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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허증 없이 자전거로·인도 질주…무법자 ‘킥라니’에 화들짝

중앙선데이 2019.08.17 00:21 649호 17면 지면보기

안전과 혁신 줄타는 전동킥보드

전동 킥보드 통행을 금지한 현수막. [중앙포토]

전동 킥보드 통행을 금지한 현수막. [중앙포토]

“유치원 버스를 타려고 아이를 데리고 아침 8시 30분에 집 앞에 나왔어요. 아파트 정문 바로 옆 인도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전동킥보드 한 대가 아이 옆을 쌩하고 스쳐 지나가더군요. 다행히 살짝 스치는 정도였어요. 한 발짝만 옆으로 갔으면 부딪혀서 다칠 뻔했어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너무 놀랐는데 사과 한마디 없이 금세 사라지더군요.”
 

‘한남대교 킥라니’ 등 툭하면 쾅~
뺑소니 포함 교통사고 5년 새 5배

2022년 30만 대까지 늘어날 듯
이용자들은 “주행공간 개선해야”
단속만으론 한계, 제도 정비 급해

지난달 30일 한 인터넷 포털 맘 카페에는 6살 유치원 아이를 둔 엄마의 글이 올라왔다. 전동킥보드에 자신과 아이가 다칠 뻔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며 “아이가 놀라 울고불고 한 적이 있다”는 또 다른 엄마의 댓글이 올라오는 등 이 글에 공감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아파트 앞서 전동휠 부딪힌 아이 중상
 
교통사고가 나 실제로 아이가 크게 다친 사례도 있었다. 지난 3월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는 전동휠과 아이가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입수한 CCTV 영상을 보면 전동휠 이용자 A씨는 보도와 차도를 오가며 운행하고 있었다. A씨는 은마아파트 후문을 나서던 초등학생을 치었다. 사고 후 A씨는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면서 가족에게 “아이가 넘어져 다쳤다”고만 말하고 사고 사실은 숨긴 채 떠났다. 아이는 다리가 부러지는 등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었다. 경찰은 주변 CCTV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A씨가 사고를 내고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고 A씨를 뺑소니범으로 입건했다.
 
최근에도 전동킥보드 뺑소니 사고가 다시 화제로 떠올랐다. 일명 ‘한남대교 킥라니’ 사건이다.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와 운전자를 놀라게 하고 사고를 유발하는 고라니에 빗대 만들어진 말이 ‘킥라니’다. 얼마 전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지난 5일 서울 한남대교에서 벌어진 전동킥보드 사고 관련 차량 블랙박스 영상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12차로 도로를 무단으로 가로질러 달려오던 전동킥보드가 오토바이를 치는 장면이었다. 헬멧 같은 보호 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킥보드 이용자는 사고 수습도 하지 않고 반대편 차로로 도망쳤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전동킥보드나 전동휠 같은 개인형 이동수단 이용자 수가 늘면서 교통사고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2014년 49건에 불과한 사고가 5년 새 233건으로 5배나 급증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은 2017년까지 7만5000대에 불과했던 개인형 이동수단이 2022년엔 20만~30만대까지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전문가들은 늘어나는 개인형 이동수단에 대한 제도 개선과 적절한 법규 적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제호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새로운 교통수단 도입 초기에 올바른 이용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동킥보드 이용자 교통법규 준수와 안전운행 관리 감독 강화를 위한 관련 제도 정비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이용자들은 전동형 개인 이동수단을 정확히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거나 무관심하다. 지난 2월 한국소비자원이 이용자 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전동킥보드와 같은 전동형 개인 이동수단은 국내에선 인도나 자전거도로를 이용할 수 없고 차도로 다녀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 이용자는 인도나 자전거도로를 주로 이용하고 있었다. 공원·대학캠퍼스·아파트 단지 내 등 ‘도로 이외 장소’를 이용한다는 응답자는 69.5%(139명)였다. 또 자전거 도로를 이용한다는 응답자도 68%(136명)나 됐다.
 
