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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핵심은 D램…한국 반도체 견제, 일본 뒤에 미국?

중앙선데이 2019.08.17 00:02 649호 10면 지면보기

미·일의 반도체 전략 

반도체 전문가들은 “세계 메모리반도체전쟁의 조짐은 진작부터 보였다”고 말한다. 일본이 경제전쟁을 도발하며 반도체 핵심소재와 부품에 먼저 손을 대면서 국제 분업체제인 ‘글로벌밸류체인’을 깨는데도 미국이 침묵을 지키는 건 미국도 이 전쟁의 한 당사자로 뛰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바마 말기 과기자문위 보고서
“중 반도체 부상 막고 타국도 통제”

마이크론, R&D 인력 삼성의 두 배
인텔, 신메모리 ‘옵테인’ 투자 확대
일본이 글로벌 체인 깨는데도 침묵

일 게이단렌, 작년 소재 전수 조사
한국 D램에 태클 걸려고 금수 조치

특히 지금 벌어지는 메모리전쟁의 양상은 과거와는 다르다. 과거 메모리시장재편을 불러왔던 70년대 말부터의 ‘미-일 반도체 대전’과 90년대 말 ‘세계 메모리 진영의 치킨게임과 통상전쟁’은 모두 시장 점유율을 둘러싼 다툼이었다. 반면 이번엔 4차산업혁명과 맞물려 한국의 D램 점유율이 70%를 넘어서는 상황을 미국·일본에선 국가안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간단치 않다. 반도체 전쟁은 한·일 경제전쟁과 또다른 관점과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다.
  
고성능 IT기기일수록 D램 수요 늘어
 
◆반도체전쟁의 조짐=2017년 미국 오바마 행정부 말기에 과학·기술대통령자문위원회는 ‘미국의 장기적 반도체리더십 확보를 위한 대통령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의 핵심내용은 중국 반도체산업의 부상을 철저히 막으라는 권고와 미국의 세계반도체시장 지배력 확보에 관한 전략이었다. 반도체 분야 거래에 더 엄격하고 광범위한 감독이 필요하고, 투자 표준을 개발해 중국이 이를 어겼을 경우 제한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며,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도 반도체 산업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도록 미국이 나서야 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미국 산업계 관료들은 중국 기업의 투자와 신규 사업, 라이선스 거래 등으로 당국의 감독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한마디로 미국이 세계 반도체업계에 대한 관리·감독권을 행사해 시장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놓고 미국이 반도체 패권을 다지기 위해 뭔가 일을 할 것이라는 예측은 당시부터 나왔었다.
 
지난해 5월 일본 도호쿠대학에선 일본의 반도체전략을 점검하는 ‘나노전자기술전략을 위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 이전에 게이단렌(經團連·경제단체연합회)이 주축이 돼 반도체 시스템부터 소재까지 현황을 전수조사하며, 일본이 반도체 주도권을 다시 쥐기 위한 전략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의에서는 그 일부를 공개적으로 검토했다. 일본은 지난해에 일본내 반도체산업의 현황을 파악하고 국제적 반응에 대한 탐색을 끝냈다는 얘기다.
 
물론 여기에서 반도체전쟁을 위한 구체적 시나리오가 나왔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처럼 미국과 일본이 최근 1~2년 사이 반도체 산업의 현황 파악을 끝내고 향후 주도권을 잡기 위한 구체적 전략을 짜는 동안 한국에선 아무런 전략적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왜 지금 메모리인가=“미사일도 AI가 통제하는 시대가 될 때, 이 AI에 대량으로 투입돼야 하는 가장 중요한 반도체는 고성능 D램이다. D램을 장악한 나라가 AI도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의 말이다. 그는 “AI시대를 주도할 메모리반도체 패권을 현재처럼 한국이 쥐고 있는 상황 자체를 미국이 불편해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실제로 컴퓨터와 휴대폰의 성능이 고도화될수록 D램의 성능은 가파르게 상승했고, 기기 안에 투입되는 비중 역시 크게 늘었다. 올해 전체 반도체시장에서 메모리의 비중은 30%정도다. 1987년엔 15%대였다. 고성능 기기일수록 D램의 사용량을 늘려서 성능을 개선해온 것이다. 인간의 뇌 반응속도에 쫓아가는 AI라는 초고성능 기기를 개발하자면, D램의 사용량은 가히 폭발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황 교수는 "미국 D램업체인 마이크론의 D램 연구개발인력은 삼성전자의 2배다. 일본 엘피다를 인수해 얻은 인력과 미국 인력이 나뉘어 한쪽이 차기 D램, 다른 한쪽이 차차기 D램을 동시 개발한다”고 전했다. 현재 마이크론은 삼성전자를 거의 따라잡았다. 하지만 차기와 차차기 연구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점에서 언제 뒤집힐지 모른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 인텔사의 신메모리인 3D X포인트 ‘옵테인’의 향방도 주목할 거리다.
  
