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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마라

중앙선데이 2019.08.17 00:20 649호 31면 지면보기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지난해 초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에 부정적 여론이 일자 청와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20대의 강한 반발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내부 회의 때도 한 참석자가 20대의 거부감을 우려했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젊을수록 진보 성향인 줄로만 알았고, 그래서 당연히 단일팀을 더 지지할 거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20대·기성세대 함께하는 불매운동
아베, 실족 면하려면 현실 직시해야

지난 14일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관련한 리얼미터 조사에서 가장 강경한 입장을 나타낸 연령층도 20대였다. 일본이 경제보복을 철회해도 침략 사죄와 배상 때까지, 또는 그 이후에도 불매운동을 지속할 것이란 응답이 56.4%로 모든 연령대 중 유일하게 50%를 넘겼다.
 
주변의 20대에게 물어봤다.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지 나 또한 궁금했다. 공통점은 “부당하고 불공정한 대우는 못 참는다”였다. 세계화 시대에 태어나 글로벌 스탠더드를 익히며 자란 그들에게 산업화·민주화 선배들의 좌우 대립은 철 지난 이데올로기 논쟁일 뿐이라고 했다. 대신 합리와 이성이 판단 기준으로, 영화 ‘기생충’의 대사처럼 선을 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게 그들 세대의 암묵적 합의라고 했다. 남북 단일팀도 그때까지 땀 흘린 한국 선수들이 피해를 입는 건 ‘부당’하다는 이유로 반대한 거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한국을 무시하며 ‘선을 넘었다’는 점에서 참을 수 없다고 했다.
 
20대 얘기를 꺼낸 이유는 아베 총리가 이번에 한국을 잘못 건드렸다는 걸 알려주기 위함이다. 일본 전문가인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 교수는 최근 한·일 갈등을 냄비 근성 대 나시쿠즈시(なし崩し·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목표를 이뤄나감)의 대결로 정의했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20대야말로 나시쿠즈시에 가깝다. 감정적 대응 대신 그들의 생각을 쿨하게, 그러면서도 지속적으로 표출한다는 점에서다. 한국의 ‘No 아베’ 정서에 기성세대의 냄비 근성과 신세대의 나시쿠즈시가 날줄과 씨줄로 결합돼 있는 셈이다. 불매운동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거란 얘기다.
 
다들 아베 총리도 쉽게 멈추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일각에선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말도 들린다. 아마도 아베 총리는 ‘시간은 나의 편’이라고 믿고 싶을 거다. 바둑으로 치면 한국은 팻감도 없고 실력도 부족해 조만간 악수를 둘 게 뻔하니 그때만 기다리면 된다 싶을 거다. 주변 훈수꾼도 제각각이니 내부 분열로 자멸할 게 뻔하다 싶을 거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게 있다. 시민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는 모른다. 일선 구청의 ‘No Japan’ 깃발을 하루 만에 내리게 하고 방한 일본인을 따뜻하게 맞이하자며 극단적 반일을 경계하는 힘이 어떻게 정부가 아닌 일반 시민들로부터 나올 수 있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을 거다. 사실 한국의 청와대도 모르는 걸 일본의 총리실이 어찌 알겠는가. 무지가 흠은 아니니 이제라도 현실을 직시하면 될 일이다. 국가 간 싸움은 국력이 강한 나라가 아니라 국민의 지지를 받는 나라가 이기는 법이다.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마라”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격언은 냉전 시대 국제정치 가이드라인으로 널리 인용됐다. 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현실적 충고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도 광복절 경축사에서 손을 내밀지 않았나. 그 손을 잡으면 된다. 계속 시대착오적인 제국의 부활만 꿈꾸면 자칫 ‘이사미 아시(勇み足)’로 끝날 수 있다. 스모에서 기세 좋게 상대를 밀어붙이다 힘을 잘못 써서 자기가 먼저 밖으로 발을 내디뎌 패하는 것 말이다. 부디 아베 총리도 외교의 고수이길 바란다. 공은 다시 아베 총리에게 넘어갔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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