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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에 아들 잃고 시작한 재단…24년 후 기부자는 아들 또래 학생들

중앙일보 2019.08.13 06:00
청심국제중고등학교 청예단 동아리가 지난 7월 22일 벼룩시장에서 얻은 수익금을 기부하기 위해 푸른나무 청예단을 찾았다. [사진 푸른나무 청예단]

청심국제중고등학교 청예단 동아리가 지난 7월 22일 벼룩시장에서 얻은 수익금을 기부하기 위해 푸른나무 청예단을 찾았다. [사진 푸른나무 청예단]

김종기(71) 푸른나무청예단 설립자 겸 명예이사장의 아들 대현군은 지난 1995년 고등학교 1학년 어린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비관적 선택을 했다고 한다. 
 

[착한뉴스]

대기업 임원으로 촉망받는 직장인이었던 김 이사장은 해외 출장 중에 이 소식을 접했다. 그는 “학교는 사건을 덮으려 쉬쉬하고, 가해 학생 부모들은 제 자식 챙기는 데 급급했다”고 당시를 기억한다. 이어 “왜 살아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었다”며 “그래도 아들을 지키지 못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죄책감에 다른 인생을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회사를 그만두고 자비로 작은 오피스텔을 빌렸다. 자기 아들처럼 학교폭력 피해로 아파하고 있을 청소년을 돕고, 더는 자신처럼 자녀를 잃는 부모가 없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곳에서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을 설립했고, 그것이 ‘푸른나무청예단’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재단 활동은 녹록지 않았다. ‘학교폭력’이라는 용어조차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청예단 관계자는 “그때는 ‘학원폭력’이라는 말을 사용했다”며 “학교에서 집단 폭력이나 따돌림이 일어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던 시절”이라고 전했다. 빠듯한 운영비에 직원 급여 걱정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김 이사장은 아들을 생각하며 학교폭력 관련 법률 제정을 위해 47만명의 국민 서명을 받아 국회에 청원했다. 그렇게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수 있었다.  
 
24년이 흐른 후 청예단은 전국 14개 지부와 10개의 청소년 시설을 운영 중인 청소년 전문 비정부기구(NGO)가 됐다. 지난 7월에는 사망한 대현군 나이 또래의 학생들이 벼룩시장에서 헌 교과서와 학용품을 팔아 번 돈을 재단에 모두 기부하기도 했다. 3년 동안 청예단과 인연을 이어 온 청심국제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그 주인공이다. 청예단은 아이들이 주도하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교내 동아리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7월 '학교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청심 청예단 동아리 학생들. [사진 청심 청예단]

지난 7월 '학교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청심 청예단 동아리 학생들. [사진 청심 청예단]

청심 청예단 동아리 고등 회장 장한나(16)양은 “동생이 기숙사에서 선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때 누구나 학교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양은 “우리의 기부가 청소년 폭력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현규진 청심국제중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장은 “청예단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교내 폭력 사건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현 위원장은 “청심국제학교가 사립학교인데, 모두 잘 사는 가정의 아이는 아니다. 매년 20%가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입학한다. 이 친구들을 SNS나 단체대화방에서 놀리는 사이버폭력이 심각했다”며 “하지만 청예단 동아리 가입 학생들이 늘면서 이런 일들이 자연스럽게 없어졌다”고 말했다.  
 
청심 청예단 동아리 중등 회장 서태빈(15)군은 “청예단 동아리가 만들어지고 저희 학년에서 학교폭력이 일어나 학폭위가 개최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학교폭력 발생횟수 0건이라는 생각을 하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기부 활동 외에도 엽서를 통한 또래 상담 등을 하고 있다. 왕따를 당해 밥 먹을 사람이 없어 고민이던 학생과 함께 밥도 먹고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김종기 푸른나무 청예단 명예이사장. [중앙포토]

김종기 푸른나무 청예단 명예이사장. [중앙포토]

지난 2일 김 이사장은 이러한 공로로 2019년 막사이사이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막사이사이상은 필리핀의 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매년 정부봉사, 공공봉사, 국제협조증진 등 6개 부문에 걸쳐 수여한다. 김 이사장은 “침묵이 없으면 폭력이 없고, 희망은 도움에서부터 시작한다”며 “학교폭력 예방 및 근절을 위해 모두가 동행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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