이용자들은 현실 상황과 법규 사이에 큰 괴리가 존재한다며 불만을 자주 토로한다. 전동킥보드 관련 인터넷 카페 운영자 최민형(34·회사원)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매일 지하철역까지 전동킥보드를 이용한다”면서 “버스와 택시, 승용차가 자주 엉키는 출근 시간 대에는 위험해 어쩔 수 없이 인도나 자전거 도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썼다. 최씨처럼 전동킥보드 이용자들은 한국소비자원 설문조사에서 주행공간 개선(67.5%)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면허증 소지 여부를 신경 쓰는 이용자는 드물다. 현행법상으로는 16세 미만은 전동킥보드를 이용할 수 없다. 운전면허나 원동기장치 자전거 면허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부 중·고교생이나 면허증이 없는 대학생 등 성인도 자유롭게 전동킥보드를 이용한다. 잘 단속하지도 않는다. 안전모 착용 여부도 마찬가지다.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교통 담당 관계자는 “법규는 있지만 이를 그대로 적용해 일일이 단속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이용자들의 인식이 따라주지 않으면 단속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동탄 등서 자전거도로 이용 일부 허용키로
 
‘혁신과 안전’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올 하반기 이후 전동킥보드 이용자 수는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출퇴근 시간 교통 혼잡 대책으로 전동형 개인 이동수단 활성화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는 9월부터 경기도 동탄 등 일부 지역에서는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근거리(3~5km)에서 전동킥보드의 자전거도로 이용을 허용할 방침이다. 얼마 전 발표된 3기 신도시에서도 교통 문제 해소를 위한 대책 중 하나로 전동형 개인 이동수단에 대한 연구 용역도 진행된다. 공유경제 서비스를 앞세운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이를 활용하는 지자체가 생기면서 안전과 혁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해결책 마련이 숙제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해 전동킥보드 공유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인 K사 측은 “안전 문제를 최대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이용자들을 위해 헬멧을 비치했다. 대부분 이용자가 안전모를 따로 가지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또 개인형 이동수단의 법정 속도인 시속 25㎞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상황에 따라 중앙관제에서 제한 최고속도를 낮추는 기능도 탑재했다. K사 관계자는 “킥보드와 같은 전동형 개인 이동수단이 공유 경제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안전을 위한 기업의 노력과 정부·지자체의 현실성 있는 규제 대책 그리고 이용자의 안전 의식이라는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넉 달 새 3명 사망사고에 규제 법안 마련
공해를 유발하지 않는 친환경 교통수단이라는 이유로 유럽에서도 전동킥보드(전동스쿠터) 이용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가 자리 잡으면서 수요 증가를 부채질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지난해 말 1만5000대 전동킥보드가 운행됐는데 올 연말이면 4만 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유럽연합(EU)은 이미 2006년 1월 개인형 이동수단인 전기 미니 스쿠터의 사용을 합법화한 바 있다. 문제는 교통사고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전동킥보드 즐기는 파리 시민. [AP=연합]

전동킥보드 즐기는 파리 시민. [AP=연합]

최근 프랑스에서는 넉 달 새 3명이 전동스쿠터 관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 9일 30세 남성이 전동스쿠터를 타고 심야 시간에 파리 외곽의 고속도로에 진입했다가 오토바이에 치여 숨졌다. 전동스쿠터 탑승자는 헬멧도 착용하지 않은 채 심야에 고속도로의 추월차로를 달리다가 뒤에서 오던 오토바이에 치여 목숨을 잃은 것으로 조사됐다. 6월에는 대형트럭이 전동스쿠터를 들이받아 한 명이 숨졌다. 4월에는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지 않고 운행하던 전동스쿠터가 한 노인 보행자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노인은 목숨을 잃었다. 사고가 끊이질 않자 프랑스 정부는  ‘전동형 퍼스널 모빌리티’ 규제 법안을 마련해 올 9월 발효를 앞두고 있다.
 
인도 위에서는 전동킥보드의 주행이 금지되고 이를 어기면 135유로(약 18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또 최고속도를 시속 25km로 제한하지 않은 전동식 이동기기는 주행이 금지된다. 도시 내에서는 자전거 전용도로 혹은 제한속도가 시속 50km인 도로 위에서만 주행할 수 있다. 도시 외곽에서는 차도 주행이 금지되고 자전거 전용도로에서만 주행할 수 있다. 이밖에 ▶12세 미만의 주행자 헬멧 의무착용 ▶전·후방 조명과 브레이크, 경적 장치 부착 등 규정이 깐깐해졌다.
 
독일은 프랑스보다 관련 법 규정이 다소 느슨한 편이다. 도로에서의 전동킥보드 전면 허용을 놓고 독일 의회에서는 격렬한 찬반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5월 중순 독일 상원은 관련 법안을 최종 승인했다. 그리고 6월 중순부터 전동킥보드 이용이 전면 합법화됐다.
 
▶차로와 자전거도로에서는 운행할 수 있지만 인도에서는 금지하고 ▶최소 연령은 14세, 헬멧 착용은 의무 사항이 아니며 ▶운전면허는 필요 없으며 최고 시속은 20km로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면허와 안전모 착용 규정이 국내와 다른 것이 특징이다. 독일은 전동킥보드 전면 허용 이후 음주 운행 및 각종 법규 위반자가 많아 골치를 앓고 있다고 한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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