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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트럼프"왜 미국 돈으로 지키나" 중동 호르무즈 해협 유조선 호위 한국에 떠맡기나

중앙일보 2019.08.10 06:15
지난 9일 방한한 미국의 마크 에스퍼 신임 국방부 장관이 한국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은 한·미·일 안보 협력에 기여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항행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중동 석유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의 파병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해군이 지키던 페르시아 만과 호르무즈 해협 지역의 석유 수송로를 한국이 떠맡게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전략적 가치와 파병의 득실을 알아보자.  
미국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 함에서 출동한 MH-60S 시호크 헬기가 호르무즈 해협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뒤로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이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 만에서 생산된 원유가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시장으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좁은 바다 길목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 함에서 출동한 MH-60S 시호크 헬기가 호르무즈 해협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뒤로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이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 만에서 생산된 원유가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시장으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좁은 바다 길목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원유자원 ⅔ 품은 페르시아 만
유일한 출구인 39㎞ 호르무즈 해협
좁고 얕아 항모·잠수함 투입 어려워
한·중·일 아시아 에너지 핵심 공급로
미국의 이란 핵합의 폐기 갈등 상황
유조선 공격 받거나 나포돼 긴장 고조
트럼프,“왜 미국 돈으로 지켜주나”불만
미, 호위연합체 구성 한국 참가 요청
독일·일본 동참 거절, 독자활동 모색

최소 39㎞ 좁은 병목…특정국 도발에 취약  

미국이 한국에 파병을 요청한 호르무즈 해협은 브리타니카에 따르면 동서로 167㎞, 남북으로 96~39㎞의 좁은 수로로 글로벌 석유 수송로의 ‘병목’으로 불린다. 호르무즈 해협이 중요한 이유는 이란·이라크·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바레인·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오만 등 세계적인 산유국에 둘러싸인 페르시아 만(아랍국가들은 아라비아 만, 서구는 걸프로 부름)에 드나들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유일한 출입구이기 때문이다. 페르시아 만은 세계 석유의 젖줄 중 하나로 특히 한국·일본·중국·인도 등 아시아 지역의 원유와 가스 공급을 사실상 도맡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북쪽은 이란, 남쪽은 UAE와 오만의 역외영토(본국과 육로 연결이 끊긴 영토)인 무산담 반도에 둘러싸여 있다. 이란이 전 세계 석유 공급로의 목줄을 위협할 수 있는 이유다.  
정병두 국방장관(오른쪽)이 지난 9일 방한한 미국의 마크 에스퍼 신임 국방장관을 만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에스퍼 장관은 미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 해협 호위연합체 구성에 한국이 참여해줄 것을 요청한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정병두 국방장관(오른쪽)이 지난 9일 방한한 미국의 마크 에스퍼 신임 국방장관을 만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에스퍼 장관은 미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 해협 호위연합체 구성에 한국이 참여해줄 것을 요청한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원유 매장량 3분의 2 묻혀

페르시아 만은 석유와 관련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의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확인된 원유의 3분의 2, 천연가스의 3분이 1이 이곳에 묻혔다. OPEC 2018년 연감에 따르면 석유 매장량 상위 국가에 페르시아만 연안의 회원국인 사우디아라비아(2662억 배럴, 전 세계 21.9%, 2위), 이란(1556억 배럴, 12.8%, 3위), 이라크(1472억 배럴, 12.1%, 4위), 쿠웨이트(1015억 배럴, 8.4%, 5위), 아랍에미리트(978억 배럴, 8.1%, 6위)가 포함됐다. 이런 곳에서 지정학적 위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페르시아 만은 의외로 좁은 바다다. 면적이 25만1000㎢로 한반도 정도이며, 동해(97만8000㎢)의 약 4분의 1, 서해(보하이 만을 포함해 38만㎢)의 약 3분의 2 수준이다. 서쪽 끝인 이란·이라크의 샤트알아랍 수로(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만나 바다로 이어지는 수로)에서 동쪽 끝인 호르무즈 해협 사이의 거리가 989㎞ 정도다. 남북은 거리가 가장 넓은 곳이 중간 해역의 340㎞, 좁은 곳이 동쪽 끝 호르무즈 해협이다.  
 

