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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패킹, 용변 봉투 낼테니 허용을" vs "80년대로 돌아가자는 거냐"

중앙선데이 2019.08.17 00:20 649호 24면 지면보기
“용변 봉투라도 낼 테니 백패킹을 허용해 달라.” “엄연히 법이 있는데 예외를 둘 순 없다.”
 

■ 백패커들과 1박2일 체험해 보니
국립·도립공원 등 대부분 지역 불법
출입금지 장소서 고기 굽고 야영도

백패커들 "갈 곳 없다" 허가제 요구
공단 "금지 행위, 논의 사안 아니다"

찬성 측 "보증금 받아서라도 풀어줘야"
반대 측 "발 들여놓는 순간 환경 훼손"

백패킹이 유행이다. 하지만 웬만하면 불법이다. 논란이다. 백패킹은 배낭(backpack)을 메고  산·들·바다 어디든지 가는 아웃도어 활동의 하나다. 하지만 통상 백패킹에는 취사·야영도 포함된다. 이 취사·야영의 선을 넘으면 불법으로 흐르게 된다. 백패킹은 자연공원법·산림보호법·하천법·자연환경보전법 등에 줄줄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8월 10일 해질 무렵 백패커들이 서울 관악·금천구와 안양 만안구에 걸쳐 있는 삼성산의 한 데크에 텐트를 설치했다. 이 백패커들은 취사를 하지 않고 이튿날 새벽 철수한다고 했다. 김홍준 기자

8월 10일 해질 무렵 백패커들이 서울 관악·금천구와 안양 만안구에 걸쳐 있는 삼성산의 한 데크에 텐트를 설치했다. 이 백패커들은 취사를 하지 않고 이튿날 새벽 철수한다고 했다. 김홍준 기자

취사·야영이 금지된 국립·도립·군립공원(이하 공원)에서 백패킹을 할 수 없고 대통령, 환경부 장관이 지정한 곳에서도 못 한다는 것이다. 자연휴양림·사유지 캠핑장서는 백패킹이 가능하다. 하지만 백패커들은 이런 낮은 곳의 휴양림·캠핑장보다 주로 산으로 향한다.

 
백패킹 인구는 최근 2~3년 새 급증했다. 백패킹 전문장비를 취급하는 마이기어의 김혜연 실장은 “등산 인구의 1~2%가 백패커들로 보인다”고 말했다. 월 1회 산행하는 등산 인구가 1000만 명이 넘으니, 10만~20만 명으로 추정된다는 얘기다.
 
유튜브에는 백패킹 경험담과 정보가 넘친다. 최근 한 방송사에서 한 유튜버가 올린 영상을 문제 삼았다. 산림보호구역에서 금지된 취사·야영을 했다는 것이다. 동부지방산림청은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고 공지했다.
 

# “지금 이 순간도 불법 백패킹 수백 건”
최고 36도까지 치솟은 지난 3~4일, 백패커 3명과 운악산(935m)으로 향했다. 국내에서 백패킹이 가능한 몇 안 되는 곳 중 한 곳이다. 
 
2016년 7월부터 1년 5개월 동안 세계 곳곳을 백패킹하며 SNS 스타로 떠오른 민미정(41)씨는 “운악산에서는 불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합법도 아니다”라며 “해당 지자체에 문의하니 취사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합법이 아니라는 말은 ‘허용’이 아니라 ‘자제’라는 뜻이었다. 최진선(39)씨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불법 백패킹 수백 건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명자(51)씨는 “우리나라에서 백패킹 할 곳이 별로 없어 해외로 나가기도 한다”고 밝혔다.
8월 3일 해질녘의 운악산. 오른쪽 능선 데크 위에 백패킹 '박지'가 보인다. 백패커들은 이렇게 자연 속에 묻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끼기를 원하지만 법을 지키며 갈 수 있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김홍준 기자

