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근엄한 조선사회, 앞서 나간 재테크 책

중앙선데이 2019.08.17 00:20 649호 21면 지면보기

책 속으로

해동화식전

해동화식전

해동화식전
이재운 지음

18세기 이재운의 『해동화식전』
“치부는 하늘이 내린 욕망”
김극술 등 조선 부자 9명 소개

안대회 옮김
휴머니스트
 
미국에서도 20세기 초반까지는 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다. 그런 사회 분위기를 거슬러 월러스워틀스(1860~1911)가 지은 『부자가 되는 과학적 방법(The Science of Getting Rich)』(1910)은 ‘부자가 되는 것은 권리다’라고 주장했다. 존엄권·행복추구권·평등권·참정권 등과 마찬가지로 부자가 되는 것은 권리라는 것.
 
워틀스와 같은 생각을 가진 지식인이 조선에 있었다. 『해동화식전(海東貨殖傳)』(1750년께)의 저자 이재운(1721~1782)은 270여 년 전에 치부(致富)가 하늘이 내린 욕망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국가이념인 유교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주장이었다. 『해동화식전』은 조선의 『국부론』이자 재테크 분야 자기계발서였다.
 
‘해동화식전’은 무슨 뜻일까. ‘해동’은 “발해(渤海)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예전에 ‘우리나라’를 이르던 말”이요 ‘화식전’은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해동화식전』은 축재(蓄財)의 방법을 논하고 실제 사례로 9명의 부자를 소개했다.
 
『해동화식전』은 삼정승(三政丞, 영의정·좌의정·우의정)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부자가 서울과 지방에서 수십 가구에서 100가구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 맹아론을 실증하는 책이다. 또 ‘공무원이 최고다’라는 21세기 한국의 풍조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18세기 한양 시장의 번화한 모습을 그린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 작가 미상 . [중앙포토]

18세기 한양 시장의 번화한 모습을 그린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 작가 미상 . [중앙포토]

저자는 다음과 같이 부자를 예찬한다. “농부와 장인, 상인은 위로는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아래로는 가정을 부유하게 한다.” “부유하면 인색하더라도 이웃을 보살필 수 있지만 가난하면 어질더라도 가까운 가족조차 지키지 못한다.” “가난한 자는 관아에 내야 할 세금이나 환곡조차 제때 내지 못하니 충성스럽다 할 수 있는가?”
 
부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요즘보다 오히려 관대하다. 가치 중립적이다. 저자는 사치와 쾌락을 마음껏 누린 이진욱, 10명의 아내를 거느린 조막선을 소개한다.
 
김극술의 아내, 과부 안씨, 김생의 아내 등 여성의 역할도 흥미롭게 소개한다. 특히 김극술의 아내는 다음과 같이 부(富)의 주기론을 설파하며 변화를 이끄는 사람의 역할을 강조한다. “재물은 늘 형통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또 끝끝내 꽉 막히지도 않지요. 형통하면 오래 유지되고, 오래 유지되면 꽉 막히며, 꽉 막히면 또 변화가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나면 다시 형통하게 됩니다. 꽉 막힌 상태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사람에 달려 있습니다.”
 
이재운은 21세기 자기계발서 저자처럼 분류에 능했다. 재물을 기준으로 사람을 다음과 같이 5 유형으로 분류했다. “치산(治産)을 잘하는 사람은 재물을 크게 불리고, 그다음 사람은 아끼고 절약하며, 그다음 사람은 변화를 일으켜 형통하고, 그다음 사람은 고생을 참고 근면하게 일한다. 아무 수완이 없는 사람은 거지로 산다.”
 
부자도 등급이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최상의 부자는 삼재(三才, 하늘과 땅과 사람)를 겸비해야 하고, 중등의 부자는 땅과 사람을 얻어야 하며, 하등의 부자는 사람의 힘을 다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부자의 자질로는 의지·지혜·용기·정성·신의를 제시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춘 다음에야 이익에 관한 일을 더불어 말할 수 있다. 이 중에서 하나라도 없으면 다른 네 가지를 갖추고 있다 해도 성공하지 못한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