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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만 웃은 '엑시트' 이상근 감독 "청년백수 조정석은 데뷔 전 내 모습"

중앙일보 2019.08.11 07:30
장편 데뷔작 '엑시트'로 일주일만에 손익분기점(350만명)을 넘어선 이상근 감독을 7일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제작사 외유내강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장편 데뷔작 '엑시트'로 일주일만에 손익분기점(350만명)을 넘어선 이상근 감독을 7일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제작사 외유내강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첫 경험이어서 그저 얼떨떨합니다.”

장편 데뷔작 ‘엑시트’로 개봉 11일째 520만 관객을 돌파한 이상근(41) 감독은 이런 흥행이 실감 나지 않는 듯했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이 재난 액션물은 일주일 만에 손익분기점 350만 명을 넘기며 올여름 한국 대작 중 흥행 선두에 섰다. 평소 무시당하던 청년 백수 용남(조정석)과 사회초년병 의주(윤아)가 유독가스로 뒤덮인 도심 고층빌딩을 암벽등반하듯 탈출하는 여정을 속도감 있게 그렸다.  
 

장편 데뷔작으로 520만 돌파
'쓰봉' 입고 뛰는 청년 분투 상상
"누구에게나 봄은 온다 버텼죠"

"호평 많지만 뼈 때리는 지적도 들었죠"

'엑시트' 촬영 현장에서 이상근 감독과 주연배우 윤아. 뒤로 보이는 배경은 용남(조정석)의 어머니 칠순잔치 장소이자 의주가 부점장으로 일하는 연회장 구름정원이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엑시트' 촬영 현장에서 이상근 감독과 주연배우 윤아. 뒤로 보이는 배경은 용남(조정석)의 어머니 칠순잔치 장소이자 의주가 부점장으로 일하는 연회장 구름정원이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생각 없이 보는 오락영화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한국 재난영화 특유의 신파 코드가 없어 신선하단 호평이 더 많다. 지난 7일 서울 암사동의 제작사 외유내강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러다 잠을 못 자겠다 싶을 만큼 온갖 리뷰를 다 찾아봤다”고 했다. “가끔 뼈 때리는 지적도 있어요. 아동영화처럼 유치하다거나, 불친절하다거나. 엔딩크레디트와 함께 나오는 ‘쿠키 아닌 쿠키영상’도 극장 불이 빨리 켜져 못 본 관객들이 많더라고요.”  
그가 말한 이 영상은 주인공들의 탈출 내막을 짤막하게 담은 것으로, 영화 본편이 끝난 후 엔딩크레디트 옆에 잠깐 등장한다. “영화 본편에 넣었더니 감정이 끊겨서 지금 편집본이 베스트였어요.”
 

"주인공 용남, 9년간 데뷔 못한 내 모습"

대학 졸업 후 수년째 취직을 못한 용남은 요즘 청년세대의 고달픈 현실을 대변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대학 졸업 후 수년째 취직을 못한 용남은 요즘 청년세대의 고달픈 현실을 대변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순박한 웃음, 수줍게 말을 고르는 그의 모습이 극 중 용남과 닮아 보였다. “용남한테 내 모습이 많죠. 체력‧운동실력 빼고 짠한 모습요. 저도 9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과정 졸업하고 준비했던 장편 아이템들이 잘 안됐거든요. 설거지‧빨래 열심히 하며 부모님께 겨우 밥값 했죠. 이번에 당선된 영화진흥위원회 지원금이 내겐 ‘인공호흡기’였어요.”
‘엑시트’도 처음 원안을 쓴 게 무려 7년 전이다. 드디어 개봉한 심정을 그는 이 장면에 빗댔다. “용남이 가족을 구하기 위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산악기술을 발휘해) 옆 건물 옥상으로 처음 점프하는 장면요. 시나리오 쓰며 언젠가 내 필살기는 이거다, 인정받고 싶었거든요.”  
 

류승완 감독, 절박할 때 손 내밀어줘

집에서 천덕꾸러기 신세이던 용남은 가스 테러 직후 가족을 구하기 위해 산악기술을 발휘해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른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집에서 천덕꾸러기 신세이던 용남은 가스 테러 직후 가족을 구하기 위해 산악기술을 발휘해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른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처음 제목은 ‘결혼피로연’이었다. 유독가스 설정은 같되, 남녀 주인공이 어머니 칠순 잔치가 아닌 각각의 옛 애인 결혼식에서 만나 가스 테러에서 탈출하는 저예산 소동극이었다. 류승완 감독, 강혜정 대표 부부의 제작사 외유내강과 손잡고 영화 규모를 키우며 결혼식이 용남 어머니(고두심)의 칠순 잔치로 바뀌었다. 젊은 세대뿐 아니라, 중‧장년층, 가족 관객에 공감을 얻은 비결이다.
 
