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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국익의 시간과 보편의 시간(II)

중앙일보 2019.08.16 00:13 종합 31면 지면보기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중년들에게 ‘동짜몽’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도라에몽은 진구와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1945년의 도쿄 동물원으로 시간여행을 간다. 미군의 공습으로 수많은 일본인들이 산화되기 직전이지만 살처분 당할 운명의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바치는 마당에 동물들 역시 기쁘게 목숨을 바칠 것이라며 직접 코끼리를 죽이려는 일본인 병사에게 이들이 던지는 말은 “걱정 말아요, 전쟁은 어차피 곧 끝나고 일본이 질테니까!”(중앙일보 2018년 8월 20일자)
 

일본 경제도발, 국익 문제 아닌
보편적 세계 질서에 대한 도전
단기적 국익에 대한 집착 넘어
보편성 향한 여정 포기 말아야

전후 70년 동안 일본이 도달한 보편성의 모습은 여기까지다. 충성스러운 황국의 병사들은 타자들일 뿐이며, 일본인들은 우리에 갇힌 채 떼죽음을 당하는 동물들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작은 생명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철학은 무해해 보이지만, 그것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한 생명만이 소중하다는 반전을 내포하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무력한 피해자 마인드는 그들을 세계정세에 대한 보편성에서 더욱 멀어지게 했는지도 모른다.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와도 세상에서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이나 인류를 구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도라에몽의 나라는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된 이후에도 유독 극동에 갇힌 정치를 반복하였다.
 
지금 일본 정부가 시작한 무역분쟁은 그런 의미에서 딱 그만큼 촌스럽다. 그들의 외교적 도발은 한국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 아니라 인류가 수십 년 동안 쌓아 올린 국제 무역질서와 고도화된 분업체계를 어지럽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냉전 이후 전 세계가 누렸던 번영의 배경에는 자유무역협정과 국가 간의 경제통합이 있었다. 물론 국가 간 그리고 국가 내 불평등의 문제가 항상 제기되어 왔지만 미국의 노동자들이 중국에서 생산된 값싼 가전제품을 사용하고 한국의 소비자들이 칠레산 포도를 쉽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을 우리는 역사의 발전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일본이 시작한 무역도발은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뒤흔드는 국제무역질서나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려는 브렉시트의 아시아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본 무역도발의 추가적 문제는 강제징용과 관련된 국가 간 정치적 이슈를 경제적 영역으로 공공연하고 서투르게 노골적으로 확전시킨 것, 즉 자유무역의 첫 원칙을 훼손한 데 있었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 본인은 물론이고 일본 외무성이나 경제산업성이 일관된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을 본다면 스스로도 자신들이 보편적인 국제질서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은 강제징용자 배상문제에 있어서도 그 핵심에 있는 보편적인 인권이라는 문제를 보지 못한다. 나는 한·일 갈등의 원인이 된 이 문제에 정작 구체적인 피해자들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한일협정과 국제법, 양국의 사법체계와 법리에 대한 이야기들로 온통 채워지는 것이 의아할 따름이다. 문제가 되는 것이 배상이라면 구체적인 피해자들이 누구이며 이들이 뿌렸던 피와 땀과 고통은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뿌려졌는지에 대한 사연은 정작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강제징용자 문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법적으로 추상화된 문제로만 다가온다.
 
한·일 갈등은 치열한 법리 다툼이기도 하며 정답 없는 국가 간 힘겨루기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건 이러한 법리의 대립이 예고나 준비 없는 선제적인 무역보복을 정당화해줄 수는 없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법리를 법리로 다투고 국익을 국익으로 찌르고 방어하는 과정에서 매우 테크니컬한 디테일만 남고 징용노동자들과 위안부들, 즉 피해당사자들의 구체적인 인권침해의 개인사들은 모두 증발했다는 사실이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서 관련 자료들을 수집·관리하고 이분들을 인터뷰하러 다니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일이며, 인권이라는 보편성에 한 발자국이라도 다가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편을 향한 여정은 또한 우리가 비로소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할 의무로부터 시작된다.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을 광복절에 대하는 “대한국인”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세계시민으로서 우리는 자문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정말 좋은 이웃인가. 우리는 베트남에 대해 사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 주변에 구조적으로 차별받는 외국인들은 없는가. 우리는 타인의 아픔, 그들의 과거와 현재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가. 날카롭지만 주인을 가리지 않는 보편의 칼날에 우리 스스로가 베이지 않게 조심해야 할 일이다.
 
앞서의 도라에몽 이야기는 적어도 ‘동아시아 패권주의’ 보다는 두 발짝 진보해 있다. 비록 반성은 없지만 군국주의를 타자화시키는 문화의 힘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울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우리의 보편은 무엇이고 우리는 그런 보편을 향한 여정에서 어느 만큼 와 있는가. 우리는 관용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연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안타깝게도 올여름 도라에몽 서울 신작 개봉은 취소되었다.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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