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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민 "DJ 계승한다는 文정부, 가장 공들였던 외교는 폐기"

중앙일보 2019.08.18 05:00
김대중대통령이 1999년 3월20일 방한중인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단독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조용철]

김대중대통령이 1999년 3월20일 방한중인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단독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조용철]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망각하는 것은 파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과거에 발목이 잡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더 큰 파멸입니다.”
 

오늘 김대중 전 대통령 10주기
"DJ는 잘못된 역사 망각하면 파멸하지만
과거에 발목 잡히면 더 큰 파멸이라 말했다"

장성민 전 의원(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이사장)이 전한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9월 어느날 한 말이다. 집권 초인 1998년 외환위기 수습이 최대 과제인 상황에서 일본 문화개방을 추진하자 여당(새정치국민회의)과 청와대 참모진에선 “국민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는 반대의견이 쏟아졌다. 금융가에서는 일본이 단기 자금을 갑작스레 회수해 외환위기가 초래됐다는 이야기도 나올 때였다. 그러자 DJ는 ‘창씨 개명을 강요당하고 학병으로 끌려나가고 우리 말이 있음에도 낯선 남의 나라 말을 배워야 했던 우리 세대가 일본을 어떤 세대보다 잘 안다. 과거 한일관계는 불행했고 절망의 순간들이었지만 불행한 역사를 미래 세대에 전해줄 수는 없다’고 참모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1987년 대선 당시 평화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의 전신) 청년 자원봉사자로 정치에 입문해 DJ의 비서가 됐던 장 전 의원은 30대에 김대중 정부의 국정상황실장(1998년 6월~1999년 3월)과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후 외교안보 전문가로 변신한 장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를 비판한 책 ‘자유 시장 안보가 무너지다’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김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18일)를 이틀 앞둔 16일 그를 서울 마포의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3시간 여 동안 DJ의 외교 철학과 대일 외교 비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장성민 전 의원은 "헨리 키신저는 자신의 저서에 한미 관계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쥐지 못했던 시기는 단 한번 김대중 정부 시절이라고 썼다. DJ의 통찰력과 결단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고 했다. 최정동 기자

장성민 전 의원은 "헨리 키신저는 자신의 저서에 한미 관계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쥐지 못했던 시기는 단 한번 김대중 정부 시절이라고 썼다. DJ의 통찰력과 결단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고 했다. 최정동 기자

 
한일관계를 ‘김대중-오부치 선언’(1998년 10월8일) 수준으로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 선언은 김 전 대통령의 ‘대화해 또는 대화합’이라는 국정 철학의 큰 맥락 안에서 읽어야 한다. 계급 갈등 완화를 위한 노사 대화합, 지역 감정 해소를 위한 영호남 대화해, 우리 민족의 평화적 번영을 위한 남북 대화해, 인류 대화해를 통한 세계 평화. 한일간의 대화해는 이같은 맥락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기억나는 막전막후가 있나.  
“회담을 4개월 이상 준비했다. DJ는 일본 의회에서 할 연설문을 스스로 일주일 넘게 검토ㆍ수정했다. 그 사이 참모들은 전직 주일대사들, 일본을 전공한 역사학자ㆍ국제정치학자 수십명을 두루 만나고 아이디어를 정리해 올렸다. 필요하면 DJ가 직접 이들과 만나거나 통화했다. ‘외교는 그 나라 국민들의 마음을 사는 일’이라는 그의 지론에 따라 나는 주한 일본공사, 주한 정치담당 참사 등을 밤낮없이 만나 ‘너희 국민들이 어떤 말을 듣고 싶어할 거 같냐’고 물었다.”
 
일본 측은 어떤 부분에 가장 신경썼나.
“김대중 도쿄 납치 사건을 들고 나올까봐 초긴장했다. 자신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까봐. 그런 상황을 DJ에게 보고하니 ‘새로운 백년을 내다보는 동반자 관계로 가자고 하면서 내가 왜 개인적 불행을 끄집어 내느냐’고 말했고 실제로 오부치 총리를 만났을 때 그러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에서 최근 가장 자주 언급되는 대목은 ‘통절한 반성’이라는 문구다. 이 선언에는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고 나와 있다.  

 
선언 내용을 보면 우리 정부의 입장의 거의 다 반영돼 있는 거 같다.
“세계 외교사에 바이블로 남게 하자는 의지로 회담을 준비했다. 독일과 이스라엘 사이의 룩셈부르크 합의(1952년), 프랑스와 독일의 엘리제 조약(1963년), 미국-베트남 간의 주요 외교문서 등을 모두 검토했다. 제일 주의 깊게 들여다 본 게 일본이 중국에 어떻게 사과했는지였다. 1972년 중일수교문에 나온 표현이 ‘통절한 반성’이었다. 대통령께 보고드렸더니 ‘절대로 일본 측에 강하게 요청하거나 하지 말라’로 했지만 ‘그 수준이면 대만족’이라는 눈치였다. 나는 외교적 화법으로 일본 측 외교관들에게 그런 분위기를 내비쳤고 선언문에 그대로 반영됐다.”
 
