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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똘히 읽게 되는 서정주의 시집들

중앙선데이 2019.08.17 00:20 649호 21면 지면보기

책 속으로 

내 데이트 시간

내 데이트 시간

내 데이트 시간
서정주 지음
은행나무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너무 자주 접했거나, 뾰족한 해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소모적인 친일논쟁에 지나치게 휘둘린 탓일 게다. 당신이 미당 서정주의 시행에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면 말이다.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자화상’의 유명한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 같은 구절은 실제로 일상적인 관용어처럼 쓰이지 않나.
 
하지만 무심코 그의 시집 아무 곳이나 펼쳤다가 미학적 쇼크 상태까지는 아니더라도 감탄을 거듭하며 골똘히 그의 시어들을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런 말들을 지어낼 수 있었을까. 이런 시각이 이를 테면 접근 포인트다. 그런 눈으로 볼 때 ‘화사(花蛇)’ 같은 작품이 그렇고, 5행짜리 짧은 시 ‘문둥이’ 같은 작품이 그렇다. 골똘히 시어들을 바라보게 된다는 말이다.
 
첫 시집 『화사집』과 두 번째 시집 『귀촉도』, 전집에는 실린 적이 있지만 단행본 시집으로 묶인 적이 없는 작품 55편을 모은 『내 데이트 시간』 등 최근 한꺼번에 출간된 7권의 시집은, 미당 시집들을 최초 출간 분위기 그대로 감상할 수 있는 책들이다. 2017년 같은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완간한 미당 전집의 각개전투 버전.
 
『귀촉도』 말미에 소설가 김동리가 붙인 ‘발사(跋辭)’ 가운데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인상적이다.
 
“그의 뇌락불기(磊落不羈)한 인격과 자유분방한 시혼은 그 처녀 시집 『화사집』을 통하여 이미 세상에 그 ‘비늘을 번득인’ 바 있지만 (…) 그는 가족과 일월과 천공과 그 모든 것과 결별하고 알몸뚱이로 용감하게 ‘심연’ 속으로 뛰어들었다.”
 
요령부득인 ‘뇌락불기’는 ‘마음이 활달하여 작은 일에 거리낌이 없고 남에게 아무 구속 받지 않는다’는 뜻. 그렇다면 천재적인 첫 시집, 흠결로 지적되는 행적 모두를 이해하는 실마리 같은 평가가 아닌가.
 
『내 데이트 시간』에서는 표제작을 감상해보자. 이렇게 시작한다.
 
“내 데이트 시간은/ 인제는 순수히 부는 바람에/ 동으로 서으로 굽어 나부끼는/ 가랑나무의 가랑잎이로다.// 그대 집으로 가는 길/ 도중에 섰는 갈대/ (…) ”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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