이란에 가까운 수로로 항해해야 

페르시아 만은 동서로 길쭉한 자루 모양이고, 좁은 호르무즈 해협은 마치 자루의 마개처럼 보인다. 여기에 전략적인 중요성이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마개를 통제하면 페르시아 만의 석유는 갈 곳을 잃는다. 페르시아 만의 동부, 즉 호르무즈 해협의 서쪽에는 작은 섬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 이란은 상당수를 점유하고 있다. 일부 섬은 UAE와 영토 분쟁을 겪고 있다. 페르시아 만의 수심은 평균 50m 정도로 얕은 바다다. 아라비아 반도 쪽은 35m를 넘는 곳이 드물고 비교적 깊은 북쪽 이란 쪽도 90m 수준이다. 이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과 화물선은 이란에 가까운 수로를 지날 수밖에 없어 이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호르무즈 해협. [중앙일보]

호르무즈 해협. [중앙일보]

좁고 얕아서 미 해군 항모·잠수함 작전 어려워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 만의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해군의 유조선 호위 임무를 어렵게 한다. 우선, 수심이 얕으면 잠수함이 은밀한 작전을 펼치기가 여의치 않다. 특히 미 해군이 보유한 잠수함은 모두 대형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어서 얕은 바다에서 작전을 펼치기가 여의치 않다.  
게다가 호르무즈 해협에 가까운 섬에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운영하는 비행장과 항구, 그리고 군 기지가 집중적으로 배치됐다. 페르시아 만에 접한 이란 본토의 해안지역도 마찬가지다. 미국 해군, 특히 전력의 핵심인 항공모함이 페르시아 만에서 군사적으로 이란을 견제하는 작전을 펴기가 만만치 않은 이유다.  
항공모함은 기본적으로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적의 영토나 적함에서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작전을 펼 수밖에 없다. 미 해군 항공모함은 단독 작전은 펼치지 않고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 그리고 잠수함과 함께 전단을 이뤄서 작전을 펼친다.  
해상은 물론 해저에서도 항모 주변으로 접근하는 선박은 철저히 통제된다. 미 해군 구축함과 순양함은 이지스 전투 체계를 갖춰 고속으로 함정에 접근하는 적의 항공기와 미사일을 최대 24개까지 탐지·추적·조준해 미사일로 제거하는 게 임무다. 고속정 같은 작은 표적이 접근하면 기관포 등으로 제거한다. 항모 전단의 구축함과 순양함은 항모 호위뿐 아니라 토마호크 장거리 순항 미사일 등을 발사해 지상 목표물을 무력화하는 데도 동원된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가는 선박의 호위 임무를 맡은 미국 공군 소속 F-15E 스트라이크 이글 전투기가 페르시아 만 상공에서 재급유를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가는 선박의 호위 임무를 맡은 미국 공군 소속 F-15E 스트라이크 이글 전투기가 페르시아 만 상공에서 재급유를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6월 유조선 공격 이후 긴장 상태  

페르시아 만과 호르무즈 해협은 이미 지난 6월부터 긴장 상태다. 지난 6월 12일 아랍에미리트(UAE) 동부 푸자이라항 인근 바다에서 선박 4척이 공격을 받아 사우디 유조선 2척이 손상을 입으면서다. 이곳은 호르무즈 해협의 서쪽 입구에 해당한다. 미국은 동영상 자료 등을 제시하며 이란 혁명수비대가 공격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란은 자신들이 이득이 없는 행동을 왜 하겠냐며 부인했다.  
하지만 6월 16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미국 CBS 방송의 ‘페이스 더 네이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란이 이번 공격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미국의 평가”라며 비난했다. 폼페이오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일본·중국·한국을 지적하며 호르무즈 해협이 계속 열려있도록 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때 한국에 대한 호르무즈 파병 요청 의사가 있음을 처음으로 비친 셈이다.  
미군 군함이 지난 7월 8일 이란 무인정찰기(드론)를 격추한 페르시아 만 입구인 호르무즈 해협의 분쟁 구역(왼쪽). 영국 정부는 분쟁 구역에서 영국 선적 민간 선박에 대한 호위를 제공하기로 했다. 오른쪽 사진은 영국 해군 구축함 몬트로즈 함. [연합뉴스·EPA=연합뉴스]

