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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가 극찬한 신인감독 윤가은 "'우리집' 아이들 '우리들'과 또 달랐죠"

중앙일보 2019.08.20 10:00
영화 '우리집' 한 장면. 맨 왼쪽이 주인공 하나다. 유미, 유진 자매네 옥탑에서 즐거운 물놀이.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우리집' 한 장면. 맨 왼쪽이 주인공 하나다. 유미, 유진 자매네 옥탑에서 즐거운 물놀이.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살면서 뭐가 옳은지 모르겠는 때 단순하게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찾는 힘은 아이가 훨씬 강한 것 같아요. 어른들은 복잡하게 생각하고 회피하지만, 아이들은 삶의 경험 자체가 많지 않아선지 힘들어도 용감하게 문제를 관통하죠. 그 마음을 항상 되찾고 싶어요.”

장편 데뷔작 ‘우리들’에 이어 새 영화 ‘우리집’(22일 개봉)으로 돌아온 윤가은(37) 감독의 말이다. 3년 전 전작은 초등학교 4학년생들의 ‘왕따’ 문제를 아이들 시선에서 섬세하게 다뤄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30여 개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등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작은 영화로선 고무적인 국내 5만 관객에 더해, 지난해부터 초등 4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됐다. 영화 속 장면들을 보고 등장인물의 마음을 헤아리며 뒷이야기를 상상하는 단원에서다. 
두 번째 장편 ‘우리집’은 가족을 지키려는 소녀들의 성장담이다. 개봉 전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윤 감독은 “‘우리들’ 땐 (아이들이 주인공인) 이런 영화는 시장도 없다, 만들지 말란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그런데 누군가 봐주고 평가해주셨다. 시도를 더 확장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아이 눈높이로 가족 다룬 '우리집'
초등교과 실린 '우리들' 감독 신작
부모 불화·부재…아이들 모험 그려
봉준호 "햇살 가득 명랑한데 슬프다"
아역 배려한 촬영 수칙 현장서 엄수

“‘우리들’이 아이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엔 외부 갈등, 저마다의 가족 문제를 ‘짊어진’ 아이들의 마음 씀씀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봉준호 "명랑한데 아프다" 극찬

영화 '우리집' 촬영 현장에서 윤가은 감독(오른쪽)이 주인공 하나 역의 김나연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하나를 열두 살로 정한 이유를 그는 "알 만큼 아는데 아직은 가족이 포기가 안 되는 시기여서"라며 "6 학년만 돼도 ‘엄마 ‧ 아빠 나한테 피해만 주지 마’란 식으로 냉소적이 된다. 5학년은 가족 문제를 온전히 내 문제로 끌어안는 마지막 시기라고 느꼈다“고 설명했다.[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우리집' 촬영 현장에서 윤가은 감독(오른쪽)이 주인공 하나 역의 김나연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하나를 열두 살로 정한 이유를 그는 "알 만큼 아는데 아직은 가족이 포기가 안 되는 시기여서"라며 "6 학년만 돼도 ‘엄마 ‧ 아빠 나한테 피해만 주지 마’란 식으로 냉소적이 된다. 5학년은 가족 문제를 온전히 내 문제로 끌어안는 마지막 시기라고 느꼈다“고 설명했다.[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왕따’에 이어 왜 가족을 다뤘나. 
“가족은 어른이 돼서도 어려운 문제고 아이들한텐 더 크게 받아들여진다. 처음 제목은 ‘소라’라고 내 경험에서 출발했다. 가족 문제를 겪던 중학생 주인공이 더 심각한 가정 내 폭력에 노출된 어린 친구를 구하는 얘기였다. 어릴 적 이웃으로 만났지만 내 인생이 너무 힘들어서 도움 주지 못했던 아이가 늘 마음이 쓰였다. 당시엔 못한 일들을 영화로 실현하고 싶었다.”
 
영화 설정이 많이 바뀌었는데.  
“1년 정도 붙들고 있었는데 깊이 들여다볼수록 너무 아팠다. 실제 어린이‧청소년 배우를 이 상황에 놓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끌어낼 수 있을지 감이 안 왔다. 마침 아동학대를 다룬 다른 영화‧드라마가 제작 중인 걸 알게 됐고 굳이 나까지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에 이어 '우리집'(사진)도 여름방학이 무대다. 윤가은 감독은 "여름을 무척 좋아한다"면서 "덥지만 뭔가 피어나는, 솟구치고 변화할 수 있는 느낌을 주는 계절"이라고 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우리들'에 이어 '우리집'(사진)도 여름방학이 무대다. 윤가은 감독은 "여름을 무척 좋아한다"면서 "덥지만 뭔가 피어나는, 솟구치고 변화할 수 있는 느낌을 주는 계절"이라고 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주인공은 열두 살 하나(김나연). 부모의 잦은 다툼으로 고민하던 그는 원치 않게 이사 갈 처지에 놓인 이웃의 어린 자매 유미(김시아)‧유진(주예림)을 우연히 돕게 되며, 감춰왔던 자신의 속마음과 마주한다. 맞벌이하는 하나의 부모는 육아로 인한 희생을 서로 저울질하기 바쁘고, 어린 유미는 늘 집에 없는 부모 대신 동생 유진을 돌보는 게 벅차다. 그렇게 삐걱대는 가족들의 모습은 익숙해서 더 씁쓸하다.  
미리 본 봉준호 감독은 “햇살 가득 명랑한데 가슴 아픈 영화”라며 윤 감독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더불어 아역배우를 스크린 위에 살아 숨 쉬게 하는 ‘3대 마스터’”라 칭했다. 그는 ‘우리들’ 속 배우 장혜진의 엄마 연기에 반해 ‘기생충’에 캐스팅했었다.
윤 감독은 “어른 중심 작품들을 보면 아이들이 현실보다 너무 약거나 너무 눈치없게 그려져 안타까웠다”면서 “소외된 약자로서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순간을 겪어내는지 그리고자 했다”고 밝혔다.
 

