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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실적 과포장, 글로벌 저가 공세…K바이오 악재 쏟아져

중앙선데이 2019.08.17 00:33 649호 4면 지면보기

위기의 K바이오

신약개발

신약개발

‘-16조1091억원.’ 국내 증시에 상장된 주요 제약·바이오주의 지난해 말 대비 올 상반기 시가총액 감소분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헬스케어 테마 종목 73개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132조9186억원에서 올 상반기 116조8095억원으로 급감했다. 바이오주가 급락한 영향이 컸다. 같은 기간 코오롱생명과학(-72.5%), 파미셀(-33.4%), 신라젠(-28.8%), 삼성바이오로직스(-18.5%) 등이 맥없이 떨어졌다. 이들 주가는 이달 들어서도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인보사 취소, 펙사벡 임상 중단 …
신약 개발 능력에 의구심 증폭

경쟁국 바이오 특허 만료 잇따라
규제 풀어줄 ‘첨생법’ 국회 통과
R&D 적극 지원이 뒤집기 카드

각종 악재가 쏟아졌다. 코오롱생명과학은 국내 첫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에 종양 유발 가능성이 있는 신장세포가 포함된 사실이 지난 5월 밝혀졌다. 수술 없이 무릎 관절에 주사를 놓아 치료할 수 있는 혁신적인 신약으로 여겨진 제품이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인보사의 품목허가를 지난달 최종 취소했다. 성장성이 부각되면서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 2위까지 올랐던 신라젠 역시 추락했다. 난항 논란 속에도 미국에서 임상시험 마지막 단계인 3상까지 진행했던 면역 항암제 ‘펙사벡’이 현지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로부터 지난 1일(현지시간) 임상 중단 권고를 받은 후폭풍이 거셌다. 신라젠 주가는 이후 3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일러스트=이정권·이은영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이은영 gaga@joongang.co.kr

이보다 앞선 6월에는 코스닥 상장사 에이치엘비도 고배를 마셨다. 이 회사가 개발 중인 표적 항암제 ‘리보세라닙’의 글로벌 임상 3상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삼성그룹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고 한때 코스피 시가총액 3위까지 올랐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분식회계 의혹에 휩싸여 고전하고 있다. 올 들어 회사 관계자 일부가 분식회계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됐다. 김태한 대표는 가까스로 구속을 면하기도 했다. 이런 영향으로 지난해 말 25조원대였던 시가총액은 14일 기준 19조원대로 빠졌다.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통해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를 주로 개발하고 있어 코스닥 바이오 기업처럼 신약 리스크에 휘말릴 확률은 낮다. 그러나 분식회계 의혹 수사로 회사 전체가 뒤숭숭한 가운데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애브비(미국)를 비롯한 글로벌 제약사의 저가 공세로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기술수출이나 해외 판매 허가 사례가 늘었는 데도 한국 바이오산업을 가리키는 ‘K바이오’의 위기설이 나오는 배경이다.
  
재무건전성·현금창출력 등 되짚어야
 
올해 잇단 악재에 휩싸인 K바이오

올해 잇단 악재에 휩싸인 K바이오

전문가들은 흐트러진 K바이오의 전열을 서둘러 재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진홍국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바이오 기업의 신약 개발 능력을 두고 의구심이 증폭된 상황”이라며 “임상 성공 가능성뿐 아니라 사업화 성사 여부, 기업의 재무건전성과 현금창출력 등을 고루 되짚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모 연구기관 소속 바이오 전문가는 “K바이오는 수년간 고속성장하면서 시간에 쫓겨 기술력에 세밀함을 더하는 데 소홀해진 관행이 있었다”며 “몇몇 사례로 한계가 드러났으니 차제에 (잘못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국내 바이오 기업을 둘러싼 우려는 과도하며, K바이오 전반의 장기 성장성은 유효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크게 다섯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K바이오의 선봉장 격인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호재가 있다. 글로벌 대형 바이오의약품의 특허 만료가 잇따를 예정이다. 스위스 제약사 로슈의 대장암 치료제 ‘아바스틴’이 지난달 미국에서 특허가 만료된 데 이어 내년 1월 유럽 특허도 끝난다. 연매출만 8조원에 이르는 블록버스터급 제품이다. 역시 시장성이 큰 황반변성 치료제 ‘루센티스(스위스 노바티스, 내년)’와 희귀질환 치료제 ‘아일리아(미국 알렉시온, 2021년)’도 특허 만료를 앞뒀다. 셀트리온·삼성바이오로직스·삼천당제약 등이 이들 제품의 바이오시밀러를 만들어 각각 임상을 진행했고 기술수출에 나서고 있어 분위기 반전 카드로 꼽힌다.
 
K바이오가 갖춘 규모의 경제도 경쟁 격화 추세에서 방어막이 될 전망이다. 주요 바이오 기업이 밀집한 인천 송도국제도시는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생산기지로 꼽힌다. 2030년 바이오클러스터로 확대 조성까지 예정됐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규모의 경제는 효율성으로 직결돼 언제든 위기를 기회로 바꿀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생산 설비가 부족한 해외 경쟁사들은 한국에 위탁생산(CMO)을 맡기고 있다. K바이오는 위탁생산으로 자본을 축적하는 한편, 마케팅 강화로 시장점유율 확대를 노릴 수 있다.
  
의약품 차별화가 위기 극복의 열쇠
 
신약개발

신약개발

K바이오 위기의 진원지인 바이오 신약 분야에선 벤처캐피털(VC)이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벤처캐피털의 바이오·의료 분야 신규 투자액은 2017년 3788억원에서 지난해 8417억원으로 급증했다. 악재가 잇따른 올해도 상반기까지 5233억원을 기록했다. 연간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더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에서 K바이오의 성장성을 계속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컨트롤타워 구성, 연구개발(R&D)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고 바이오의약품의 심사·허가 기간 단축 등 규제 완화가 핵심인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에 관한 법률안(첨생법)’이 이달 초 국회를 통과했다.  
 
바이오 업계도 다시 뛰고 있다. 예컨대 셀트리온은 기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를 피하주사(SC)제형으로 바꿔 새로 개발한 ‘램시마SC’로 해외 판매 허가를 앞뒀다. 램시마는 병원에서 2시간 걸려 맞아야 했지만 램시마SC는 집에서 2분이면 투여할 수 있다. 이건혁 셀트리온 팀장은 “자가 주사법을 선호하는 환자 수요를 반영해 개발한 제품”이라며 “제품 확장성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구자용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첨단 신약 개발이 가장 중요하지만 SC제형처럼 기존 신약을 업그레이드한 바이오베터도 K바이오 경쟁력 강화의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제품 차별화가 위기 극복의 열쇠”라고 말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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