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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오른 지민, 귀족이 된 첸…팬덤이 아이돌 세상 바꾼다

중앙선데이 2019.08.10 00:02 648호 8면 지면보기

[SPECIAL REPORT] ‘내 새끼’ 위한 팬의 헌신

7월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EXO 콘서트. [SM엔터테인먼트]

7월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EXO 콘서트. [SM엔터테인먼트]

# 지난 5월 22일 네이버 실검 1위에 ‘수호야 생일 축하해’라는 문구가 올랐다. EXO 멤버 수호의 생일 축하를 위해 팬들이 검색어 이벤트를 진행한 결과다. 이들은 한 간편송금앱의 ‘행운퀴즈’를 이용해 실검 순위를 움직였다. 앱에 퀴즈를 내고 지정한 검색어를 포털창에 입력하면 답을 알려주는 방식이다. 새로 나온 기업 광고 플랫폼이 아이돌 팬덤의 덕질 플랫폼으로 활용된 것이다. 상금을 걸어야 하기에 돈이 들지만, 팬들은 100만~200만원을 쾌척한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최모씨, 20대 직장인)라면서.

아낌없이 주는 ‘덕질’ 열풍
팬사인회 뽑히려 음반 100장 구매
못 가도 티켓팅 ‘영혼 보내기’ 응원

“시장 왜곡” vs “소비자 행동주의”
전문가 “취향 따른 실용적 공동체”

 
# 최근 종영한 Mnet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X 101’ 투표 조작 사건에 대해 5일 검찰이 수사를 착수했다. 탈락자들의 팬 260여 명이 제작진을 고소·고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 김민규·이진혁 등 탈락자들로 ‘BY9’이라는 가상 그룹을 만들고 1억원을 모금해 지하철 광고 등 자체 홍보에 나섰다. 2017년에도 공식 데뷔팀 워너원 외에 탈락자 팬들이 직접 구성한 파생팀 ‘JBJ’에 기획사가 붙어 데뷔가 성사됐었다.

 
‘덕질’이 실검을 바꾸고, ‘팬덤’이 세상을 바꾼다. 소극적인 추종자나 소비자에 불과했던 팬이 지금은 전문가 수준으로 파고드는 ‘덕후’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이 벌이는 N차 관람, 서포트 굿즈 제작, 영혼 보내기 같은 소비 행위인 ‘덕질’도 대중화되고 있다.

 
낮에는 생활인, 밤에는 ‘덕후’로 변신

 
6월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광장에 BTS 팬덤이 모여 BTS가 출연하는 현대차 광고를 보고 있다.[연합뉴스]

6월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광장에 BTS 팬덤이 모여 BTS가 출연하는 현대차 광고를 보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5월 영화 ‘걸캅스’의 손익분기점 넘기기 운동으로 ‘영혼 보내기’라는 단어가 알려졌지만, 사실 ‘영혼 보내기’는 아이돌 팬덤에서 이미 확산된 문화다. 비록 극장에는 못 가도 티켓을 구매함으로써 마음으로 응원한다는 의미다. ‘스윙키즈’ ‘형’ 등 EXO의 디오가 출연한 모든 영화에 수차례 영혼을 보냈다는 30대 직장인 조모씨는 “디오 출연작 상영관을 유지하기 위한 응원”이라고 했다.

 
결국 여배우 주연의 영화 ‘걸캅스’는 낮은 평점에도 페미니스트들의 영혼 보내기에 힘입어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시장 왜곡’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소비자가 스스로 상품의 가치를 판단하고 신념대로 행동하는 ‘소비자 행동주의’의 일환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지난 4~5월 방영된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은 이런 덕질 트렌드를 소재 삼았다. 주인공 성덕미는 똑부러지게 일 잘하는 미술관 큐레이터지만, 밤에는 “현실이 시궁창 같을 때는 덕질”이라며 카메라를 메고 ‘홈마’로 변신한다. 덕질은 백수의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상당한 자본이 드는 취미활동이다. 2015년 EXO에 입덕한 조씨는 “성수기(활동기간)에는 수입의 80%를 덕질에 쓴다”고 털어놓았다. 콘서트는 물론 해외 투어까지 따라가고, 팬 사인회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음반 100장을 구매한 적도 있다. 음원 청취가 대세인 시대에 아이돌 앨범이 100만 장 넘게 팔리는 이유다.

