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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환율이 불안한 다섯 가지 이유

중앙일보 2019.08.09 00:26 종합 30면 지면보기
환율이 불안하다. 어제와 그제 안정세를 보였다지만 원화 가치는 올해 들어 10%가량 하락했다. 달러 대비 9%, 엔화보다는 13% 떨어졌다. 아르헨티나를 빼면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최악의 성적표다. 정부는 그제 “외환보유액이 4030억 달러에 이르고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도 튼튼하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래도 시장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달러 예금과 금을 찾는 투자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원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는 뜻이다.
 

기업들, 규제 피해 달러 싸들고 해외로
정부는 “경제 체력 튼튼” 원론만 되풀이
‘매력적 투자처 만들기’가 최선의 해법

여기엔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정부가 늘 얘기하는 대외 여건이다. 한·일 갈등에 미·중 무역전쟁이 겹쳤다.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무역분쟁이 최악으로 치달으면 2022년 한국의 실질 GDP가 3.3% 감소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아세안 다음으로 한국이 치명타를 입는다는 분석이다. 상처 입은 경제에 뒤따르는 것은 통화 가치 하락이다. 둘째, 들어오는 달러는 줄고 나가는 달러는 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경상수지 흑자는 7년 만의 최소로 쪼그라들었다. 기업들은 ‘규제 해방구’를 찾아 달러를 싸들고 해외로 나간다. 반대로 국내에 들어오는 산업 투자는 1년 새 거의 반 토막 났다. ‘기업하기 괴로운 환경’이 빚어낸 풍경이다. 재산을 불리려는 개인투자자들도 매력 없는 국내를 외면하고 해외 주식·채권을 찾고 있다.
 
셋째 우리의 방호막이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이 보유한 주식·채권이 684조원(약 5600억 달러)에 이른다. 언제 팔아치울지 모르는 자산이 방호막인 외환보유액보다 훨씬 많다. 주식·채권과 별도인 외화대출은 또 다른 뇌관이다. 제2의 환율 보호장치인 통화 스와프(맞교환)는 효력이 제한적이다. 기축통화인 달러·엔 스와프가 종료됐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중국 위안화, 스위스 프랑 같은 다른 통화 스와프뿐이다. 넷째, 거시정책적 대응 여력이 충분치 않다. 이 마당에 금리를 올리기는 언감생심이다. 또 상반기 재정은 38조원 적자로 사상 최악이었다.
 
마지막으로 복원력에 대한 의구심이다.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가격 경쟁력이 올라 수출이 늘고, 달러가 들어와 통화 가치가 제자리를 찾아간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이런 과정을 거쳐 원화 가치가 회복됐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중국 제품의 경쟁력이 턱밑까지 쫓아왔다. 원화 가치가 떨어져도 예전만큼 수출이 잘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원화 가치가 폭락하면 물가가 치솟는다. 경기는 가라앉는데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해법은 있다. 무엇보다 한국을 매력 있는 투자처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규제를 혁신하고 친노조·반기업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효과는 외국 기업을 불러들이고 나가려던 국내 기업을 되돌려 달러를 유입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내 생산과 수출이 늘 것이고, 일자리가 증가한다. 기업이 활력을 얻으면 외국인 주식투자까지 불러들일 수 있다. 일석사조(一石四鳥)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더불어 정부는 구체적인 환율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저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고만 해서는 시장의 신뢰를 얻기에 부족하다. 주식에 대해 “공매도 규제를 강화하고 자사주 매입 규제는 완화하겠다”고 한 것처럼,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원화 가치가 안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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