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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성범죄자 알림e, 보완법안은 쏟아지는데…

중앙일보 2019.08.13 08:41

미성년자나 혼자 사는 여자도 그렇지만 성인인 딸을 둔 가정도 불안하다 ID: 아침햇살

 
지난 8일 '우편물 뒤지고서야 알았다, '그놈'이 옆집에 산다는 것을'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현행 성범죄자 신상공개가 출소자가 사는 건물번호(번지수)까지만 이뤄질 뿐 동·호수는 알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기사입니다.  
 
독자들은 '반쪽짜리' 성범죄자 신상공개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불안감이 퍼지며 제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어떤 대안들이 논의되고 있을까요?
  

"성범죄 피해자·여성 1인 가구에도 고지"

성범죄자 신상정보 고지 문제점.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성범죄자 신상정보 고지 문제점.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20대 국회에서 성범죄자 신상공개 개정안은 3건 발의됐습니다.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1년 사이에 발의가 집중됐습니다.
 
현재 이름·주소 등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는 '성범죄자 알림e' 홈페이지와 앱, 우편을 통해 공개합니다. 하지만 성범죄자의 주민등록상 주소와 실제 거주지는 건물번호까지만 공개됩니다.  
 
층·호수 등 세부 주소는 같은 읍·면·동에 사는 미성년자가 있는 세대와 아동·교육 관련 시설 등에만 제한적으로 우편 고지됩니다. 이를 두고 고지 대상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지난달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경진 당시 민주평화당 의원은 각각 고지 대상에 1인 가구 여성과 성범죄 피해자를 포함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이들도 같은 읍·면·동에 사는 성범죄자의 상세주소와 전출·입 여부를 고지받습니다.
 
김경협 의원은 "지난 5월 신림동 CCTV 사건처럼 혼자 사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늘고 있다"면서 "여성 1인 가구에도 성범죄자 신상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커졌다"고 발의 배경을 밝혔습니다.  
 
고지 대상에 성범죄 피해자가 빠진 점은 황당합니다. 김경진 의원은 "처음 법을 만들 때 고지 대상에 '피해자의 친권자'만 넣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미성년자였던 피해자들이 성인이 된 경우도 많아졌다"며 "고지 대상에 포함해 법의 허점을 채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가짜 주소 등록해도 처벌 못 해

성범죄자 주소가 정확히 기재되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초등생 자녀 키우고 있어서 검색해보니 주소가 일반 병원으로 돼 있고… ID: lovelove

 
김경진 의원의 법안에는 성범죄자가 신상정보를 등록하지 않거나 가짜로 제출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는 내용도 있습니다. 현재는 신상정보를 불성실하게 신고해도 이를 처벌할 수 없습니다.
 
신상정보 관리에도 구멍이 생기고 있습니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신상정보 등록 대상자 가운데 67명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습니다.
 
'성범죄자 알림e'의 정보를 모바일 메신저 등으로 공유하면 처벌하는 데 대해서도 불만이 큽니다. 지난해 8월에는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성범죄자 신상정보를 인터넷 등을 통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냈습니다.
 

"아동성범죄자·고위험군 특별 관리해야"

[중앙포토]

[중앙포토]

잇따라 보완 법안이 발의되고 있지만 개정은 지지부진합니다. 전희경 의원 안은 1년 가까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 확대가 '낙인 효과'를 일으켜 오히려 재범을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범죄 예방의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낙인 효과를 줄여 재범률을 낮출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대표적인 대안이 위험성이 높은 성범죄자를 특별 관리하는 방안입니다.  
 
실제로 실형 선고를 받은 모든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일반에 공개하는 경우는 해외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미국 등 대부분 국가에서는 아동·청소년 성범죄에 한정해 성범죄자 신상정보를 일반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예방 효과는 높이면서 교화 가능성은 높일 수 있다"면서 "현재처럼 전체 성범죄자의 정보를 공개하면서, 아동성범죄자나 재범 위험성이 높은 출소자는 따로 분류해 훨씬 자세하게 정보를 등록하고 고지 범위를 넓히는 것도 대안"이라고 말합니다.
 
고지 대상을 넓힐 뿐 아니라 가족이나 교육기관에서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대안도 있습니다. 승재현 연구위원은 "현재는 아버지가 알림e 화면을 캡처해서 딸에게 보여줘도 처벌받는다"면서 "정보통신망이라는 수단을 제한할 게 아니라 공유하는 사람의 범위를 적절히 지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진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

[사진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

 
다양한 대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신중한 입장입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개정안이 발의된 뒤 관계부처의 입장을 조율하고 있다”며 “아직 구체적인 의견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국회 논의에서 입장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앞선 기사에서 옆집에 강간 전과 2범인 출소자가 산다는 걸 알고 최근 이사한 사실을 제보한 양모(29)씨는 "충격이 커서 이사 후에도 집에 갈 때 휴대전화에 112를 누르고 신고할 준비를 하며 다닌다"고 말합니다. 하루빨리 대안을 찾아 여성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주는 게 정부와 사회가 할 일이 아닐까요?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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