미·일 전략 짜는 동안 한국은 ‘뒷짐’
 
◆D램과 옵테인의 격차 유지하기=인텔은 CPU 최신 제품에 자신들이 만든 메모리 ‘옵테인’을 메인메모리로 채택한 제품을 내놨다. 이 제품에서는 D램을 CPU와 메인메모리를 연결해주는 캐시역할로 채택했다. 그동안 PC는 S램이나 M램을 캐시로 하고 D램을 메인메모리로 해왔다. 현재 옵테인 제품은 D램보다 성능이 5%정도 뒤진다. 경제성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인텔은 옵테인 드라이브 정책을 선언하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CPU를 가진 인텔이 독자적 메모리 전략을 밀어붙이는 것은 신경 쓰이지만 D램이 5% 우위를 계속 지키면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D램의 연구·개발·성능개선에 잠시도 지체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은 정확하게 한국의 차기 D램 전략에 태클을 걸었다. EUV(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 금수조치가 그것이다. 이는 2020년부터 양산에 들어갈 차기 D램의 핵심부품이다. 지금 양산을 앞두고 마지막 연습에 피치를 올려야 할 때 불안감과 불확실성으로 업계를 흔들어버린 것이다. 이 제품은 일본이 거의 독점하는 것으로, 현재 한국이 찾아낸 벨기에 제품도 일본이 투자한 업체의 것이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소재와 부품은 결국 기업이 해결할 것으로 본다”면서 “문제는 시한에 첨예한 경쟁이 벌어지는 메모리에서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리는 상황이 반복되는 방식으로 일정을 교란하는 것만으로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정치적 해석도 나온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이번 반도체 사안을 놓고 국내외 언론 반응을 분석해보면, 일본보다 미국의 중국 견제용 심리가 더 많이 읽힌다”며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행적을 보면서 미국 대선 이전에 한국 반도체 공장을 미국으로 유치하려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한국, 비메모리도 중요하나 메모리에 더 전념해야”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미·중·일 메모리 개발 인력 늘리는데
우린 줄고 있어 경쟁력 유지 어려워
  
 “아직 한국은 메모리에 더 전념해야 한다.” 국내 대표적인 반도체학자인 황철성(사진)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이번 일본 도발로 시작된 반도체전쟁은 ‘좀 더 전략적 관점으로 심각하게 바라봐야 하는 국면’이라고 했다. 인공지능 등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결국 메모리를 장악한 쪽이 이기는 게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어서다. 지금 미국이 중국에 D램 기술이 넘어가는 것을 가장 신경 쓰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비메모리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와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비메모리 시장이 더 크다. 이 시장 개척도 우리에겐 중요한 문제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제한된 반도체 인력을 어떻게 안배하는 게 최적인지 따져야 한다. 요즘 미국·일본·중국은 메모리 개발인력을 확확 늘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인구도 적고, 신규 반도체 연구자의 규모는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줄고 있다. 이런 인력구조로는 메모리 경쟁력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수준이다.”
 
반도체가 비인기 연구종목이라는 얘긴 들었다. 왜 그렇게 됐나.
 “정책당국이 대학의 반도체 연구를 지원하지 않아서다. 원래 미국도 반도체 정책은 정부가 대학연구소 등을 지원해 좋은 기술이 나오면 기업과 연결해 기업에서 발전시키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데 우린 양대 기업에 떠넘겼고, 대기업은 대학연구나 중소기업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인력이 이탈하게 됐다. 서울대 반도체 관련학과 100여 명의 교수 중 반도체 전공은 4명, 설계가 5명이다.”
 
요즘 반도체 위기도 소재·장비 얘기를 주로 하지 메모리 얘기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일본이 수출규제한 종목의 의미를 유심히 봐야 한다. EUV는 우리 차세대 D램 일정을 교란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다. 지금 세계는 한국의 D램 지배력을 약화하려는 쪽으로 움직이는데 정부와 업계가 이에 장단을 맞춰줘선 안 된다.”
 
황 교수는 지금 반도체 문제는 ‘반일감정’ 같은 걸로는 극복할 수 없다고 했다. 세계 반도체 동향을 통으로 놓고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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