미군 군함이 지난 7월 8일 이란 무인정찰기(드론)를 격추한 페르시아 만 입구인 호르무즈 해협의 분쟁 구역(왼쪽). 영국 정부는 분쟁 구역에서 영국 선적 민간 선박에 대한 호위를 제공하기로 했다. 오른쪽 사진은 영국 해군 구축함 몬트로즈 함. [연합뉴스·EPA=연합뉴스]

 

트럼프, “중국, 원유 91%를 해협 통해 얻어”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에서 한술 더 떴다. 트럼프는 6월 24일 “중국은 해협(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원유의 91%를, 일본은 62%를 얻으며, 많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라며 “우리가 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면서 다른 나라를 위해 이 항로를 보호하고 있는가. 이런 나라 모두는 자신들의 배를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고 트윗에서 주장했다. 노골적으로 한국과 일본에 호르무즈 해협의 유조선 호위 활동에 파병하라고 압박한 셈이다.  
 

미국 주도 호위연합체 구성 난항

폼페이오의 발언과 트럼프의 트윗이 계기가 돼 미국이 이 지역에서 국제적인 해상 경계 연합체를 구성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미국은 페르시아 만과 호르무즈 해협에 배치된 미 해군 군함이 지휘를 맡고 한국이나 일본 등 연합체 참가국의 군함이 그 주변에 배치돼 이곳을 항해하는 자국 민간선박을 호위하는 국제적인 ‘호위연합체’다. 미국의 에스퍼 국방장관은 지난 3일 호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현재 30여 개 국가가 참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호위연합체에 대해 독일은 지난달 30일 미국의 참가 요청을 받고 다음날 거절 의사를 밝혔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지난 5일 참가를 사양하고 유럽연합(EU) 차원의 활동을 원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일본은 호위연합체에는 참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해상자위대를 보내 유조선 호위 활동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마이니치 신문이 지난 2일 보도했다.  

현재 미국 주도 호위연합체 참가 의사를 밝힌 나라는 영국뿐이다. 영국도 처음에는 참가에 부정적이었으며 유럽연합(EU) 주도의 별도 호위 전단 구성을 제안했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취임한 보리스 존슨 총리가 임명한 도미니크 랍 외무장관과 벤 월리스 국방장관은 지난 5일 참여 의사를 밝혔다.  
영국 해군은 7월 4일 이란 유조선 그레이스 1호를 지중해 서쪽 끝의 지브롤터 남쪽 바다에서 억류했으며 7월 19일에는 영국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에 억류됐다. 그레이스 1호는 유럽연합(EU)의 대시리아 제재를 무시하고 이란의 사실상 동맹국인 시리아에 원유를 공급하려고 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하지만 영국은 호르무즈 긴장을 유발한 근본적인 원인인 미국의 2018년 5월 이란 핵합의(JCPOA) 탈퇴에는 부정적이다. 영국은 2015년 5월 다른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및 독일과 함께 JCPOA를 이뤄냈으며 합의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한다. 
중국도 참가를 검토 중이라고 미국의 소리 방송이 지난 8일 보도했지만 상세한 내용은 전하지 않았다. 이 방송은 한국은 아덴만에서 해적 퇴치와 선박 보호 임무를 수행하는 쳥해부대의 작전 해역을 호르무즈 해협 쪽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호르무즈 해협의 이란 고속정에서 바라 본 영국 유조선의 모습. [AP=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의 이란 고속정에서 바라 본 영국 유조선의 모습. [AP=연합뉴스]

 

호르무즈 파병은 복잡한 국제정치 방정식 

호위연합체 참가는 국제정치적으로 간단한 일이 아니다. 동맹과 석유 수송로 보호 활동을 비용으로 판단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미 행정부와의  관계, 이란과의 관계, 이란에 적대적인 사우디아라비아나 UAE 등 중동권 국가들과의 관계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고등 방정식이다. 미국은 셰일 석유의 대량 채굴이 가능해져 석유를 사실상 자급하게 되면서 중동과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관심과 비용 지출을 꺼리는 분위기다. 게다가 한국이 이번 호위연합체에 참가하면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에 맞서는 ‘항행의 자유’ 활동에 동참할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사태는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의 국제적인 역할을 크게 확대할 수도 있다. 미국에는 '급할 때 손잡아주는 동맹국'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한반도와 동북아 외교에서 상당한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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