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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쟁이 되려면 정치말라"던 DJ···뒤따르던 이들의 현주소

중앙일보 2019.08.13 19:40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 서거 10주기를 닷새 앞둔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김 전 대통령 전집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행사가 열린 지하 1층 컨벤션홀엔 김대중 정부에서 일했던 인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맨 앞줄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앉았고, 그 뒷줄에 박지원 평화당 의원이 앉았다.  
 

[취재일기]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13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전집 30권 완간 출판기념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 세 번째부터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 의장, 김용학 연세대 총장, 권노갑 민주평화당 상임고문. [뉴스1]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13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전집 30권 완간 출판기념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 세 번째부터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 의장, 김용학 연세대 총장, 권노갑 민주평화당 상임고문. [뉴스1]

이 대표는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이었다. 대학 친구인 이 대표에 이끌려 정계에 입문한 정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DJ의 대변인이었고, 김대중 정부에선 여당 최고위원이었다. 박 의원은 청와대 공보수석과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다. 셋은 김대중 정부 성공을 위해 손을 맞잡았던 때가 있었다.
 
셋은 이제 각자 다른 위치에 서 있다. 정 대표와 박 의원은 행사장에서 악수도 하지 않았고,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박 의원이 속한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대안정치)는 전날 평화당 탈당을 발표했다. 정 대표는 이들을 “구태정치”라고 비난했다. 박 의원은 먼저 자리를 떴다. 이 대표와 정 대표도 곧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김대중 전집

김대중 전집

 
주요 정치인이 행사장을 떠난 뒤 1층에 전시된 DJ 전집을 훑어봤다. 전체 30권으로 분량만 1만7500페이지다. 흥미로운 글이 있었다. ‘정치를 하려는 후배들에게’란 제목의 글이다.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치를 빼면 나의 인생을 거의 제로가 된다”고 했던 바로 그 정치를 떠나고 쓴 글이었다. DJ는 10개의 조언을 했다.
 
가장 첫머리는 이랬다.
 
“어떻게 해서든지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출세하는 정치쟁이가 될 것인지, 아니면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 일생을 바치고 국민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정치가가 될 것인지 먼저 결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시작입니다. 전자가 되겠다고 마음 먹고 있는 사람에게 해줄 말이 없습니다. 꼭 듣고 싶다면, 정치를 하지 말라는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치하려는 후배에게 정치 하지 말라고 한 DJ는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주변에서 국회의원을 네 번 다섯 번 했어도 국민으로부터 이렇다 할 평가도 존경도 못 받고 오직 경멸과 비난의 대상이 된 사람을 많이 보아왔습니다”라고 했다. 실로 아픈 말이다.
 
DJ와 정치를 했던 이들이 이젠 다선 원로가 돼 민주당, 바른미래당, 평화당, 대안정치로 흩어져 있는 현재 정치 구도를 생각하니 이 조언에 특히 눈길이 갔다.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에게 ‘DJ였다면 지금 상황에서 뭐라고 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는 DJ와 함께 정치했고,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이었다. 장 이사장은 “지금은 노선이 달라서 다투는 게 아니잖아요. 각자 살려고 하는 거죠. 일부 정치인들은 DJ 이름만 빌려서 정치할 뿐 정신이나 사상을 계승하지 않았어요.”
 
DJ와 함께 정치했던 한 의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DJ의 리더십은 대단했어요. 결국에는 민주개혁 세력을 모아 평화적인 정권 교체에 성공했잖아요. 그런데 그 이후 그만큼의 리더십을 가진 리더가 나오지 않았어요. 그러니 여기저기로 흩어졌고, 힘을 모으기가 힘들어졌죠.” 그저 ‘골목 대장’ 정치를 할 뿐이란 얘기다. 그에게 과오도 적진 않겠지만, 많은 이들이 DJ와 같은 정치인이 사라진 정치판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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