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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사이 네 번···이사짐 싸는 과학기술부 신세

중앙일보 2019.08.19 13:24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왼쪽 다섯번째)이 19일 세종시 어진동 과기부 청사에서 이춘희 세종시장(왼쪽 여섯번째) 등 참석자들과 함께 현판 제막식을 하고 있다. [뉴스1]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왼쪽 다섯번째)이 19일 세종시 어진동 과기부 청사에서 이춘희 세종시장(왼쪽 여섯번째) 등 참석자들과 함께 현판 제막식을 하고 있다. [뉴스1]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현판식을 열고 ‘세종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과기정통부가 들어선 건물은 정부세종청사 바로 옆 민간 건물인 세종파이낸스센터 2동 3~6층.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날 현판식에서 “세종에 있는 중앙행정기관과 대전 지역 정부출연연구기관과 협업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달 25일부터 과천청사 5동에서 세종파이낸스센터(II)로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과기정통부 본부 및 별도기구, 파견 직원 등 약 950여 명은 이달 10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이사를 진행했다. 이사 비용은 130억원가량 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25일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세종시로 이전을 시작했다. [뉴스1]

지난 7월 25일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세종시로 이전을 시작했다. [뉴스1]

하지만 이날 이전 완료한 과기정통부 청사는 2년짜리 임시거처다.  2021년 말 정부세종청사에 새 건물이 완공되면, 다시 또 짐을 싸야한다. 과기정통부는 왜 정부세종청사 새 건물이 완공되기도 전에 130억원의 혈세(血稅)를 들여가며 임시청사로 들어갔을까. 표면적 이유는 2017년 10월 개정된 행복도시법과 지난해 3월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가 만든 이전기관 고시 때문이다. 고시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2019년 8월까지 이전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정부는 왜 세종청사 새 건물이 완공되기도 전에 과기정통부를 이사해야 하는 고시를 만들었을까.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그간 다른 부처는 세종으로 이사했는데 왜 과기정통부만 내려오지 않느냐는 비판도 많았고, 어차피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2020년 4월 21대 총선 전에 이전을 완료해야 충청권 인심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으냐는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19일 청사 이전을 완료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세종청사 건물. 2년 기한으로 정부세종청사 인근 민간건물에 입주했다. 1,2층은 상가건물이다. [사진 대덕넷]

19일 청사 이전을 완료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세종청사 건물. 2년 기한으로 정부세종청사 인근 민간건물에 입주했다. 1,2층은 상가건물이다. [사진 대덕넷]

 
과기정통부 청사는 지난 15년 사이 이미 네 번이나 이사했다. 과천청사에 있는 과학기술부는 이명박 정부 당시 광화문 청사로 이사를 했다.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에는 다시 과천으로 복귀했다. 2016년에는 방위사업청이 과천으로 옮겨오면서 청사 내 4동에서 5동으로 또 이사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이번에 세종으로 다시 청사를 이사했다. 네 차례 이주비용을 다 합치면 300억원 수준에 이른다고 알려졌다.

 
이사만큼이나 부처의 이름도 정권에 따라 조변석개(朝變夕改)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과학기술부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육부와 통합돼 교육과학기술부로 바뀌었고, 박근혜 정부 때에는 정보통신 분야 등과 합쳐지면서 미래창조과학부로, 문재인 정부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탈바꿈했다. 통합부처에서 ‘과학기술’은 찬밥신세였다는 게 과학계의 자조 섞인 진단이다. 교과부에서는 교육에, 미래창조과학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에서는 정보통신에 밀렸다는 얘기다.      
 
국가 연구개발(R&D)과 성장엔진을 책임져야 할 과기정통부 공무원들은 잦은 이사와 부처 통폐합에 지쳐가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안에서 왔다 갔다 할 때는 그나마 나았다. 이제는 대부분의 직원이 가족과 떨어진 세종에서 ‘기러기 생활’에 들어갔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요. 나라에서 하라고 하면 해야지요.” 공무원들의 탄식이 이어진다. 이미 눈치 빠른 일부 ‘생활형 관료’들은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서울에 남는 부처로 재빠르게 자리를 옮겼다. 그들에게 공직은 국가 정책을 위한 전문성을 쌓는 자리가 아닌 생계 수단에 불과하다.  
 
과학기술 부처의 잦은 이사는 정권에 따라 춤을 춰온 과학기술정책과 닮은꼴이다. 지난 9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과기부 관료 출신인 노환진 과학기술연합대학원(UST) 교수는 “정치와 관료가 한국의 과학기술을 망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관료와 연구자가 영혼이 없어져 가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부처 실ㆍ국장들은 새로 임용된 장ㆍ차관의 의지를 간파한 다음, 그들의 뜻에 배치되는 언행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연구 현장에 와서는 장ㆍ차관의 의지가 그러하니 이해해 달라고 사실상 강요한다. 연구자들도 이미 예상한 일이라고 각오하고 있다. 그들에겐 제대로 된 연구개발보다는 생존이 우선이다.”  
 
600년 전 세종시대(1418~1450)는 우리 민족 역사 속에서 과학기술 발전이 가장 빛났던 때다. 왕이 장영실ㆍ이순지 등과 같은 인재들을 등용하고, 과학기술 발전을 직접 이끌면서 눈부신 성과를 만들어 냈다. 21세기 세종시대는 그냥 오지 않는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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