 
일러스트=이정권·이은영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이은영 gaga@joongang.co.kr

덕질은 해당 연예인에 대한 ‘서포트’로 이어진다. 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포토카드·달력 등 자체 생산한 비공식 ‘굿즈’를 판매하는데, 각자가 디자인·일러스트 등을 재능기부해 제작하고 수익금은 ‘서포트’에 사용한다. 뮤지컬 배우 김준수의 팬인 40대 주부 한모씨는 “뮤지컬 ‘엑스칼리버’ 출연을 기념해 티켓북·보틀·에코백 등을 샀다”면서 “팬 사이트 계좌로 입금하면 나중에 사용 내역까지 공개한다. 간식, 선물 등을 보내고 남는 돈은 기부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서포트’ 활동도 다변화되고 있다. 지난 5월 EXO 세훈의 생일에는 중국 팬덤이 티웨이 항공기 내외부를 세훈의 사진으로 래핑한 ‘세훈 비행기’를 선보였다. 지난해 4월에는 지하철 7호선의 8량 전체를 EXO 시우민 광고로 도배한 ‘시우민 열차’가 등장했다. BTS 지민은 몇해 전 생일에 별자리를 선물로 받았다. 팬덤이 스위스의 'Online Star Register' 사이트에서 천칭자리 별의 좌표를 구입해 'JIMIN OF BTS'라고 명명했다. EXO 첸은 지난해 스코틀랜드 땅문서와 귀족 작위증을 얻었다. 스코틀랜드 특정 지역의 땅을 매입하면 작위를 주는 환경보호 단체의 기부 이벤트에 팬덤이 첸 명의로 땅을 산 것이다. 이를 실행한 홈마 ‘모닝스타’는 “선물을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보는 팬들도 모두 즐거울 수 있는 좋은 기부의 형태라 진행했다”고 밝혔다.  
 
최근까지 워너원 윤지성 팬이었던 20대 직장인 이모씨는 “다양한 대상에 덕력이 10년이다. 학생 때도 해당 연예인에게 언제라도 서포트할 수 있도록 늘 지갑에 10만원을 남겨두었다”면서 “덕질의 즐거움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서포트를 한다”고 했다. 빅스 팬인 20대 직장인 최모씨도 “30만원을 들여 카페 진동벨 광고를 한 적 있다. 그거라도 해서 대중이 내 가수의 노래를 더 들어주면 좋은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양육형’ 팬덤으로 영향력 확대

 
워너원 강다니엘 팬들은 아이돌 팬덤 플랫폼 ‘스타패스’ 투표 개인랭킹 1위 리워드로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총 7차례 뉴욕 타임스퀘어에 광고를 걸었다. [트위터 강다니엘닷컴]

워너원 강다니엘 팬들은 아이돌 팬덤 플랫폼 ‘스타패스’ 투표 개인랭킹 1위 리워드로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총 7차례 뉴욕 타임스퀘어에 광고를 걸었다. [트위터 강다니엘닷컴]

“삼시 세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은 내 새끼 떡밥이지.” ‘그녀의 사생활’ 중 성덕미의 대사다. 정식 데뷔 전부터 직접 찍은 영상에 자막을 달아 글로벌한 ‘입덕영상’을 배포한 홈마인 만큼, “내 새끼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마인드다.

 
『팬덤 3.0』의 저자 신윤희씨는 이런 양상을 ‘양육형 팬덤’으로 정의한다. ‘구름 위 스타’가 ‘내 새끼’로 포지션 변동되면서, 스타와 팬덤의 관계도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으로 진화 중이라는 것이다.

 
팬덤의 서포트는 선물 제공 차원을 넘어 영향력 강화로 확대됐다. 음원이 출시되면 음원 사이트 집계방식에 최적화된 스트리밍 방식을 찾아내 조직적으로 순위를 올린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앨범 제작비를 마련하기도 한다. ‘메이크스타’라는 플랫폼을 통해 아이돌그룹 ‘크나큰’의 앨범 제작에 50만원을 펀딩했다는 대학생 이승원씨는 “새 회사에서 처음 내는 앨범이라 펀딩이 성공하지 못하면 제작이 힘들 것 같았다. 회사 사정이 안 좋은 걸 알기에 컴백을 위해서 그 정도 지출은 해야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프로듀스 X 101’의 최종탈락자 9명의 팬덤이 만든 가상 그룹 ‘BY9’. [디씨인사이드 캡처]

‘프로듀스 X 101’의 최종탈락자 9명의 팬덤이 만든 가상 그룹 ‘BY9’. [디씨인사이드 캡처]

‘양육형 팬덤’은 2016년 ‘프로듀스 101’이 도입한 ‘국민 프로듀서’ 개념이 모멘텀이 됐다. 아이돌 연습생의 데뷔 여부가 시청자 투표로 갈리는 방식이다. 인기투표는 물론 ‘컨셉트 평가’ 미션까지 팬들이 매칭시켜 배정하는 시스템에서 ‘내 새끼 양육’ 마인드가 싹텄다.

