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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반일’ 잣대의 눈금은 정확한가

중앙일보 2019.08.14 00:03 종합 27면 지면보기
고정애 정치팀장

고정애 정치팀장

22년 전 신문을 펼쳐보기로 한 건 지인이 공유한 발췌문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일어난 1997년 말에 한국에서 벌어진 운동 중에서 ‘외제품 사지 않기’ 운동이 있었다. 나는 난리 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7개 신문의 전면 5단에 ‘무엇이 진정한 국산품인가’란 문구로 광고를 게재했다.”(『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
 
잊고 있었다. 정확하겐 1997년 12월 29일자 1면 하단에 실린 ‘무엇이 진정한 국산(國産)입니까?’였다. 해외에서 생산해서 국내 상표만 붙인 게 국산인가, 해외 상표라도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이 국산인가라고 묻는 내용이었다. 외국 합자회사로써 국내 판매용 제품의 97%를 국내에서 생산하고 6년간 1조6000억원에 달하는 신발을 수출한 기업은 어떻게 평가받아야 하느냐고도 했다.
 
화자(話者)는 당시 휠라코리아 사장인 윤윤수였다. 2001년 발간된 『춘아 …』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람들을 보면 상당한 착각 속에 사는 경우가 많다. 양말 한 켤레도 단순하게 국산이다 아니다 얘기할 수 없을 만큼 생산과정이 아주 복잡해졌다. (중략) 우리는 역사적으로 중국이나 일본의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다 보니까 ‘외국’의 ‘외’자만 들어가도 떤다. 외국 사람은 무조건 뺏어가는 사람으로 알고 그런 식의 사고에서 발전된 게 쇄국주의다. 정도의 차이뿐이지. 한국 사람 전체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 중 가장 현재에 맞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그거다.”
 
지인의 의도는 뚜렷했다. 한 창업자가 떠올랐다. 일단 A라고 칭하자. 고교생 때 부친을 잃은 그는 지방대 출신으로 43세에 창업했다. 네 명의 직원을 고용했고 5평의 공장을 돌렸다. 투자처로 미국 기업을 찾았다가 일본의 관계사를 소개받았다. 지분은 A가 51%, 일본이 49%였다. A에겐 돈이 부족했다. 처음엔 20%만 댈 수 있었는데도 일본 측이 양해했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흘러 공장은 2조원 매출에 3200명이 일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의 지분율은 7%대가 됐다.
 
누군지 짐작할는지. 한국콜마의 윤동한 전 회장이다. 월례조회에서 극우 성향의 동영상을 튼 게 논란이 돼 친일로 비난받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회사도 불매운동 대상이 됐다.
 
일각에선 윤 전 회장이 일본에서 수월관음도를 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이력 등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한다. 설령 그런 이력이 없더라도 그가 지금 정도의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여권 실세의 말대로 기업인의 경우 “고용을 많이 창출하고 세금 많이 내는 분들이 애국자”일 수 있어서다. 더욱이 그의 창업 경험이 그러하다면 일본에 대해 좋게 얘기할 수도 있을 거다. 그 정도의 다원적인 사회여야 한다고 믿는다.
 
현실은 복잡계다. 누군가 ‘아이오와에서 재배한 자동차(Iowa Car Crop)’이란 표현을 쓴 일도 있다. ‘반일’이란 비난 본능은 복잡계를 단순계처럼 착각하게 한다. 우리가 한 말, 한 행위가 일본, 일본인만을 향할 거라고 믿게 한다. 실제 다수 피해자는 우리, 우리 기업인데도 말이다. 그러는 동안 “국산 볼펜을 쓴다”고 일제 방송 장비 앞에서 말하고, 아베 정부를 비판하는 일본의 지식인과 언론을 인용하며 우리 언론과 지식인들은 우리 정부를 비판하지 못하도록 요구하는 소극(笑劇)도 벌어진다.
 
나심 탈레브는 한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탁자를 자로 재는 행위, 그게 탁자의 길이를 재는 행위일까. 아니면 자의 길이를 재는 행위일까”라고 물었다. 누군가에 대한 비난이 정도를 벗어나면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비난하는 사람이 비난받을 수 있다면서다. 우리의 ‘반일’ 잣대는 과연 제대로 된 걸까.
 
고정애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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