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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2035] 전 수석님, 현 교수님, 곧 장관님의 냉동칸

중앙일보 2019.08.21 00:37 종합 29면 지면보기
문현경 탐사보도팀 기자

문현경 탐사보도팀 기자

냉동기술은 우리를 시간의 제약에서 해방해 준 축복의 기술이다. 오래 머물러선 안 되는 냉장칸은 ‘털어먹기’가 필요하지만, 냉동칸의 음식들은 늘 푸른 소나무처럼 변함없이 기다려줄 줄을 안다. 아주 가끔 들여다볼까 말까 할 만큼 안심이 돼, 때로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잊을 지경이다. 그곳은 나의 편리를 위해 시간이 멈추는 공간이니까.
 
교육도 냉동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폴리페서들이다. 그들은 교수라는 자리를 얼려뒀다 원할 때 꺼내먹고 싶어한다. 나는 밖에 나가서 외식하고 돌아오마, 내 자리는 이대로 비워둬라. 나는 더 값지고 맛난 것,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것,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나는 음식들을 먹고 올 테니, 참고 기다려라.
 
부모나 돈 덕으로 교수 된 게 아니라면 제힘으로 정당하게 얻은 자리, 휴직도 권리인데 안 될 것도 없다. 방학 중 월급이야 교육노동자들 다 그런 거 아닌가. 무엇보다 대학이란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잠시 머물러야 하는 곳’ 아니었던가. 교수도 일자리를 찾아 이곳에 있을 뿐이란 냉랭한 사실은, 사회에 나아가기 전 학생들이 배워야 할 진짜 교훈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대학이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 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연구’하기 위한 곳이란 걸, 아는 학생들이 있어서 문제다. 학생들은 그를 ‘부끄러운 동문’으로 뽑아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대가 없는 선택을 하는 교수들은, 어떤 대가로도 교수를 선택할 수 없는 학생들을 선택권력의 가장 아래 무기력한 곳으로 밀어 내린다. 부족함 속에서 누군가는 대학 교육에 실망한다. 허탈감 속에서 누군가는 정치 혐오를 키운다. 연일 이슈가 되는 ‘조국’이란 이름 뒤에 ‘전 수석님·현 교수님·곧 장관님’ 중 무엇을 붙여야 할지 혼란스러운 이들도 있다.
 
두고 간 새 변해버린 게 많다. 냉동은 실패한 욕심이다. 냉동이 된다 한들 ‘교수-수석-교수-장관-교수’는 좀, 냉동식품 뒷면의 문구를 생각나게 한다. ‘이미 냉동된 바 있으니 해동 후 재냉동하지 마시오.’
 
문현경 탐사보도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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