일부 목소리에 난감해하는 상황이다. 신 회장이 이미 지난해 2015년 8월 3일 인천공항에서 한 기자 간담회에서 “롯데는 한국 기업이다. 매출의 95% 이상이 한국에서 발생한다”고 명확하게 밝혔기 때문이다. 그는 같은 해 9월 17일 국회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도 출석해 “롯데그룹은 대한민국 기업이다. 한국 상법에 따라 기업으로 태어나서 세금도 한국에서 내고 있고, 근무하고 있는 사람도 한국인”이라고 이미 답했다.
 
지난해 롯데그룹이 한국 정부에 납부한 법인세는 1조5800억원이다. 한국에서 올린 매출이 95조원, 직접 고용한 인원만 13만명이다. 반면 일본서 올리는 매출은 5조원, 직원은 5000여명이다.
 
재일교포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일본에서 번 돈을 한국에 들여와 투자할 때 형성된 호텔롯데 지분구조는 일본 지분율을 50% 이하로 낮추려 했다. 국내 증시 상장을 통해서다. 하지만 이 작업은 2016년부터 시작된 검찰 수사 등 외부 요인으로 일단 멈춘 상황이다.
 
‘일본계’라는 낙인에 뜬금없이 시달리고 있는 또 다른 기업으로 쿠팡이 있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2015년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를 투자한 이후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를 통해 2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소프트뱅크와 비전펀드가 가진 쿠팡 지분을 30% 수준으로 추정한다.
 
심상치 않은 여론에 쿠팡 측은 “국내에서 설립돼 성장했고 사업의 99% 이상을 국내에서 운영한다”며 “국내에서 2만5000여명의 일자리를 만들었고, 연간 1조원의 인건비를 지급한다”는 입장을 부랴부랴 내놨다. 사실 비전펀드의 최대 출자자는 사우디 정부계 투자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와 아부다비 무바달라 투자공사다. 이처럼 스타트업 투자 자금은 국적이 흐릿하다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비전펀드를 리드하는 손 회장이 온갖 차별을 딛고 일본 사회에서 성공한 재일교포 3세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잎새주를 만드는 보해양조와 처음처럼을 만드는 롯데 주류도 각각 ‘일본에 매각됐다’ ‘일본 아사히가 지분을 갖고 있다’는 루머에 시달리다가 최근 공식 해명을 내놨다. 경쟁 회사에 흠집을 내는데 일본계라는 헛소문을 악용하는 고도의 마타도어가 소비자의 순수한 불매운동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진 않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
 
‘콜래트럴 데미지(Collateral Damage)’는 전쟁에서 군인들이 싸우는 와중에 속절없이 당하는 민간인 피해를 이르는 말이다. 콜래트럴 데미지를 최소화하려는 현명한 소비를 기대한다.
 
최지영 산업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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