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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당 돌풍 성공방정식, 이번엔?…정주영ㆍ김종필ㆍ안철수 도전사

중앙일보 2019.08.16 05:00
민주평화당 비당권파 모임인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 소속 의원들이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민주평화당 비당권파 모임인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 소속 의원들이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1992년 통일국민당(이하 국민당), 1996년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 2016년 국민의당.
당해 연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제3 정당들이다. 기존 여당과 제1야당 중심의 양대 정당 구도를 뚫고 등장한 이들 정당은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을 동력 삼아 모두 20석 이상을 얻어 원내교섭단체까지 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최근 정치권에서 다시 ‘제3지대’ 논의가 한창이다. 민주평화당 이탈 세력과 바른미래당 내 호남 지역구 의원들이 먼저 치고 나왔다. “연말에 정계가 요동 치고 새 구도가 형성될 것”(조배숙 평화당 의원)이라면서 구체적인 정계개편 시간표까지 예고하고 있다.
 
역대 총선을 전후로 한 제3지대 정당의 흥망사(史)를 돌아보면,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현재 논의 중인 제3지대 신당도 세 가지 ‘성공방정식’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수 있다.
 

①강력한 구심점은 선택 아닌 필수

총선에서 선전한 제3 정당에는 구심점 역할을 한 대선 주자급  리더가 있었다.
1992년 2월 공식 출범한 통일국민당은 그 해 3월 실시한 14대 총선에서 총 31명의 당선인을 냈다. 창당 후 한 달 만이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라는 정당의 오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민당은 정확히 정 명예회장과 운명을 같이 했다. 정 명예회장이 그 해 말 대선에 출마해 16.3%의 득표율로 3위에 그친 뒤 다음 해 2월 의원직을 사퇴하고 당을 떠나면서 급속히 쇠락했다.
 
1992년 1월 10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등이 서울 종로구 평동 서진빌딩에서 통일국민당 창당 발기인 대회를 끝낸 뒤 현판식을 하는 모습. [중앙포토]

1992년 1월 10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등이 서울 종로구 평동 서진빌딩에서 통일국민당 창당 발기인 대회를 끝낸 뒤 현판식을 하는 모습. [중앙포토]

1996년 15대 총선에서 50석을 거둔 자민련은 충청권 맹주였던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간판이었다.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의원 20명이 만든 국민의당은 당 공동대표로 선거를 진두지휘한 안철수 전 의원이 구심 역할을 했다. 그 결과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38석을 확보하며 일약 원내 3당으로 부상했다. 야권 분열(1여 3야) 구도 속에서 대단한 선전이라는 평을 받았다.
 

②‘돌풍 어게인(Again)’은 없었다

그러나 총선에서 20석 이상을 확보해 원내교섭단체로 진출한 제3당이 4년 후 치른 총선에서도 교섭단체 지위를 유지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국민당은 1993년 2월 정 명예회장의 탈당 이후 김동길 총재 체제로 1년 여를 버티다 1994년 7월 박찬종 전 의원의 신정치개혁당과 합쳤다. 합당 후에도 이렇다 할 세를 발휘하지 못하다 1995년 자민련에 흡수됐다.
 
1995년 2월 21일 서울 앰배서더호텔에서 열린 자유민주연합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김종필 전 총리 등 발기인들이 두 손을 맞잡고 들어올리던 모습. [중앙포토]

1995년 2월 21일 서울 앰배서더호텔에서 열린 자유민주연합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김종필 전 총리 등 발기인들이 두 손을 맞잡고 들어올리던 모습. [중앙포토]

자민련도 15대 총선에서 50석을 획득하며 급부상했지만, 돌풍을 재현시키진 못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17명 당선에 그쳤고, 2004년 17대 총선에선 참패(4명 당선)한 뒤 군소정당으로 쪼그라들었다. 이후 일부 의원이 충청권 기반 국민중심당으로 옮기고 나머지는 한나라당에 흡수되면서 자민련은 소멸하고 말았다. 20대 총선에서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의 융합’을 표방하며 3당 정립(鼎立) 구도를 만들어낸 국민의당은 2018년 2월 바른정당과 합당해 바른미래당을 창당하면서 2년 만에 해산됐다.
 

③ 총선 코앞에 두고 이합집산 

정당 변천사를 살펴보면 ‘거사’는 대개 총선 임박 시점에서 이뤄졌다.
국민당은 14대 총선(1992년 3월 24일)을 불과 한 달 앞둔 1992년 2월 8일 창당했다. 국민의당 창당 시점은 20대 총선(2016년 4월 13일) 2개월 전인 그해 2월 2일이다. 이런 과거사를 고려하면 아직은 제3지대 정계개편의 시간은 좀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자민련은 1995년 거대 여당이던 민주자유당에서 탈당한 김종필 전 총리와 그를 따르던 현역 의원 9명이 그 해 3월 21일 창당했다. 15대 총선 투표일(1996년 4월 12일)을 1년 여 앞둔 시점이었다.
 
2016년 2월 2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당시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무대에 오르던 모습. [연합뉴스]

2016년 2월 2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당시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무대에 오르던 모습. [연합뉴스]

제3지대를 노린 신당 창당이 대개 국회의원 선거가 가까워진 시점에 급박하게 이뤄지긴 했지만, 이합집산 움직임은 그 전부터 물밑에서 나타나곤 했다. 최근 제3지대 창당론과 관련해서도 “빅텐트론은 물밑 대화와 계획 단계를 거쳐 12월 정기국회 끝난 뒤 활동해도 늦지 않을 것”(박주선 바른미래당 의원)이란 얘기가 나온다. 여러 주장을 종합하면 내년 4월 21대 총선을 4개월 앞둔 올해 말부터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수면 위로 떠오를 듯하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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