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국가 R&D 중추’ 과기부 15년새 네 번 이사, 2년 뒤 또 짐싼다

중앙일보 2019.08.20 00:05 종합 2면 지면보기
유영민 과기부 장관(앞줄 오른쪽 여섯째)이 19일 세종시 어진동 과기부 청사에서 참석자들과 현판 제막식을 마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뉴스1]

유영민 과기부 장관(앞줄 오른쪽 여섯째)이 19일 세종시 어진동 과기부 청사에서 참석자들과 현판 제막식을 마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뉴스1]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현판식을 하고 ‘세종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과기정통부가 들어선 건물은 정부세종청사 바로 옆 민간 건물인 세종파이낸스센터 2동 3~6층이다. 이날 이전 완료한 과기정통부 청사는 2년짜리 임시 거처다. 이사비에만 130억원이 들었고, 매년 임대료 33억6000만원을 내야 한다.
 

세종 이전 시한 탓 임시거처 입주
정권 바뀔 때마다 이사·통폐합
과천→광화문→과천→과천→세종
이사비용 한번에 130억원 들어

2021년 말 정부세종청사에 새 건물이 완공되면 다시 또 짐을 싸야 한다. 과기정통부는 왜 정부세종청사 새 건물이 완공되기도 전에 엄청난 혈세(血稅)를 들여가며 임시청사로 들어갔을까. 1차적 이유는 2017년 10월 개정된 행복도시법과 지난해 3월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가 만든 이전 기관 고시 때문이다. 고시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2019년 8월까지 이전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그간 다른 부처는 세종으로 이사했는데 왜 과기정통부만 내려오지 않느냐는 비판도 많았고, 어차피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2020년 4월 21대 총선 전에 이전을 완료해야 충청권 인심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 청사는 지난 15년 사이 이미 네 번이나 이사했다. 과천청사에 있던 과학기술부는 이명박 정부 당시 광화문청사로 이사했다.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에는 다시 과천으로 복귀했다. 2016년에는 방위사업청이 과천으로 옮겨오면서 청사 내 4동에서 5동으로 또 이사해야 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이번에 세종으로 다시 청사를 이사했다.
 
이사 잦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사 잦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부처의 이름도 정권에 따라 조변석개(朝變夕改)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과학기술부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육부와 통합돼 교육과학기술부로 바뀌었고, 박근혜 정부 때에는 정보통신 분야 등과 합쳐지면서 미래창조과학부로, 문재인 정부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탈바꿈했다. 통합 부처에서 ‘과학기술’은 찬밥 신세였다는 게 과학계의 자조 섞인 진단이다. 교과부에서는 교육에, 미래창조과학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는 정보통신에 밀렸다는 얘기다.
 
국가 연구개발(R&D)과 성장 엔진을 책임져야 할 과기정통부 공무원들은 잦은 이사와 부처 통폐합에 지쳐가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안에서 왔다갔다할 때는 그나마 나았다. 이제는 대부분의 직원이 가족과 떨어진 세종에서 ‘기러기 생활’에 들어갔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요. 위에서 하라고 하면 해야지요.” 공무원들의 탄식이 이어진다. 이미 눈치 빠른 일부 ‘생활형 관료’들은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서울에 남은 부처로 재빠르게 자리를 옮겼다. 그들에게 공직은 국가 정책을 위한 전문성을 쌓는 자리가 아닌 생계 수단에 불과하다.
 
과학기술 부처의 잦은 이사는 정권에 따라 춤춰 온 과학기술 정책과 닮은꼴이다. 과기부 관료 출신인 노환진 과학기술연합대학원(UST) 교수는 “정치가 한국의 과학기술을 망친 원인”이라며 “관료와 연구자가 영혼이 없어져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진단했다.
 
600년 전 세종시대는 우리 역사 속에서 과학기술 발전이 가장 빛났던 때다. 장영실·이순지 등과 같은 인재들을 등용하고 과학기술 발전을 직접 이끌면서 눈부신 성과를 만들어냈다. 21세기 세종시대는 그냥 오지 않는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기자 정보
최준호 최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