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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일본에서 듣는 문 대통령의 언어

중앙일보 2019.08.13 00:19 종합 28면 지면보기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일본 정치권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건 “가해자의 적반하장”이었다. 적반하장이라는 표현도 그렇지만 ‘가해자’라는 단어가 또 등장했기 때문이다.
 
‘가해자-피해자’ 논리는 오랫동안 한일관계를 지배해온 단어였다. 한국이 끊임없이 사죄를 요구할 수 있었던 것도 피해자가 완전히 용서할 때까지, 가해자는 계속해서 사죄해야 한다는 논리가 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일본 관저를 중심으로 “일본도 피해자”라는 논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죄도 보상도 충분히 노력해왔는데 한국은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당하게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했던 배경엔 그런 공기가 깔려있었다. 그런데 가해자라는 말을, 그것도 대통령의 입을 통해 다시 들을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최근 일본 정부 안팎에서 “오판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 여행까지 끊으면서 반발하는 것도, 수출규제 조치를 비판하는 국내외 여론이 생겨난 것도 예상 밖의 전개였던 것이다.
 
글로벌 아이 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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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다시는 일본에 지지않겠다. 남북 평화경제로 일본을 따라잡겠다”라는 발언은 문 대통령의 취지와 달리, 일본에선 전혀 다른 의미로 수용됐다. 도쿄의 한 외교소식통은 “문재인 정권의 ‘한반도 구상’에 협력하는 것이, 결국엔 일본을 공격하기 위해서라는 것 아니냐. 그러면서 북한문제에 협력해달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한반도 미래 구상에 일본의 협력은 장·단기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일본에 불필요한 오해를 주고 있다.
 
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감정적 언어로 상대를 공격한 것은 썩 좋은 수로는 읽히지 않는다. 대통령이 원론적이고 보다 차분한 언급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베 총리는 가급적 뒤로 물러서고 진흙탕 싸움은 경제산업상에 맡긴 것과 대조된다. 장수는 언제든 바꾸면 되지만,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최고결정자가 물러설 수 없는 선을 그어버렸으니, 현장의 외교관들에게 재량이 거의 없는 딜레마에 한일관계는 놓여있다.
 
이틀 뒤면 8.15 광복절 경축사가 나온다. 안타깝게도 화자의 의도가 그대로 전해지지만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메시지를 만든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의 메시지라면 다양한 청자를 고려해 아주 정치하게 써야하는 게 당연하다. 올 광복절 경축사는 남은 2년여의 한일관계를 규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때보다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윤설영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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