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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법 바꾸면 뭐하나, 탈북모자 못 챙긴 무책임 행정

중앙일보 2019.08.21 00:04 종합 18면 지면보기
박해리 복지행정팀 기자

박해리 복지행정팀 기자

“탈북모자는 임대 아파트에 거주했지만, 요금 연체 통보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담당자)
 
“그럼 이들이 거주한 곳은 공공임대 유형 중 어디에 속하는 것이죠?” (기자)
 
“7가지 유형이란 게 어떤 것이죠? 알려줄 수 있나요?” (담당자)
 
질문은 단순했다. 숨진 지 두어 달 만에 발견된 서울 관악구 ‘봉천동 탈북 모자’ 한모(42)씨의 임대주택 유형이 궁금했다. 하지만 서울도시주택공사(SH)·서울시에 수차례 문의했지만 확인하기 쉽지 않았다. 서로 말이 엇갈리거나 자꾸 말이 바뀌었다.
 
송파 세 모녀 사건과 증평 모녀 사건 이후 월세·전기요금·수도요금 등을 석 달 연체하면 복지부에 자동 통보돼 방문 확인하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이 마련됐다. 지난해 12월 공공주택특별법 시행령을 개정해 공공임대 아파트를 7가지로 분류했고, 이 중 영구·국민·매입 등 세 가지 유형의 공공임대는 공과금 체납 의무 통보대상으로 정했다.
 
한씨는 대상자에 속했지만 복지부에 통보되지 않았다. 한 씨의 아파트는 재개발 단지의 임대아파트로 지난해 12월 법령이 바뀌면서 월세 체납 통보 대상인 국민임대 유형에 포함됐다. 하지만 정작 담당 기관들은 개정된 법령을 잘 모르고 있었다. 엉뚱하게도 한씨의 집을 ‘재개발 임대 아파트’라고 분류해놓고 통보 대상에서 누락했다.
 
19일 기자가 SH에 문의하자 그제서야 법령을 찾아보고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복지부 탓을 했다. 담당자는 “지난 1월 복지부에서 협조 공문이 왔을 때 용어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아서 과거 분류체계로 적용했다”며 “용어를 정확하게 표현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서울시 담당자는 “재개발임대 아파트는 요금 연체 통보 대상이 아니다”라고 과거 법령만 반복했다.
 
복지부도 다를 게 없다. 지난달 31일 한씨 모자 사망이 알려진 뒤 SH·서울시와 같은 설명을 반복했다. 사건에 사회적 관심이 커지자 원인 파악에 나섰고 그제서야 SH의 잘못을 찾아냈다. 초기에 “재개발 임대아파트라서 통보되지 않았다”고 잘못 설명한 부분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법령을 바꾸면 뭐하나. 주무부처나 기관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만약 법령대로 조치했다면 한씨 모자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한씨 집 같은 재개발 임대 아파트가 서울에만 5만~6만 가구가 있다. 이들도 여전히 사각지대에 빠져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공직자들이 책임있게 일하지 않으면 비극이 되풀이 될 것이다.
 
박해리 복지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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