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원 전철서 여성 뒤 밀착···수상한 그놈 잡으러 타는 그들

중앙일보 2019.08.18 08:01
지난 12일 오전 8시 1호선의 한 전철역에서 출근하는 시민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수많은 인파 속에 철도특사경 수사관이 섞여 있다. 이후연 기자

지난 12일 오전 8시 1호선의 한 전철역에서 출근하는 시민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수많은 인파 속에 철도특사경 수사관이 섞여 있다. 이후연 기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12일 오전 7시 30분. 용산으로 향하는 1호선 열차는 칸마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짐, 게다가 우산까지 더해져 ‘완벽하게’ 꽉 채워져 있었다. 승객과 승객 사이의 거리는 주먹 하나 들어가기도 힘들 정도로, 어떻게든 거리를 만들어보려는 사람들의 시도는 정차 역마다 입장하는 다른 승객들로 인해 무산되곤 했다. 더 이상 공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역이면 또 사람들이 밀고 들어왔다.
 
모두가 엉켜 있을 수밖에 없는 가운데 한 20대 여성에게 어떤 남성이 은밀하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메모장이 켜진 화면에는 “경찰관입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피해를 당했으면 고개를 끄덕여주십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그 남성은 철도특별사법경찰대(철도특사경) 소속 신상홍 수사관이었다. 해당 여성 뒤에 밀착해있던 남성이 수상한 행동을 보이자 확인 및 예방을 위해 취한 행동이었다.
 
철도특사경의 사실상 사무실은 매일이 전쟁터인 출·퇴근길 만원 열차다. 4인 1조로 움직이는 철도특사경은 상행·하행선 등으로 구역을 나눠 매일 열차를 타고 역사를 체크한다. 기자는 12일 오전 신상홍 수사관과 같은 조인 철도특사경들과 동행하며 어떻게 치안 활동을 하는지 지켜봤다.
 

승객인 척 '수상한 움직임' 주시 

철도특사경 수사관들은 일반 승객들과 똑같은 사복 차림을 하고 활동했다. 비가 온 이날은 우산을 사용할 일이 없음에도 우산까지도 들고 있었다. 범죄자를 적발하기 위해선 특사경이라는 표시가 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서로 대화를 하는 일도 없었다. 평일에는 회사원 복장, 주말에는 등산객 복장으로 인파에 섞인다. 기자가 동행 취재를 할 때도 '신원이 드러나지 않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범죄자 중 전문가들은 수사관이 있는 것을 인지하고 도망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면 철도특사경 수사관은 피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다가가 조용히 휴대전화를 보여준다. 화면에는 '경찰입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피해를 당했으면 고개를 끄덕여주십시요'라고 적혀 있다. 이후연 기자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면 철도특사경 수사관은 피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다가가 조용히 휴대전화를 보여준다. 화면에는 '경찰입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피해를 당했으면 고개를 끄덕여주십시요'라고 적혀 있다. 이후연 기자

사람들이 가득 찬 열차 내에서 철도특사경들의 눈은 빠르게 돌아갔다. 대다수의 열차 내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 않다. 설치돼 있다 하더라도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람들 사이의 사건을 제대로 보긴 어렵다. 철도특사경의 눈이 CCTV인 셈이다. 수사관들은 빼곡한 승객들 사이사이를 계속 주시하며 정거장마다 내렸다가 다른 칸으로 타는 것을 반복했다. 다른 칸의 상황도 체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도 승객들을 주시하던 신 수사관은 한 여성 뒤에 서 있는 남성이 갑자기 묘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 것을 보고 근처에 있던 다른 수사관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인파를 뚫고 해당 남성에게 근접한 수사관은 유심히 살피다 신 수사관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밀착해있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신 수사관은 “의심스러운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든 ‘맞다, 아니다’를 확인해야 한다”며 “확인을 못 한 채 넘겨버리면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철도특사경과 동행하는 내내 사람들에게 끼여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 수상한 사람은커녕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어떻게 피의자를 특정하는지 수사관들에게 물어보니, 일반 사람들은 보기 힘들지만 특사경 눈에 포착되는 ‘이상 행동’들이 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밀착한 사람과 다르다"  