훗날 추억이 될 소중한 현재의 순간들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들'(2016)에서 전학생 지아(설혜인)와 가까워지는 선(최수인). 두 사람 다 '우리집'에도 카메오로 출연했다. [사진 엣나인필름]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들'(2016)에서 전학생 지아(설혜인)와 가까워지는 선(최수인). 두 사람 다 '우리집'에도 카메오로 출연했다. [사진 엣나인필름]

‘우리집’에서 아프고 외로운 아이들은 서로에게 위로가 돼준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 핸드헬드로 촬영해, 어른들은 화면 밖으로 잘려나가기 일쑤다. 세 아이는 햇살 작열하는 옥탑 작은 욕조에서 멱을 감고, 외딴 강가 텐트에 나란히 누워 이야기꽃을 피운다. 장면 장면이 훗날 추억이 될 소중한 순간으로 아름답게 담긴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 1970년대 사진용 렌즈를 활용, 채도를 한껏 높여 필름사진의 향수 어린 색감을 살렸다. 하나의 오믈렛 비법을 담은 요리책, 폐품으로 지은 집은 아역배우들이 직접 만든 것을 미술팀이 조금 매만졌다.  
'우리집'에서 왼쪽부터 하나와 유미, 유진 자매가 외딴 텐트에서 하룻밤 청한 단란한 모습.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우리집'에서 왼쪽부터 하나와 유미, 유진 자매가 외딴 텐트에서 하룻밤 청한 단란한 모습.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사랑스런 아역 아닌 존재감 두둑 배우 찾았죠

영화는 1980년대 태어나 90년대 자란 아이가 바라본 2000년대생 아이들의 이야기다. 1982년생인 윤 감독은 “시대가 정말 빠르다. 심지어 ‘우리들’ 때와 지금 아이들이 또 다르다”고 했다. “나 때는 좋아하는 가수를 기본 3~4년 꾸준히 좋아했다면 지금 아이들은 취향도 자주 바뀌고 감정도 다양하다”면서 “연기한다던 친구들도 요즘엔 꿈이 다들 ‘크리에이터’”라고 전했다.  
왼쪽부터 오빠 찬과 하나. 찬 역의 안지호는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 '보희와 녹양'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왼쪽부터 오빠 찬과 하나. 찬 역의 안지호는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 '보희와 녹양'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그의 아역배우 발굴법은 독특하다. 오디션에서 그는 즉흥극에 앞서 가족‧학교‧친구 같은 일상 이야기를 먼저 듣는다. “사랑스런 아이가 아니라 자기 존재감이 분명한 사람, ‘나’로서 존재하는 배우를 찾는다”고 했다. 끌레르몽페랑단편영화제 그랑프리를 거머쥔 ‘손님’(2011)의 정연주, 베를린영화제 제너레이션 Kplus 부문 수정곰상 수상 단편 ‘콩나물’의 김수안에 이어 이번 영화의 주인공들도 그렇게 발탁했다.
“(김)나연이는 실제 하나처럼 요리를 좋아해서 놀랐어요. 엄마 생신 때 미역국을 직접 끓일 만큼요. (김)시아는 영화 ‘미쓰백’ 개봉 전에 캐스팅했는데, 실제 동생이 셋이나 있어요. 살뜰하게 맏이 노릇을 하면서도 순하고 여리여리한 느낌이 신선했죠. 깡이 센 캐릭터로 생각했던 유미는 설정 자체를 바꿨어요. 막내 (주)예림이는 다른 드라마(‘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 등) 스케줄도 있었지만, 배우로서 뭘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영화 '미쓰백'에선 학대 아동을 연기한 김시아 배우(오른쪽). 이 역할로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샤름엘셰이크아시아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영화 '미쓰백'에선 학대 아동을 연기한 김시아 배우(오른쪽). 이 역할로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샤름엘셰이크아시아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훌쩍 자란 '우리들' 배우들 '우리집' 카메오 

어린이 배우를 위한 아홉 가지 촬영 수칙도 세웠다. ‘성인과 동등하게 보라‘ ‘가벼운 접촉도 조심하라’ ‘아이들은 매 순간 성인 여러분의 모든 것을 배우고 있다’ 등이다. 윤 감독은 “같은 아이여도 A배우, B배우가 완전히 다른데 머릿속으로 어린아이라고 퉁쳤다가 실수한 적이 있다”면서 “‘우리들’과 달리 이번엔 배우들의 연령대가 달라 가까워지는 데 시간 걸리는 걸 저 혼자서 조급해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촬영은 배움의 연속”이라고 했다.  
‘윤가은 월드’에서 아이들은 사랑하고 아파하며 성장한다. ‘우리집’엔 ‘우리들’의 주인공들도 카메오 출연했다. 전작에서 4학년이던 아이들은 이제 중학생이 됐다. 언젠가 ‘우리’ 3부작이 완성되면 하나와 유미‧유진이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윤 감독은 “정말 3부작을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다는 아니지만 아직도 말 못하던 한두 살 때 기억이 놀랄 만큼 선명하거든요.” 그는 “누군가 사랑 이야기, 호러를 좋아하듯 아이들 세계를 좋아하는 건 내 취향인 것 같다”고 했다.
“자라면서 강렬하게 아프고, 슬프고 외로웠던, 못다 한 내 이야기가 아직 많아요. 관객이 찾아주시고 아이들이 기회를 준다면 꾸준히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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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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