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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육식은 없다, 본격 채식 세뇌 다큐 '자본의 밥상'

중앙일보 2019.08.18 09:00
'자본의 밥상'은 본격 채식 세뇌 다큐멘터리다.

'자본의 밥상'은 본격 채식 세뇌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를 시청한 후엔 진지하게 ‘채식주의자가 될까’ 고민할지도 모른다. 적당한 육식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육식 자체가 스스로를 파괴한다는 섬뜩한 이야기가 익살스럽게 펼쳐진다. 설득력있는 연구와 전문가의 인터뷰로 구성된 다큐에 홀딱 넘어갈 때 즈음, 예전에 먹었던 육즙 흘러넘치는 인생고기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
채식주의, 해보고 싶은데 동기부여가 필요해
고기없인 못살아! 근데 좀 줄여야하지 않을까?
 
이런 사람에겐 비추  
고기 천국, 채소 지옥! 고기는 늘 옳다.  
먹고싶은 것까지 이리저리 재야 해?
 
와칭(wat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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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데 진지한 이야기  

이 영화는 제작자이자 감독이자 주연인 킵 안데르센이 불쑥 카메라 앵글 속으로 솟아오르면서 시작된다. 그는 뜬금없이 당뇨나 암, 심장병 같은 가족력을 들먹이며 “건강염려증을 극복중이다”고 고백한다. 그렇다. 이 다큐는 킵이 건강해지는 방법을 찾아 떠나는 유쾌한 여정을 담고있다. 그는 인터뷰가 거부당하면 다짜고짜 찾아가 질척대며 묻는 파이팅을 보여준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심장학회에 찾아가 경비원한테 인터뷰를 요청한 킵 [사진 캡처]

'저한테 왜 이러세요?' 심장학회에 찾아가 경비원한테 인터뷰를 요청한 킵 [사진 캡처]

 
<식코><화씨 911>에서 냉소적인 시각을 특유의 유머로 풀어낸 다큐 감독, 마이클 무어의 냄새가 살짝 난다. 단순히  어떤 메시지의 다큐 영화를 만드는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주의로 나아간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그는 본격 채식주의 세뇌 다큐인 이 영화를 제작한 이후 사이트(http://www.whatthehealthfilm.com)를 운영하며 채식주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치밀하게 당하는(?) 세뇌

다큐는 초반부터 ‘채식주의’를 권고하지 않는다. 대신 관련 연구와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식단에 대한 잘못된 신화를 하나하나 논파하고, 육식의 위험성을 서서히 까발린다. 이 과정에서 정부-낙농업계-육류업계-의료계-제약업계가 자본주의의 부패한 카르텔로 연결돼 있음을 통쾌하게 고발한다.  
 
세뇌로 가는 구성은 치밀하다. 우선 킵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분류한 1급 발암물질에 술과 담배뿐 아니라 고기(meat)가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 대목에서 시청자들은 움찔한다. 고기가 1급 발암물질이었다니, 나만 몰랐나? 고기없는 세상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가? 고기 섭취가 심장병, 당뇨병, 암 발생을 늘린다는 연구결과까지 더해지면서 시청자는 멘붕에 빠진다.  
내과 전문의인 밀튼 밀스는 '육류를 통해서 단백질을 주로 섭취한다'는 사실은 환상이라고 꼬집는다. [사진 IMDb]

내과 전문의인 밀튼 밀스는 '육류를 통해서 단백질을 주로 섭취한다'는 사실은 환상이라고 꼬집는다. [사진 IMDb]

 
이런 의구심이 들때 쯤 킵은 정부와 의료계, 제약계의 카르텔로 시선을 옮겨간다. 미국 당뇨학회나 심장학회가 매년 천문학적인 후원금을 육류업계와 낙농업계, 제약업계로부터 받고 있으며 1급 발암물질인 고기 섭취를 오히려 장려하는 레시피까지 제공한다는 것이다. 배신감이 슬슬 피어오른다. (세뇌의 과정에 들어섰다는 징조다)  
 