일단 여성 뒤에 지나치게 밀착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밀려서 밀착하게 된 경우와는 구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스스로 조금이라도 몸을 틀어 밀착을 피하려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성범죄자들의 경우 일부러 허리를 앞으로 내밀거나 본인 뒤에 공간이 남아있는데도 뒤로 가지 않는다. 서 있는데 키 높이가 위아래로 조금씩 달라지는 경우도 의심해봐야 한다.
 
물론 이것만으로 성추행 범죄가 발생했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피해자에게 은밀하게 피해 사실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맞다’고 하면 그 이후 해당 남성에게 정식으로 조사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한다. 신 수사관은 “자기가 피해를 당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며 “상황이 이런데 본인 스스로 확실히 피해를 느꼈다고 한다면 성추행 행위가 있었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여성 스스로가 조금이라도 공간을 만들어 피하려고 했거나 뒤를 돌아보는 식의 행동을 했다면 범죄 행위를 입증하는데 더 유리할 수 있다.
12일 오전 8시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역사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매우 근접하게 붙어 있다. 이런 때에도 성추행과 몰카 범죄가 발생하기 쉬운 만큼 출입문 근처에 철도특사경 수사관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후연 기자

12일 오전 8시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역사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매우 근접하게 붙어 있다. 이런 때에도 성추행과 몰카 범죄가 발생하기 쉬운 만큼 출입문 근처에 철도특사경 수사관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후연 기자

 
일부 남성들의 오해처럼 ‘피해자의 진술’만 믿고 수사하는 것은 아니다. 밀착 여부로만 범죄자를 특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가 타고 온 열차의 반대 방향 열차를 이유 없이 갈아탄다거나, 역사 내에서 여성을 보고 갑자기 발걸음이 빨라지는 사람도 ‘주시 대상’이다. 물론 이런 행동을 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조강복 철도특사경 수사과장은 “한 번의 이상행동만을 갖고 피의자를 특정할 수는 없다”며 “의심 행동을 보인 사람을 추적해서 행동을 지켜보고, 확실한 범죄 행위가 포착되면 체포해 수사한다”고 말했다.
 

에스컬레이터 주시…"몰카 전문가 점점 늘어나" 

성추행 범죄뿐만 아니라 철도 내에서는 ‘몰카’ 범죄도 많다. 이 때문에 철도특사경 수사관들은 열차 내부뿐만이 아니라 역사 내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 등도 주시하고 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한쪽 무릎을 위로 올려놓고 온갖 짐을 그 무릎 위에 다 올려놓거나, 구두 앞쪽을 괜히 내밀고 있는 사람들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소형 카메라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몰카 범죄 수법은 점점 더 진화해 소위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철도특사경이 검거한 한 몰카범은 휴대전화 2개를 들고 다니면서 한대로는 해당 여성의 얼굴을 찍고, 다른 한대로는 해당 여성의 치마 속을 찍었다. 이어폰에 있는 리모컨을 조작해 휴대전화를 직접 보지 않으면서 ‘라이트’까지 켜 여성의 치마 속을 촬영한 범죄도 있었다.
 
특사경에 적발된 대다수의 범죄자는 자신의 행위를 시인하고 수사에 협조한다. 하지만 일부 피의자는 범행 행위를 강력히 부인하면서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조 수사과장은 “피의자들이 진심으로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뉘우쳐야 하는데 이런 행동을 할 때 가장 힘들고 괴롭다”고 말했다.
 

도와주는 시민 늘어나 

철도특사경의 의심이 언제나 사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성범죄 피의자로 의심했다는 사실 때문에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의심이 된다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을 해볼 수밖에 없다. 신 수사관은 “최근에는 남성들 가운데서도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며 “의심이 되면 휴대폰이나 짐을 보여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특사경의 당연한 역할’이라며 도와주는 시민들이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