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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서 소재 확보했지만, 문제는 현안에 발목잡힌 이재용

중앙일보 2019.08.11 15:08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현장경영에 나선 6일 삼성전자 천안 사업장을 방문해 사업장 내 반도체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현장경영에 나선 6일 삼성전자 천안 사업장을 방문해 사업장 내 반도체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현장 경영에 나서면서 삼성전자는 일본 수출 규제 후폭풍에서 빠르게 안정을 찾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작 삼성 내부에선 ‘근본적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은 최근 잇단 사장단 회의에서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의 구도 변화 속에 미래 투자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나타냈다. 일본의 수출 통제 대응책 마련도 중요하지만, 자칫 신성장 동력 발굴과 투자에 뒤쳐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는 일단 급한 불은 껐다는 평가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벨기에 등에서 6~10개월 치의 재고를 확보했고, 일본의 규제 확대 기조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문제는 삼성전자의 ‘미래 곳간’이 비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현안에 발목 잡힌 이재용 부회장 

 실제 이 부회장의 최근 일정 대부분은 국내 급한 불을 끄는 현안 해결에 집중돼 있다. 일본발 규제 사태가 터진 직후 ‘나홀로’ 일본 출장에 나섰고 두 차례 긴급 사장단 회의를 주재했다. 지난 2일 일본이 ‘화이트 국가(안보우호국)’ 제외를 결정하자 삼성전자 주요 사업장을 직접 챙기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9일엔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이 있는 평택사업장을 방문해 임직원을 독려하고 메모리 사업을 점검했다. 앞서 6일에는 반도체 후공정(조립·검사)을 담당하는 온양·천안사업장을 찾았다. 조만간 시스템LSI(비메모리)와 파운드리 공장이 있는 기흥사업장, 삼성디스플레이 탕정사업장 등도 방문할 계획이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을 앞두고 주요 그룹 총수들과 만남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등 부쩍 잦아진 청와대의 ‘기업인 호출’에도 응해야 한다.  
 
2014년 7월 선밸리 콘퍼런스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팀 쿡 애플 CEO와 만나는 모습. [중앙포토]

2014년 7월 선밸리 콘퍼런스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팀 쿡 애플 CEO와 만나는 모습. [중앙포토]

 그동안 이 부회장은 주로 신성장 동력을 챙기는 일에 주력해 왔다. 차세대 인공지능(AI) 서비스, 클라우드 사업, 6세대(6G) 이동통신, 불록체인 등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신사업 발굴과 투자 대부분이 미국 등 해외 기업과의 경쟁과 협력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해외 기업과의 굵직한 인수합병(M&A), 대규모 투자 등은 기업 수장 대 수장간 ‘톱-다운’ 의사결정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진짜 위기는 일본 규제 아닌 ‘미래 먹거리’

 하지만 이런 미래 성장동력 탐색은 산적한 당장의 현안에 우선순위가 밀리고 있다. 이 부회장은 스스로 “가장 신경 쓴다”고 했던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에도 불참했다. 선밸리 콘퍼런스는 세계 주요 IT·금융·미디어 종사자 200~300여명이 참석하는 비공식 모임으로, 이 부회장은 이 곳에서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등을 만났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 이후엔 선밸리 콘퍼런스를 찾지 않고 있다. 올해도 지난달 9일(현지시간) 개막한 콘퍼런스 기간이 일본 출장 기간과 겹쳐 가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컨트롤타워(삼성 미래전략실)가 국내 현안을 담당했지만 (해체되면서) 이제 이 부회장이 직접 국내 현안과 해외 일정을 다 챙겨야 하는 상황”이라며 “일본 수출규제가 당장 눈앞의 장애물이라면, 삼성전자의 성장 동력 발굴에 제동이 걸린 건 보이지 않는 진짜 위기”라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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