류승완 감독과 각별한 인연이라고.
”2006년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처음 만나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연출부를 했다. 그때부터 류 감독을 내 ‘사수’로 모셨다. 데뷔작은 스스로 잘 만들어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하다하다 너무 절박해서 결국 외유내강을 찾아갔다. 류 감독이 기분 좋게 ‘재밌다. 대중영화로서 마이너한 부분만 만져보자’셔서 하루 열두 시간씩 시나리오를 붙잡고 한 달 만에 정말 크게 바꿨다.“
 
용남 어머니 칠순잔치에서 노래하는 용남의 누나들. 이런 가족들의 모습이 폭넓은 공감대를 자아낸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용남 어머니 칠순잔치에서 노래하는 용남의 누나들. 이런 가족들의 모습이 폭넓은 공감대를 자아낸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인생작은 '우리들의 천국' '쇼생크 탈출'  

어릴 적 대학생들의 사랑과 낭만을 그린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1990~94)을 보고 연출가의 꿈을 키웠단 그다. 몇 번이고 본 인생영화는 불굴의 탈옥기를 그린 ‘쇼생크 탈출’(1995). 그 영향일까. “어떤 장르든, 젊은이가 오랜 시간 참고 견디며 갈고닦은 재주로 세상에 한 방 먹이는 땀내 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내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쓰고 숨 가쁘게 달리는 젊은이의 이미지였다”고 했다. “비록 쓰레기봉투를 입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생존을 향한 그 절박한 몸짓이 숭고하게 느껴졌습니다. 여기서부터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갔죠.”

의주(왼쪽)와 용남은 쓰레기봉투와 박스테이프를 활용해 방호복을 만든다. 이상근 감독은 이를 히어로물의 초능력 수트에 빗대 '쓰봉수트'라 불렀다고 귀띔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의주(왼쪽)와 용남은 쓰레기봉투와 박스테이프를 활용해 방호복을 만든다. 이상근 감독은 이를 히어로물의 초능력 수트에 빗대 '쓰봉수트'라 불렀다고 귀띔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쓰봉' 입고 달리는 젊은이 모습서 출발

암벽등반을 택한 이유는.  
“자연에서 하는 스포츠를 도심에 접목하면 흥미로울 듯했다. 어딘가를 향해 올라가고 또 떨어지기도 하는 요즘 청춘의 삶과도 연결됐다.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김자비 선수에게 자문을 구해 실제 배우가 할 수 있을지 미리 검증하며 액션 동작을 만들어나갔다.”
 
촬영 현장에서 조정석이 와이어를 몸에 매달고 건너편 건물로 도약하는 모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촬영 현장에서 조정석이 와이어를 몸에 매달고 건너편 건물로 도약하는 모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가스가 상승하면서 점점 더 높은 곳에 올라가야 살아남는 설정도 현실의 계급 구조를 연상시킨다.  
“치밀한 계산이 있었던 건 아니다. 직관적으로 썼다. 정색하고 사회적 주제를 내세우기보다는 흘려들을 수 있는 톤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툭툭 던지고 싶었다.”
 

'따따따' 아이디어 계기는…

재난과 코미디는 어우러지기 어려운 장르인데.  
“희생자들의 참상과 함께 스펙터클을 전시하는 건 개인적으로도 좋아하지 않는다. 재난 상황은 초반부에 확실히 보여주고 이후론 용남과 의주의 질주에 집중했다. 영웅적이고 쿨하게 그릴 법한 장면에서도 후회하고 두려워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해 의외의 웃음을 겨냥했다. 그런 밸런스 조절이 중요했다.”
 용남과 의주는 줄로 몸을 묶고 균형을 맞추며 위기를 헤쳐 나간다. 클라이밍에서 ‘자일 파트너’ 처럼 난관에서 목숨을 맡기며 서로 끌어주는 멋있는 젊은세대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이상근 감독은 말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용남과 의주는 줄로 몸을 묶고 균형을 맞추며 위기를 헤쳐 나간다. 클라이밍에서 ‘자일 파트너’ 처럼 난관에서 목숨을 맡기며 서로 끌어주는 멋있는 젊은세대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이상근 감독은 말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극 중 재난 대처 상식도 화제다.  
“담요와 대걸레를 이용해 들 것 만드는 법은 TV로, 방독면 사용법은 민방위 훈련 가서 열심히 배웠다. ‘따따따’ 하는 SOS 구조신호는 책‧유튜브에서 봤다. 온 가족이 하나 되어 ‘따따따’ 외치는 게 웃프면서도 공감됐다. 고기집 환풍기 등 한국인이니까 느낄 만한 공감대를 많이 찾아나갔다.”  
 

