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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91년 조국은 국가전복 꿈꿨나… 법원 "이적단체 가입했다"

중앙일보 2019.08.13 14:52
“국가 전복을 꿈꾸던 사람이 법무부 장관에 기용될 수 있느냐.”(12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사노맹 산하 사과원 활동 "후회했다"

“총·칼로 집권한 군사 정권에 맞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쏟은 민주주의의 열정을 폄하하지 말라.”(13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할 말이 많지만, 인사청문회에서 충분히 답하도록 하겠다.”(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오전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서울 종로구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오전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서울 종로구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조 후보자의 과거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 연루를 두고, 여야 의견이 맞서고 있다. 야당은 조 후보자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전력을 강조하는 반면, 여당은 사노맹은 민주주의 단체였으며 이후 조 후보자가 사면·복권됐다고 반박하고 있다. 당사자인 조 후보자는 청문회 때 밝히겠다고만 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노맹 사건에 대해 당시 상황을 기록한 1·2·3심 법원 판결문을 통해 사실관계를 짚어봤다. 모두 김영삼 정부 때 이뤄졌다. 판결문은 주광덕 한국당 의원실을 통해 제공받았다. 황 대표 발언을 판결문으로 체크했다. 
 
①“사노맹은 반국가 조직이자 국가전복을 꿈꾸는 조직” → 사실이다조국이 국가 전복을 꿈꿨나”  동조했다
판결문을 보면 1·2·3심 모두 사노맹을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헌법의 대전제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단체로서 국가보안법 제2조 제1항 소정의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하는 반국가단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전위활동가들에 의한 비합법적 선전선동 활동을 통하여 노동자계급의 통일전선을 구축하여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민중민주공화국을 수립할 것을 목표로 하는 노동자계급의 전위조직임을 표방”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1991년 4월 3일 안전기획부가 사노맹 사건의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증거물로 압수한 1만4천여점의 책자ㆍ유인물을 공개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1년 4월 3일 안전기획부가 사노맹 사건의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증거물로 압수한 1만4천여점의 책자ㆍ유인물을 공개하고 있다. [중앙포토]

다만 재판부는 조 후보자가 강령연구실장으로 참여한 ‘남한사회주의과학원’(사과원, 사노맹 산하 기구)에 대해선 의견을 달리했다. 사과원은 1심 때만 해도 ‘반국가단체’로 봤지만 2심에서 원심파기됐고 그대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2심 판결문에 따르면 “사과원은 그 자체로써 폭력적 방법으로 정부를 전복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는 국가변란을 직접적인 1차적 목적으로 삼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반국가단체가 아니라고 규정한다. 그러곤 “(사과원은) 반제반독점민중민주주의혁명을 통한 노동자 계급 주도의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주장하는 정치적 단체로써 우리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와는 서로 용납되지 아니하는 것이라 할 것이므로 이적단체”라고 했다.
 
즉 반국가단체에서 이적단체로 성격이 바뀐 것인데, 국보법에 따르면 국가의 변란 자체를 직접적이고도 1차적인 목적으로 삼으면 반국가단체, 반국가단체의 활동에 동조하는 게 목적이면 이적단체다. 두 단체의 궁극적인 목적은 동일하나,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에 따라 나뉘는 셈이다.  
 
다시 말해 “사노맹은 반국가조직”이란 표현은 판결문에 비추어 사실이며, 사과원은 반국가단체까진 아니지만 그 활동에 동조한 것도 사실이다. 2심 판결문엔 “(조 후보자가) 사과원이 사노맹의 활동에 동조할 목적인 가진 단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서도, 반국가단체인 사노맹의 활동에 동조할 목적으로 사과원에 가입했다”는 표현이 여러 차례 나온다.  
 
②“사노맹은 무장공비에 의한 사회주의혁명 달성을 목표로 폭발물을 만들고, 무기탈취 계획을 세우고, 자살용 독극물 캡슐까지 만들었다” → 안기부 발표 내용으로 판결문엔 나오지 않는다
 
황 대표의 이 같은 주장은 당시 안전기획부가 1990년 10월 30일 발표한 내용에 들어있는 것으로, 판결문엔 적시되지 않았다. 
 
다만 사노맹의 폭력 여부를 떠나서 조 후보자가 당시 폭력적 혁명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는 내용은 나온다. 1심에서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던 조 후보자는 2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으로 낮춰지는데 여기엔 다음과 같은 양형 사유가 나온다.  
 
“(조 후보자는) 사회주의 이론이 갖고 있는 일면의 장점을 인정하기는 하나 이에 대하여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지는 아니하며, 비합법적인 비밀·전위조직적 활동이나 폭력적 혁명방법에 의한 사회개혁은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가능하지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노맹이 폭력 수단을 준비했을 순 있으나, 적어도 사과원과 조 후보자는 이에 대해 회의적이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조국 후보자가 이 일들에 대해서 자기반성을 한 일이 있나” → 후회한 적 있다
조 후보자는 당시 항소 이유를 통해 자신은 사과원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고 거듭 주장했다. ▶수차례에 걸친 사과원 가입 권유를 거절해오다 1991년 7월경 강령연구실장으로 가입하기는 하였으나 1992년 3월경 탈퇴했다. ▶실장직을 맡기는 하였으나 대학 강의 기타 연구 활동 때문에 실질적으로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지 않았다 등이다. 2심 판결문에서도 이 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진다. 재판부는 “(조 후보자가) 과거 사과원 활동을 후회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최종적으로 조 후보자는 2심 판단 그대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는다. 양형은 그대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다. 다만 이후 국제 앰네스티는 1994년 ‘불공정한 재판을 받았거나 가혹행위를 받은 정치범 및 양심수’로 사노맹 관련자들을 포함시켰으며, 조 후보자 역시 국제 앰네스티에서 정하는 '올해의 양심수'로 선정된 바 있다. 1999년 김대중 정부로부터 사면·복권됐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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