8월 3일 해질녘의 운악산. 오른쪽 능선 데크 위에 백패킹 '박지'가 보인다. 백패커들은 이렇게 자연 속에 묻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끼기를 원하지만 법을 지키며 갈 수 있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김홍준 기자

8월 3일 한 밤의 운악산. 능선 위 백패커들의 텐트가 랜턴 불빛을 받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김홍준 기자

8월 3일 한 밤의 운악산. 능선 위 백패커들의 텐트가 랜턴 불빛을 받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김홍준 기자

8월 4일 운악산에서의 해맞이. 오른쪽 능선 데크 위에 백패킹 '박지'가 보인다. 백패커들은 이렇게 자연 속에 묻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끼기를 원하지만 법을 지키며 갈 수 있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김홍준 기자

8월 4일 운악산에서의 해맞이. 오른쪽 능선 데크 위에 백패킹 '박지'가 보인다. 백패커들은 이렇게 자연 속에 묻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끼기를 원하지만 법을 지키며 갈 수 있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김홍준 기자

백패커들은 국립공원공단(이하 공단) 등 관련 기관에 백패킹이 아웃도어 추세인데 허가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삼성산에서 만난 백패커 박종영(55)씨는 “규제만 하니 저항심리로 백패킹을 더하게 되는 분위기”라며 “이미 백패킹 인구가 많으니 차라리 양성화해야 진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환경문제가 걸림돌이라면 외국처럼 용변 봉투라도 내겠다”며 "백패킹 허용 조건으로 위법 시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것도 검토해 달라“고도 밝혔다. 실제 미국, 일본은 물론 베네수엘라에서도 용변봉투 검사를 조건으로 백패킹을 허용하며 이를 어길 경우 강력한 벌금을 물리고 있다.

 
하지만 공단에서는 백패킹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강병선 공단 환경관리부 차장은 “관련법에 분명 금지행위라고 명시돼 있어 허용 여부를 논의할 수조차 없는 사안”이라며 “허용한다면 법적 예외를 두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백패킹 허가는 향후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주장도 많다. 정인철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국시모)’ 사무국장은 “공원 이용자들의 인식이 개선되면서 비법정탐방로 이용, 취사, 야영 등의 적발 건수가 감소 추세”라며 “이 와중에 백패킹을 허용한다면 자연공원법을 지킨 국민의 반발이 심할 것이고 법의 위상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고 밝혔다. 공단에서 적발한 비법정탐방로 출입행위는 최근 3년간(2016~2018년) 연평균 907건으로 전체  위법행위 1위(35%)다. 취사는 524건(20%), 야영은 145건(5%)이다. 하지만 이 수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백패킹을 허용한다면 ‘도시 어부’ 방영 후 급속도로 퍼진 해상공원에서의 낚시, 백두대간 종주 중 금지구역 출입 등과 관련한 민원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 국장은 “이럴 경우 자연공원법·산림보호법 등 관련법 자체가 어그러진다”고 밝혔다.
8월 3~4일 운악산에 백패킹 하며 사용한 장비들. [사진 민미정]

8월 3~4일 운악산에 백패킹 하며 사용한 장비들. [사진 민미정]

# “세심한 부분까지 단속 어렵다”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린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백패킹이 환경부 혹은 공단에서 관리되지 않는 건 이미 관리할 수 없는 수준으로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아웃도어 레크리에이션은 세계적 추세인데 이를 억누를 수만은 없다”고 주장했다. 레저업계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안전·시설·관리의 문제가 있어 정비 기간이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보증금이나 관리비를 징수해서라도 풀어주는 게 순리”라고 밝혔다.
8월 3~4일 운악산에서 백패킹을 한 민미정·조명자·최진선(왼쪽부터)씨가 최고 36도까지 치솟은 무더위 속에서도 활짝 웃고 있다. 이들은 "국내에서 백패킹 할 곳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김홍준 기자

8월 3~4일 운악산에서 백패킹을 한 민미정·조명자·최진선(왼쪽부터)씨가 최고 36도까지 치솟은 무더위 속에서도 활짝 웃고 있다. 이들은 "국내에서 백패킹 할 곳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김홍준 기자