장 전 의원은 한일 갈등의 표상이 된 아베 신조(安倍 晋三) 총리와 고노 다로(河野 太郞) 외무대신을 만난 적이 있다. 각각 아베 총리가 자민당 간사장 대리이던 2004년과 고노 외무대신이 중의원이던 2000년의 일이다.  

장 전 의원 2004년 도쿄 플라자 호텔에서 아베 신조 당시 자민당 간사장 대리와 단독 면담했다.
장 전 의원 2004년 도쿄 플라자 호텔에서 아베 신조 당시 자민당 간사장 대리와 단독 면담했다.
고노 다로는 중의원 의원이던 2000년 한국을 찾아와 여당(새정치국민회의)의 초재선 의원들과 교류를 텄다.
고노 다로는 중의원 의원이던 2000년 한국을 찾아와 여당(새정치국민회의)의 초재선 의원들과 교류를 텄다.
 
아베는 왜 만났나
“아베의 민간 보좌역격인 재일교포 인사로부터 ‘아베를 만나줬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도쿄 플라자 호텔 내 중식당에서 1시간40분 정도 대화했다. 새 대통령이 된 노무현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대일 정책이나 대북 정책이 어떻게 흐를지에 대해 꼼꼼이 물었고 답변 중 일부는 메모하며 경청했다.”
 
아베를 어떤 인물이라고 느꼈나
“질문의 상당 부분은 ‘미국이 노무현을 어떻게 생각할 거 같냐’‘북핵 문제에 대한 한ㆍ미 공조는 어떻게 전개될 것 같으냐’ 등 미국의 시선에 대한 관심이었다. ‘미국을 엄청나게 의식하는구나’‘미국의 허락없이는 어떤 일도 하지 않을 인물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공부한 미국통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근 트럼프와 자주 종일 골프를 치는 모습을 보면서 예상대로라고 생각했다. 한국을 상대로 무역분쟁을 일으킨 것은 트럼프와 나눈 그 긴 대화에서 뭔가 미국의 태도에 대한 자기 확신이 섰기 때문일 것이다.”
 
고노 다로와의 인연은  
“고노 다로의 아버지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과 김 전 대통령의 관계가 매우 좋았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선되자 일본 측에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이던 내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고노 외에도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 참의원 등 3명이 찾아왔다. 우리 쪽에서는 김민석ㆍ추미애ㆍ함승희ㆍ김성호 의원 등 5명이 나갔다. 폭탄주회를 만들기로 할만큼 가까워졌고 한일 해저터널 구상, 김포-하네다 셔틀 노선 개설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졌다. 해저터널은 건설되지 못했지만 김포-하네다 노선은 2003년 열렸다.”
 
그러던 고노가 왜 강경파가 됐다고 생각하나
“소장파에서 어느 덧 자민당 주류가 된 고노가 아베 내각의 강경노선을 따라가는 상황이라는 게 일본 언론인들의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일 정책에 대해 장 전 의원은 “김대중 정부를 계승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가장 공들였던 외교 업적을 폐기하는 것”이라며 “그게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큰 차이”라고 말했다.  

장 전 의원은 "한미동맹을 최소한 미일동맹에 준하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해야 북핵 문제도 풀린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장 전 의원은 "한미동맹을 최소한 미일동맹에 준하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해야 북핵 문제도 풀린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차이에 대해 더 말한다면
“DJ에게는 한반도의 운명은 주변 강국들의 힘에 의해 좌우돼 왔다는 명확한 역사적 인식이 있었다. 남북한의 평화 번영은 미ㆍ중ㆍ일의 협조 없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명확했다. 집권 초기부터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모험적으로 추진했던 이유다. 일본과의 관계는 ‘김대중-오부치’선언 이후 급진전됐고, 김대중과 빌 클린턴의 관계처럼 한미 관계가 가까웠던 시절이 없다. 노무현 정부는 말로는 ‘자주 외교’ 를 외쳤지만 실제로는 김대중 정부의 성과와 정신을 그대로 계승했다. 제주 해군기지 추진,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체결 등의 결정이 이를 방증한다. 문재인 정부는 그렇지 않다.”  
 
문재인 정부도 평화경제를 이야기한다. 햇볕 정책의 계승자 아닌가.
“북한 자체에 대한 대응도 질적 차이가 있다. 김대중 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계속했지만 그 전제인 북한의 무력 도발은 ‘불용’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1999년 1차 서해교전이 그 증거다. 도발해 온 북한 어뢰정을 침몰시키고 경비정을 반파시켰다. 지금은 어떤가. 계속되는 북한 미사일 발사에도 완전히 무대책이다. 북한이 하자는 대로만 해선 안된다.”
 
마지막으로 “사분오열된 김대중의 사람들의 현 주소를 보면 김 전 대통령은 뭐라고 했을 거 같냐”고 물었다. 장 전 의원은 “지금 정치인들에게는 진정한 국익을 위한 담론이 없고 그렇다고 백년대계를 위한 백가쟁명이 있는 것도 아니다”며 “DJ가 살아있었다면 그런 부분들을 강연으로, 인터뷰로 지적하고 현안을 국민의 입장에서 푸는 관점과 해법을 제시했을 거 같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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