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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갈등, 권력형 범죄…공포물보다 오싹한 학교 드라마

중앙일보 2019.08.20 00:04 종합 25면 지면보기
다양한 계급 격차를 포착한 JTBC ‘열여덟의 순간’. [사진 각 방송사]

다양한 계급 격차를 포착한 JTBC ‘열여덟의 순간’. [사진 각 방송사]

학원물이 돌아왔다. KBS2 ‘학교 2017’을 끝으로 한동안 TV에서 자취를 감췄던 학교 드라마가 다시 고개를 든 것. JTBC 월화드라마 ‘열여덟의 순간’과 OCN 수목드라마 ‘미스터 기간제’를 필두로 SBS 2부작 ‘17세의 조건’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세 편 모두 ‘애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시간에 집중한다. 주민등록증이 나오는 만 17세면 어른이라 믿는 고등학생들에게 학교 울타리 안과 밖의 삶은 전혀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열여덟의 순간’‘미스터 기간제’ 등
적나라한 현실 다루며 호평 받아
청소년층 겨냥, 부모세대도 공감

하여 이들의 성장 이야기는 마냥 파릇파릇하지만은 않다. 올 초 종영한 ‘SKY 캐슬’이 입시 코디네이터를 앞세워 고급 빌라촌에서 벌어진 과도한 입시 경쟁이 빚어낸 촌극을 그렸다면, 이들 드라마는 보다 넓은 세계를 조망한다. ‘열여덟의 순간’은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 강제 전학 온 최준우(옹성우)부터 학교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자 마휘영(신승호), 이들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는 중산층 유수빈(김향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섞여 있다. 위계질서는 철저히 경제력을 따른다. 학부모간 상하 관계가 형성되는 것뿐만 아니라 형편상 과외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학업에 도움을 받고자 동급생에게  ‘자발적 충성’을 다한다.
 
스릴러로 차별화를 꾀한 OCN ‘미스터 기간제’. [사진 각 방송사]

스릴러로 차별화를 꾀한 OCN ‘미스터 기간제’. [사진 각 방송사]

이들이 직면한 문제 역시 단순하지 않다. 명문 사립고 배경의 ‘미스터 기간제’에서는 왕따를 넘어 ‘셔틀몬 파이트’까지 펼쳐진다. 심부름을 전담하는 학생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것도 모자라 SNS로 생중계하고 어느 쪽이 이길지 돈을 걸고 내기를 한다. 학교 운영비를 충당하는 VIP 자녀들이 모여 ‘스펙 조정위원회’를 열고 생활기록부를 아름답게 치장하는 동안 한쪽에서는 생존을 건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다. 미스터리 투성이 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그 후에 자살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도 의심을 받거나 누명을 쓰는 것은 모두 ‘사회적 배려 대상자’의 몫이다.
 
조건만남 등을 다룬 SBS ‘17세의 조건’. [사진 각 방송사]

조건만남 등을 다룬 SBS ‘17세의 조건’. [사진 각 방송사]

이는 역설적으로 학원물의 시청층을 넓히는 효과를 가져왔다. 과외 선생님이 수학 1등급 받은 선물로 오피스텔에서 조건 만남을 알선해주고, 딸이 생리통 때문에 집중을 못 한다며 끌고 가서 피임 시술을 시키는 엄마(‘17세의 조건’)를 보면서 교육 시스템은 물론 이로부터 비롯되는 사회 문제를 다시 한번 곱씹게 되는 덕분이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어른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 우리가 모두 더 많은 ‘괴물’을 양산하는 데 일조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학원물 특성상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라며 “80년대는 전교조, 90년대는 입시 문제를 주로 다뤘다면 지금은 사회적 계급 갈등이 전면에 부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장르가 혼합된 작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추리와 결합하고, 권력형 범죄가 배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5월 종영한 JTBC ‘아름다운 세상’이나 ‘솔로몬의 위증’(2016~2017) 등의 학원드라마에서도 살인에 가까운 죽음이 등장했다.
 
학원물의 부활은 산업적으로도 중요한 과제다. 네이버 V 오리지널 웹드라마 ‘에이틴’은 시즌 1, 2 합산 누적 조회 수 3억 뷰를 돌파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TV는 젊은 시청자들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기 때문. ‘연애플레이리스트’ ‘전지적 짝사랑 시점’ 등 대학생 연애물 붐을 일으킨 웹드라마 제작사들은 고등학생 학원물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연령대를 낮춰 타깃 시청층을 확대하기 위함이다.
 
웹드라마와 아이돌 출신이 대거 유입되면서 10~20대 배우 풀이 넓어진 것도 호재다. ‘열여덟의 순간’의 신승호는 ‘에이틴’에서 쌓은 인지도를 발판 삼아 TV로 진출했고, 옹성우는 오디션 예능 ‘프로듀스 101’로 결성된 아이돌 그룹 워너원 출신이다. ‘미스터 기간제’의 이준영(유키스), 김명지(타이니지), 정다은(투아이즈) 등은 가수보다 배우로 전업 후 주목받고 있는 케이스다. 연기력 논란을 피해간 것은 물론 제 몫 이상을 해내며 작품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고 있다.
 
이에 방송사들도 적극적으로 새로운 작품과 인력을 발굴하고 있다. Mnet은 여름 방학 시즌에 맞춰 월화 오후 6시에 ‘에이틴’을 편성한 데 이어 JTBC는 일요일 밤 12시 20분에 ‘인서울’을 방영한다. ‘인서울’ 역시 네이버 V 오리지널 웹드라마로 덕질하기 힘든 ‘지방러’ 탈출을 위해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을 꿈꾸는 딸과 엄마의 이야기다. 타이니지 출신 민도희와 장영남이 호흡을 맞춘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부모에게는 10대 자녀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되고, 아이들에게는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효과를 지닌다”며 “제한된 시청층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제작사와 방송사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밝혔다.
 
‘열여덟의 순간’의 심나연 PD 역시 첫 미니시리즈 도전이다. 2017년 ‘한여름의 추억’ ‘힙한 선생’ 등 웹드라마로 먼저 기반을 닦아 ‘공부의 신’(2010), ‘부탁해요, 엄마’(2015~2016) 등을 집필한 베테랑 윤경아 작가와 힘을 합쳤다. ‘17세의 조건’은 지난해 SBS 극본공모에서 최우수로 당선된 류보리 작가 작품이다. 여름 시즌 월화드라마 중단에 앞서 2부작을 편성한 SBS 측은 “해당 시간에 선보인 16부작 예능 ‘리틀 포레스트’도 반응이 좋기 때문에 앞으로도 융통성 있게 편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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