15kg 이 넘는 배낭을 메고 운악산 정산으로 향하는 조명자·최진선 ·민미정(오른쪽부터)씨. 김홍준 기자

15kg 이 넘는 배낭을 메고 운악산 정산으로 향하는 조명자·최진선 ·민미정(오른쪽부터)씨. 김홍준 기자

반면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는 “아무리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노력을 해도 백패커들이 숲에, 계곡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훼손이 시작된다”며 “백패킹을 허용하면 백패커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 교수는 "공원마다 취사·야영이 벌어져 환경 훼손이 극심했던 70~80년대로 돌아가선 안된다"고도 했다. 한 지자체의 산림경영 관계자는 “한국인들은 자연을 이용하면서 돈을 내는 데 인색한 편인데 과연 보증금 같은 비용을 치를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호젓한 곳을 찾아 해질녘에 사이트를 구축하고 해 뜰 때 철수하는 백패커들의 특성상 현재의 공단 인력으로는 단속이 어렵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공단 관계자는 “취약지역별로 기획·특별 단속을 벌이고 있다”며 “하지만 공원이 워낙 넓어 세심한 부분까지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백패커는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줄타기할 수밖에 없을까. 산악계의 한 원로는 “공단에서 저지대 탐방 활성화를 유도하는 만큼 백패커들도 여기에 맞춰 활동범위를 맞춘 뒤 논의를 넓혀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철 국시모 국장은 "공단은 내년 22개 국립공원에 대해 타당성 조사에 들어간다”며 “백패커들이 허가제를 원한다면 정식으로 공단에 민원을 제기해 논의의 테이블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밝혔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백패커들의 철칙 '흔적을 남기지 말라'
최초의 백팩(배낭)은 1991년 알프스에서 발견됐다. 기원전 3400~3100년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 옆에 놓인 배낭은 나무와 옷, 동물 가죽으로 만들어졌다. 유희로서의 백패킹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불분명하다. 올레 베르가스가 20세기 초에 룩색(rucksack)을 만들었을 때, 혹은 1920년 로이드 넬슨이 최초의 캠핑 배낭을 만들었을 때, 아니면 1951년 딕 켈티가 현대적 프레임이 적용된 배낭을 만들었을 때를 백패킹의 출발점으로 보기도 한다.
 

켈티의 배낭은 나무 프레임이었다. 이후 알루미늄 프레임, 허리 패딩, 지퍼 수납 등으로 진화했다. 당시 히피 문화가 백패킹 확산에 일조했다. 파리·룩셈부르크 등 서유럽에서 출발, 이스탄불·테헤란·헤라트(아프가니스탄)·페샤와르(파키스탄) 등을 거쳐 인도 델리까지 이르는 ‘히피 트레일’이 인기였다.
운악산 병품바위를 바라보고 있는 민미정, 조명자, 최진선(왼쪽부터)씨. 배낭 헤드가 머리 위에 있을 정도로 짐이 많고 무겁지만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김홍준 기자.

운악산 병품바위를 바라보고 있는 민미정, 조명자, 최진선(왼쪽부터)씨. 배낭 헤드가 머리 위에 있을 정도로 짐이 많고 무겁지만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김홍준 기자.

 
백패커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신념은 '흔적을 남기지 말라(Leave No Trace, LNT)'다. 환경보호를 위해 쓰레기와 자연 훼손 등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LNT는 1991년 미국 산림청과 전국아웃도어리더십학교(NOLS)에서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야외 활동 기술에 대한 지침으로 만들어진 뒤 환경보호 교육단체인 LNT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계정 #insider_min으로 널리 알려진 백패킹 여행가 민미정(41)씨는 “대학 수강 과목을 예로 들면 LNT는 기본 교양이자 전공 필수”라며 “그만큼 지키기 어려우면서도 꼭 지켜야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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