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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뺨 맞고 돈 뜯기고 다른 데 삿대질

중앙일보 2019.08.12 00:14 종합 30면 지면보기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조국씨한테는 흥미를 잃었다. 열 살 이상의 동료 교수이자 실증사학의 독보적 개척자인 이영훈 명예교수의 엄밀한 학술서를 보고 “구역질 나는 책” “부역 매국 친일파”라는 패륜적 언어를 사용할 때 ‘이건 뭐지? 이런 수준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기를 비판한 서울대 제자들에게 “태극기부대 같은 극우 사상을 가진 학생들”이라며 인신 공격, 색깔 공세를 서슴지 않았다. 서울대 커뮤니티에서 ‘가장 부끄러운 동문 1위’로 올랐지만 그의 행동에서 일말의 수치심도 발견할 수 없었다. 맹자는 인간성의 4대 조건으로 인·의·예·지를 들고 그중 의(義)의 시작을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했다. 권력의 자리에 한 2년 넘게 있다 보니 조씨의 인성까지 변했나 짐작할 뿐이다.
 

안보 위기를 기이하게 푸는 나라
조국 장관 지명에 관심조차 잃어
주권·헌법정신 수호 어떻게 하나

곧 있게 될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도 흥미가 나지 않는다. 무슨 하자가 드러나도 기어이 장관을 시키고야 마는 문재인 대통령의 성격을 알게 되면서 ‘이런 청문회를 왜 하지’라는 의문을 품게 된 까닭이다. 다만 조 후보자가 “국무위원이 된다면 헌법정신 구현과 주권 수호,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힌 포부엔 무관심할 수 없다. 법무장관이 한국 법의 정부 측 유권해석자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헌법 전문, 4조)’이며 그 ‘주권은 국민에게(헌법 1조2항)’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구한말을 연상케 하는 안보 위기에서 정부가 ‘남북한이 손잡고 일본과 싸우자’는 식의 기이한 대처 방안을 내놓고 있다. 이런 방식은 논리적으로 북한의 현 체제를 구성하는 비자유민주주의에 한국이 눈을 감아준다는 뜻일 수 있다. 자유민주적 가치 공유국을 적으로 돌리고 비자유민주적 전체주의와 한 팀이 되겠다는 반헌법적인 경향에 조국 후보자의 생각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북한과 평화공존 추구가 바람직하다 해서 그 체제의 인권 유린, 공포 정치, 가계 권력 세습이라는 봉건적 가치까지 한국이 공유할 수 있겠는지를 묻는 것이다.
 
또 북한은 최근 15일 동안 5회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는데 그때마다 한국과 한국인을 겨냥한 것이라고 언명했다. 한·미 연합훈련을 중지하지 않으면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협박이 뒤따랐다. 대한민국에 적대적인 주권 침해 행위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대북 경고 한마디 없고 청와대 안보실장이라는 분은 “군사합의 위반이 아니다”고 했다. 아마 “나쁜 평화라도 좋은 전쟁보다 낫다”는 문 대통령의 신념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만에 하나 김정은이 미사일 각도를 남쪽으로 돌려 주권의 근원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공격하는 반헌법적 행동을 하면 주무장관으로서 어떻게 유권해석할 것인가. “주권 수호, 절대 포기 않겠다”는 조국 후보자의 답을 듣고 싶다. 조국의 주권 수호 포부는 아마 일본의 침탈로부터 한국을 지키겠다는 비장한 의미였을 것이다. 나의 질문은 북한이 남침할 경우엔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북한이 마지막 미사일을 발사한 엊그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이 아름다운 친서를 보내왔다. 그가 워게임(한·미 연합훈련)을 불편해 했다. 나도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용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보상받아야 하고 한국에 전했다”고 했다.
 
이로써 한국의 안보위기 구조가 명료해지는 듯하다. 첫째, 김정은은 한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국민주권을 위협하는 단거리 미사일을 계속 쏴댄다. 북한의 과녁이 한국이란 사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일부 한국인들만 평화무드에 젖어 있을 뿐. 둘째, 동맹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남의 집 불구경하듯 김정은과 ‘아름다운 관계’를 즐긴다. 불난 집에서 돈 챙길 궁리나 하고 있다. 셋째, 우리 정부는 북한의 신형 미사일들은 안 보고 일본과의 전쟁에만 집착한다. 참 이상한 나라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돈 뜯기고 다른 데다 삿대질하고 있으니 말이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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