통념까지 깨부순다

서서히 고조되는 세뇌는 통념을 깨부수는 것으로 완성된다.  야채식단을 옹호하는 전문가들을 섭외해 인터뷰하고, 다양한 성인병으로 힘겹게 사는 사람들이 채식식단으로 이를 극복했다는 사례를 들면서다. 전문가들의 혹하는 발언 몇개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모든 포유류 중 인간의 모유는 단백질 함량이 가장 낮다 [사진 캡처 ]

모든 포유류 중 인간의 모유는 단백질 함량이 가장 낮다 [사진 캡처 ]

“인간에 최적화된 모유는 그 어떤 포유류보다 단백질 함량이 낮다. 인간이 소젖을 먹어야 할 과학적인 어떤 근거도 없다.”(마이클 그레거, 의사 겸 작가)
 
“육류에서 단백질을 섭취한다고? 그 단백질은 모두 식물로부터 온 것이다.”(밀튼 밀스 내과 전문의)  
 
“우유는 뼈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은 미신에 불과하다. 보통 성인이 필요한 일일 영양소(단백질이나 칼슘)는 채식에서 얻는 것으로도 충분하며, 육류 섭취는 이를 과잉상태로 만든다.” (닐 버나드 ‘책임있는 의료를 위한 의사회’ 회장)
 
“의대에선 식단을 배우지 않는다. 병을 치료하는 법만 배울뿐 병이 생기는 식습관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미셸 맥매킨 뉴욕대학교 의대 교수)  
 
모두가 의사 자격을 지극히 정상적(심지어 명문 스탠퍼드와 코넬대 출신들)으로 획득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말이 거짓일까? 이들의 말은 과학적으로 순전히 팩트다. 하지만 여기에는 킵의 교묘한 함정이 포함돼 있다.  
 

함정에 빠진 시청자?

등장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모두 팩트인데 함정이라고? 맞다. 킵이  다른 팩트들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1급 발암물질에는 태양광선과 디젤연료도 포함된다. 우리의 삶이 다양한 발암물질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은 셈이다. 과도한 태양광 노출로 인한 피부암, 미세먼지로 인한 폐암은 식단과는 관련이 없다.  
 
미국 당뇨학회, 심장학회는 육류와 낙농업체로부터 매년 천문학적인 후원을 받는다. [사진 캡처 ]

미국 당뇨학회, 심장학회는 육류와 낙농업체로부터 매년 천문학적인 후원을 받는다. [사진 캡처 ]

그러나 킵의 이야기가 모두 우리를 함정으로 빠뜨리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육류업계는 고기가 1급 발암물질이란 사실 자체를 대중들에게 숨기는데만 혈안이 돼 있다. 의료계는 이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아챙기고 ‘건강한 고기 레시피’를 안내하며 육류업계와 주파수를 맞춘다. 킵은 이 씁쓸한 자본주의의 카르텔을 속시원히 꼬집었다. 채식만이 정답(킵)이란 시각도 섣부르지만, 선택을 위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카르텔)이 훨씬 큰 문제라는 점에서 이 다큐는 가치가 있다.  
 

채식주의 한번 도전해봐?

영화를 보고 ‘채식주의만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살짝 스치긴 하지만, 채식주의자로 살아갈 엄두는 나지 않는다. 육즙 넘치는 고기와 쫀득고소한 모짜렐라 치즈, 고소하게 녹여낸 버터를 모두 포기한다면 더 건강해질테지만, 삶의 행복을 크게 덜어내고 채워지지 않는 허함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사례에는 단 2주간의 채식으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본 사람들이 나온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채식주의를 실천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은 든다. (결국 킵이 해냈다) 원래 육류를 즐기지 않는 시청자들에겐 채식주의에 대한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제목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What The Health)
제작   킵 안데르센, 키간 쿤
등급   전체관람가  
평점   IMDb 7.6 에디터 꿀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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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장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