 
SNS와 디지털 미디어는 팬덤의 영향력을 폭발적으로 확장시켰다. 덕후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모여들고, 자체 스토리텔링을 통해 결속력을 강화한 커뮤니티는 연령과 국경을 초월해 연대한다. 이승원씨는 “일반 동호회 활동처럼 덕질도 멤버들과 추억을 만들고 팬덤끼리도 친구처럼 지낸다”고 말했다.  
 
EXO 팬 이모씨도 “가족이나 친구는 나의 덕질에 편견을 갖지만,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과 얘기가 잘 통하니 편하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의 팬덤을 ‘실용적 공동체의 등장’으로 해석했다. 개인주의가 극도로 발전하면서 지나친 고립을 경계하게된 사람들이 느슨하고 유동적인 모임공간을 찾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 신봉했던 공동체주의보다 다양한 개인주의가 정당한 신념으로 자리잡으면서 아이돌·상품·서비스의 영역에까지 강한 개인 취향을 내세우게 됐다”면서 “개인주의가 심화되다보니 실용적 목표를 공유한 모임이 생긴다. 소셜 사이트에 극도로 개인적인 일기를 공유해 모르는 이의 피드백을 받는 것처럼, 얼마든지 해체·재조립 가능한 공동체를 필요로 하게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EXO 팬 푸른봄 “백현이 나를 안다고 할 때 뿌듯”
트위터 팔로워 15만을 거느린 EXO팬 ‘푸른봄’은 홈마계의 셀럽이다. 2013년부터 홈마로 활동한 그녀가 남다른 보정실력으로 ‘뽀샤시’하게 뽑아낸 EXO 직찍을 트위터에 올릴 때마다 ‘실시간 트렌드’ 순위에 오르곤 한다. 명문대 경영학과 출신에 연예인 같은 외모의 그녀에게선 ‘인플루언서’로서의 자부심이 넘쳐났지만, 홈마 활동이 “부모님도 모르는 사생활”이라며 신상 노출은 극구 사양했다.

 
아이돌 가수 엑소(EXO) 팬 들이 사용하는 물품 / 2019.07.19.금 신인섭 기자

아이돌 가수 엑소(EXO) 팬 들이 사용하는 물품 / 2019.07.19.금 신인섭 기자

‘푸른봄’은 달력, 슬로건(사진) 등 비공식 굿즈를 제작한다. 사진전을 열어 수익을 거두고, 상당액을 ‘서포트’에 쓴다. 컴백 때 뮤비 조회수를 올리려 유튜브 광고를 하고, 멤버 생일 때마다 기부를 한다. 시흥 출신 첸의 생일에는 시흥시 청소년재단에 기부를 하고, 수호가 뮤지컬 공연을 했던 예술의전당엔 객석 기부를 하는 식이다.

 
EXO 비공식 굿즈

EXO 비공식 굿즈

부자인 아이돌을 왜 서포트하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걸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예컨대 아이돌의 촬영장에는 밥차 등에 대한 스태프의 기대감이 있다. 내 새끼 기 살려주기 위한 일이다.”
 
덕질을 하는 이유가 뭔가.
“내 일상에 활력을 주는 취미활동이다. 보기만 해도 좋다는 게 사실 어려운 일 아닌가. 진짜 애를 키운다면 예뻐도 힘이 들 텐데, 얘네는 그저 즐거움만 주니까.”
 
홈마로서 뿌듯한 순간이라면.
“사인회에서 백현이 나의 존재를 안다고 했을 때, 사진전에 사람이 엄청 많이 몰렸을 때도 뿌듯했다. 영향력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팬들 사이에선 ‘홈마가 없어지면 팬덤도 없어진다’는 인식이 있다. 아이돌이 활동 안 할 때도 홈마의 SNS 마케팅으로 팬덤을 유지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팬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스타와의 관계도 변하는 것 같다.
“가수의 태도가 달라졌다. 공항에 팬들이 선물한 옷을 입고 온다든지, 개인방송에서 팬이 준 선물을 인증하는 식으로 팬덤에 신경을 쓴다. 인지도가 낮은 아이돌일수록 더 그런 것 같다.”
팬덤 팬들의 모임 또는 팬들이 만들어내는 문화현상
덕후 일본어 ‘오타쿠’에서 유래한 말. 집 안에 틀어박혀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몰두하는 은둔자를 지칭하는 부정적인 말이지만, 최근 들어 취향있는 삶을 사는 개성적인 사람들을 의미하게 됐다
입덕 처음 덕후가 됨
덕질 좋아하는 연예인을 지원하기 위해 벌이는 다양한 행위
영혼 보내기 극장에 가지 않고 티켓만 사는 행위
홈마 홈페이지 마스터의 약자. 직접 찍은 아이돌 사진과 동영상을 SNS에 게시한다
 
유주현 기자, 정미리 인턴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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