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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시티오브엔젤'- 뮤지컬로 필름 누아르를 오마주하다

중앙선데이 2019.08.09 17:49
지금까지 이런 뮤지컬은 없었다. 8일 국내 초연으로 막을 올린 뮤지컬 ‘시티오브엔젤’은 모든 것이 낯설다. 역사물이나 고전 명작류의 익숙한 이야기, 선악이 뚜렷한 인물 구도에 연대기식 전개, 아리아풍의 드라마틱한 노래와 화려한 군무…. 대극장 뮤지컬에서 흔히 기대하는 내용과 형식을 모두 거슬렀다. 굳이 정의하자면 ‘블랙코미디 누아르’ 장르의 극중극을 품은 ‘다양성 뮤지컬’이라 부를 만한데, 영화와 공연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한 연출이 참신하다. 

[유주현 기자의 컬처 FATAL]
뮤지컬 ‘시티오브엔젤’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8월 8일~ 10월 20일

뮤지컬 '시티오브엔젤' [사진 샘컴퍼니]

뮤지컬 '시티오브엔젤' [사진 샘컴퍼니]

 
우리에겐 새롭지만 이미 제작된 지 30년 된 무대다. 1989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879회 동안 롱런한 히트작으로, 1990년 토니상 6개 주요 부문(작품상·극본상·음악상·남우주연상·여우조연상·무대디자인상)과 드라마데스크상 8개 부문을 휩쓸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1993년 웨스트엔드에 진출해 올리비에상까지 받았고, 최근에는 호주와 일본에서도 공연됐다. 
 
뮤지컬 '시티오브엔젤' [사진 샘컴퍼니]

뮤지컬 '시티오브엔젤' [사진 샘컴퍼니]

국내 초연 무대는, 아직 설익은 느낌도 있지만, 뮤지컬 ‘마틸다’로 올해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최재림을 비롯해 이지훈·가희·강홍석 등 실력파 배우들이 포진해 각자의 매력을 뽐낸다. 개그맨 정준하의 자연스런 코믹 연기도 객석을 빵빵 터뜨리는 킬링 포인트다. 
 
‘시티오브엔젤’은 할리우드 황금기 시절, 영화에 꿈을 품은 청년의 성장담이다. 스윙재즈를 비롯해 재즈 스코어로 가득 채운 음악이 그때 그 시절로 우리를 데려가지만, 현실과 시나리오 속 상상의 세계를 교차시키며 창작자의 고뇌를 재기발랄하게 그려낸 플롯, 이를 흑백과 컬러라는 조명 코드로 풀어낸 무대 연출은 지금 봐도 기발하다. 공연으로 영화를 오마주한 연출이랄까. 
 
뮤지컬 '시티오브엔젤' [사진 샘컴퍼니]

뮤지컬 '시티오브엔젤' [사진 샘컴퍼니]

1940년대 할리우드. 새로운 영화 ‘시티오브엔젤’의 제작이 진행 중인 가운데, 무명작가 스타인은 자신의 탐정소설을 시나리오로 각색중이다. 무명작가로서 유명 제작자 겸 영화감독인 버디에게 사사건건 간섭을 받으며 스타인은 점점 자신감을 잃고, 매 장면을 쓸 때마다 똑똑한 여자친구 개비의 조언을 구하는가하면 급기야 자신을 좋아하는 버디의 비서 도나에게까지 의지하게 되면서 시나리오는 산으로 간다. 잘 팔리는 또 한편의 ‘필름 누아르’ 영화 탄생을 위해 영혼을 팔아야 하는 젊은 작가의 딜레마는 그가 작업중인 시나리오 속 주인공 스톤에게 투영되어 좌충우돌 블랙코미디로 전개된다.
 
할리우드 황금기를 풍미한 ‘필름 누아르’ 장르에는 뻔한 전형성이 있었다. 염세적인 사설탐정과 남자를 이용하는 팜므파탈이 얽히는 폭력과 살인사건, 주인공의 보이스오버 나레이션과 플래시백의 남발, 강렬한 조명과 어지러운 미장센 등이다. 컬러와 흑백이 교차하는 조명, 렌즈 조리개를 여닫는 듯한 세트, 스타인과 스톤 이외의 모든 캐릭터가 극 안팎에서 1인 2역을 연기하는 설정은 당시 영화계를 오마주하기 위한 장치에 다름아니다.
 
돈을 위해 유행에 영합할 것이냐, 예술을 위해 자아를 지킬 것이냐. 창작자의 딜레마를 무명 작가와 그 자신이 세기의 탐정으로 설정한 주인공의 갈등으로 푼 전개가 흥미롭다. 팜므파탈의 음모에 빠져 위험한 사건을 떠맡고 위기에 빠지는 스톤과 창의적인 작품을 쓰고 싶지만 현실에 굴복해야 하는 스타인은 서로 ‘나 없이 넌 안된다’며 대립하지만, 현실과 허구 속 상황과 캐릭터가 미묘하게 겹쳐지다 하나로 만나며, 결국 ‘너 없이 난 안된다. 넌 영원한 나의 반쪽’이라 화해한다. 결국 좋은 작품은 작가가 자신을 믿어야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뮤지컬 '시티오브엔젤' [사진 샘컴퍼니]

뮤지컬 '시티오브엔젤' [사진 샘컴퍼니]

 
“언제나 주인공은 나”라고 외치게 된 스타인은 이제 뻔한 ‘필름 느와르’가 아닌 창의적인 시나리오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다양성 뮤지컬’이 나올 수 있는 것도 유행에 굴복하지 않고 나 자신을 믿는 예술가가 있기 때문일 테니.   
 
글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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