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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로 꽃무늬가 돌아왔다

중앙일보 2019.08.20 05:01 종합 23면 지면보기
올해 상반기를 관통한 최고의 트렌드 키워드는 ‘뉴트로(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였다.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에게 복고는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과거의 유산을 낭만적으로 재해석한 다양한 유행이 만들어졌고, 그 중 하나가 식탁 위 꽃무늬의 귀환이다.  

'뉴트로' 트렌드 맞춘 클래식 유행
배달음식도 멋지게 꾸며주는 매력
엄마가 물려준 그릇과도 잘 어울려

지난 2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세계 최대 소비재 전시회 ‘암비안테(Ambiente)’에 참여했던 한국도자기 서민영 디자인실 차장은 “명품 식기 브랜드 대부분이 화려한 꽃무늬 제품을 신상품으로 대거 출품했다”며 “특히 오래 전에 본 듯한 클래식한 꽃무늬가 특징이었다”고 전했다.    
꽃무늬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싶지만 디자인 세계에선 그렇지 않다. 늘 있어왔지만 시대별로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던 게 꽃무늬다. ‘할머니·엄마의 찬장에서 본 것 같은’ ‘오래된 벽지 무늬를 본 듯한’ 등의 수식어가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동안 식기 브랜드에선 북유럽 스타일이 인기였다. 포슬린을 소재로 한 사기그릇이 주를 이뤘고 다양한 파스텔 톤 배경에 무늬는 자제한 심플한 디자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화려한 꽃무늬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를 두고 서 차장은 “요즘 젊은층은 어떻게 만들어먹을까 보다 어떻게 담아먹을까를 더 고민하는 세대”라며 “꽃무늬는 배달음식조차 화사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자기 주현정 이사 역시 “꽃무늬는 친숙함이 특징”이라며 “다른 무늬 식기들과 어울렸을 때도 자연스럽기 때문에 활용 폭이 넓다”고 했다. 그는 덧붙여 “시대를 달리해 엄마가 쓰던 꽃무늬 그릇과 딸이 새로 산 꽃무늬 그릇을 함께 식탁에 올려도 자연스러운 게 꽃무늬 식기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로 창립 76년을 맞은 한국도자기의 베스트셀러 제품들을 통해 우리 식탁에 올랐던 시대별 다양한 꽃무늬 디자인을 살펴봤다. 한국 도자기는 1973년 동양 최초로 본차이나 도자기를 개발했고 이후 국내에서 본차이나 식기를 자체 대량생산해온 유일한 기업이다.      
 
 1960년대 황실장미. 우상조 기자

1960년대 황실장미. 우상조 기자

 1960년대 황실장미. 우상조 기자

1960년대 황실장미. 우상조 기자

1960년대 황실장미  
이때만 해도 식기 제품들은 본차이나가 아닌 흙으로만 구운 도기 제품들이었다. 때문에 우유 빛깔이 나는 본차이나와는 달리 식기들도 백자 같은 흰색이었다. 전사(그림을 옮긴 일종의 스티커를 사람 손으로 일일이 식기에 붙이는 과정)를 위한 꽃무늬도 우리 기술로는 부족해 영국에서 수입했다. 집집마다 장식장에 모셔두고 아버지 손님 접대 때만 내다 썼을 법한 추억 속의 제품이다.  
 
70년대 은방울꽃. 우상조 기자

70년대 은방울꽃. 우상조 기자

70년대 은방울꽃  
73년에 고 육영수 여사가 의뢰해서 제작한 본차이나 식기 세트다. 그때까지 청와대에서 일본 도자기를 사용했음을 알고, 육 여사가 한국도자기에 직접 부탁해 개발하게 됐다. 식기에 그려진 은방울꽃 무늬는 육 여사의 모교인 배화여고 배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영국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이 결혼식 부케로 사용한 후 은방울꽃은 국내에서도 젊은 신부들이 좋아하는 꽃이 됐지만, 도자기 업계에선 우유 빛깔 본차이나에 깨끗한 흰색 꽃을 표현하기가 어려워 꽤나 까다로운 무늬로 통한다.      
 
80년대 와일드 플라워. 우상조 기자

80년대 와일드 플라워. 우상조 기자

80년대 와일드 플라워
대다수 호텔에서 앞다퉈 구매했던 인기 제품이다. 꽃무늬 종류나 색이 화사하고 과감해진 것도 특징이지만 테두리·뚜껑·손잡이 등에 일일이 띠를 두른 디자인이 세련됐다. 사람 손으로 일일이 전사해야 하는 공정 상 이렇게 문양이 많고, 띠까지 두르려면 섬세한 정성이 필요하다. 한국도자기는 지금도 제품 생산에 필요한 총 29개의 공정 중 상당부분을 수작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서양의 야생화를 그렸지만 색은 한국 고유의 오방색인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을 사용해 우리 식탁과 잘 어울렸다.  
 
90년대 로열 로즈. 우상조 기자

90년대 로열 로즈. 우상조 기자

90년대 로열 로즈
60년대 히트작이었던 황실 장미를 재현한 제품이다. 영국의 애프터 눈 티세트를 보는 듯한 느낌은 실제로 당시 영국에서 유행하던 트렌드를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00년대 웨딩마치. 우상조 기자

2000년대 웨딩마치. 우상조 기자

2000년대 웨딩마치
당시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패션 디자이너 고 앙드레 김과 협업한 것이다. 앙드레 김 선생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순백의 웨딩드레스와 그가 생전에 좋아했던 로맨틱한 장미 무늬를 조합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실크 웨딩드레스 느낌을 살리기 위해 국내에선 처음으로 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나는 흰색 펄을 사용했다.  
 
2019년 마고. 우상조 기자

2019년 마고. 우상조 기자

 2019년 마고. 우상조 기자

2019년 마고. 우상조 기자

 2019년 마고. 우상조 기자

2019년 마고. 우상조 기자

2019년 마고  
한국도자기 프리미엄 브랜드 ‘프라우나’가 올해 2월 암비안테에서 선보이면서 외국 바이어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은 제품이다. 수선화과의 아마릴리스·텐드로븀·프리지아 등을 압화한 것처럼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화이트 돌출효과까지 가미해 실제로 꽃잎을 만졌을 때와 같은 입체감이 느껴지는 게 특징이다. 모든 식기에 꽃무늬를 넣지 않고, 민무늬 접시와 머그 컵 등도 디자인해 여러 개를 겹쳤을 때 다양한 느낌이 나도록 구성한 아이디어도 돋보인다.    
60년대부터 해외 수출을 시작한 한국도자기는 2004년부터 암비엔테에 참가해 덴마크·영국 등에 많은 양을 수출하고 있다. 프라우나는 제작물량의 90%가 수출되는 제품으로 영국·두바이 왕실 및 로마 교황청에도 납품했다. 또한 두바이 7성급 호텔인 버즈 두바이 레스토랑을 포함한 중동 지역 및 미국 블루밍데이즈 백화점, 일본 와꼬백화점, 영국 헤로즈 백화점 등 해외 유명 백화점에도 입점해 최고급 명품 식기로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서양의 명품 식기들이 한국에 진출하기 위해 한식 반상기 세트를 만들어 국내 고객을 공략하는 요즘, 한국도자기는 60년대부터 서양 식기를 제작·수출하면서 한국 도자기의 우수성을 세계 시장에 알려왔다. K팝 다음 주자로 꼽히는 K라이프의 선구자로 76년을 묵묵히 걸어온 것이다.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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