실제 대가족인 저희 집 녹여냈죠

 중견배우 고두심이 용남의 엄마 역을 맡았다. 용남과 엄마가 가르마를 두고 말다툼하는 이 장면은 실제 이상근 감독이 어머니와 경험을 녹여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중견배우 고두심이 용남의 엄마 역을 맡았다. 용남과 엄마가 가르마를 두고 말다툼하는 이 장면은 실제 이상근 감독이 어머니와 경험을 녹여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극 중 용남 가족은 이 감독 자신의 집 판박이다. “친구들과 있던 조카가 용남을 모른 척하는 장면은 내가 조카 초등학교 때 겪은 실화”라며 그가 웃었다. “TV 정보 프로그램 보며 메모하는 어머니, 드라마 좋아하는 아버지 모습은 저희 집 일상이죠. 실제론 두 살 터울 누나가 한 명 있는데 배우 김지영씨가 본인 역할을 했다고 주위에 이야기하고 다니며 즐기고 있어요. 용남이 가르마 때문에 어머니와 실랑이하는 것도 제 얘기에요.”  
아버지가 5남 1녀 중 장손인 그는 명절이면 온 친척이 북적이는 집에서 자랐다. “용남한테 취직‧장가부터 묻는 친척들의 애정어린 잔소리는 저도 많이 들었죠. 마흔 넘어가니 이젠 묻기도 좀 미안해하시더라고요.”
 

조정석·윤아 명장면은…

1년이나 기다려 캐스팅했다는 조정석과 더불어 영화 ‘공조’(2017)에서 눈독 들인 윤아의 호흡도 절묘하다. 각각 뮤지컬‧아이돌 활동으로 단련한 체력을 고강도 액션에 십분 발휘했다. 용남이 연회장 외벽을 향해 점프하며 “할 수 있어 용남아” 외친 대사는 조정석의 애드리브. 이 감독은 이를 명장면으로 꼽으며 “정석씨 표정과 대사에서 떨림과 울림을 느꼈다”고 했다. 윤아에 감탄한 장면으론 “의주가 꽃게 건물에서 점프하기 직전에 뭔가 큰맘을 먹은 듯이 울먹이는 표정”을 들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이 정말 좋았죠.”
 

영화 속 유독가스 성분은…

외줄을 타고 건너편 건물로 넘어가는 의주. 아래로 자욱한 유독가스가 점점 상승하며 위기가 고조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외줄을 타고 건너편 건물로 넘어가는 의주. 아래로 자욱한 유독가스가 점점 상승하며 위기가 고조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연기와 인물이 어우러진 장면은 컴퓨터그래픽(CG) 구현이 힘들어, 특수효과팀이 직접 인공가스를 피웠다. 천천히 부유하며 상승해야 하는 성질에 맞춰 수증기‧드라이아이스 등 여러 성분을 섞어 테스트하는 데 애를 먹었단다. 신인감독임에도 까다로운 현장을 조율해낸 그를 두고 강혜정 대표는 “특유의 여유로 잘 버텨줬다”고 귀띔했다. 정작 이 감독 자신은 그저 “어떻게든 되겠지, 긍정 마인드로 버텼다”고 했다. “늦게 오는 것뿐이지 누구에게나 봄은 온다고 스스로 채찍질했죠.”
 

"일상 나노 단위로 분석하면 큰 웃음 얻죠" 

'엑시트'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도시의 여러 일상적 풍경을 재난과 웃음의 소재로 적극 활용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엑시트'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도시의 여러 일상적 풍경을 재난과 웃음의 소재로 적극 활용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짠하다” “독특하다” 조정석 등 배우들은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가 연출한 단편들도 그런 성향이 강하다. 엉뚱한 유머로 일상의 미세한 웃음을 건져냈다. 첫 단편 ‘꼽슬머리’는 소심한 곱슬머리 남자가 좋아하는 상대에게 고백하려다 머리를 빡빡 밀게 되는 이야기. ‘베이베를 원하세요?’(2006)는 꼬일 대로 꼬인 이어폰으로 기어코 음악을 듣는 청년을 그렸다. 
“제가 남들 눈치 보느라 하루를 살아도 몇 배 피곤하게 사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런 일상을 나노 단위로 분석하면 의외로 많은 공감대가 양산되죠.”
영화 취향은 “잡식성”이란 그는 “전에 없던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갈망이 늘 있다”고 했다. “차기작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주변 의견에 귀 기울여, 공동작업이자 감독의 예술로 잘 융화될 수 있도록 새롭게 도전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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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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