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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전 일본을 다룬 선조들의 지혜

중앙일보 2019.08.08 09: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54)

지난 7월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인근 영공을 침범했을 때 일본의 태도가 가관이었다.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는 자기네 고유 영토인데, 왜 한국이 대응하냐는 것이다. 독도 인근 영공 침범한 러시아 조기경보통제기 'A-50'. [연합뉴스]

지난 7월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인근 영공을 침범했을 때 일본의 태도가 가관이었다.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는 자기네 고유 영토인데, 왜 한국이 대응하냐는 것이다. 독도 인근 영공 침범한 러시아 조기경보통제기 'A-50'. [연합뉴스]

 
지난 7월 23일 오전 러시아 군용기가 두 차례 한국 영공을 침범했다. 우리 공군은 360여 발을 경고 사격했다. 러시아 A-50 공중조기경보통제기 1대가 독도 영공을 두 번씩 드나들며 침범한 것이다.
 
이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가관이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침범 당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는 우리나라 고유 영토로, 영공 침해를 한 러시아에 대해 우리나라가 대응해야 하지 한국이 거기에 무언가 조치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정부 입장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도가 자기네 땅인데 왜 한국이 나서 대응하느냐는 궤변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독도를 둘러싼 울릉도 주변 수역 한‧일 분쟁은 300년 전에도 있었다. 1693년(숙종 19년) 안용복은 어부 40여 명과 울릉도 근해에서 고기를 잡다가 일본 어부들과 조업권을 놓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조선, 일본인의 울릉도 어로 금지

장한상의 영정. 한양에 나타난 호랑이를 제압했다는 전설을 배경으로 그렸다. [사진 송의호]

장한상의 영정. 한양에 나타난 호랑이를 제압했다는 전설을 배경으로 그렸다. [사진 송의호]

 
안용복은 일본 어부들에 사로잡힌 뒤 일본으로 끌려간다. 안용복은 심문을 받으면서 명쾌한 논리로 맞선다. “울릉도가 조선에서는 하루 길이요, 일본에서는 닷새 길이니 분명 조선 땅이다.” 안용복은 나아가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이 아니라 조선의 영토라는 확약까지 받고 돌아온다.
 
조선은 이에 따라 이듬해 울릉도 영유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일본인의 울릉도 어로를 금지하는 수토(搜討) 정책을 실시한다. 섬을 수색해 일본인이 있으면 토벌한다는 뜻이다.
 
후손 장자진씨가 경북 의성군 구천면 경덕사(景德祠)에 모셔진 울릉도 수토사 장한상의 위패를 보여주고 있다(좌). 의성 경덕사 전경. 왼쪽 건물이 위패와 영정이 있는 사당이다(우). [사진 백종하]

후손 장자진씨가 경북 의성군 구천면 경덕사(景德祠)에 모셔진 울릉도 수토사 장한상의 위패를 보여주고 있다(좌). 의성 경덕사 전경. 왼쪽 건물이 위패와 영정이 있는 사당이다(우). [사진 백종하]

 
첫 수토사(搜討使)가 파견된다. 삼척 영장(營將) 장한상(張漢相‧1656∼1724)이다. 그는 1694년 8월 울릉도 수토사로 임명된 뒤 항해에 필요한 큰 배를 만드는 사이 군관 최세철을 먼저 보내 답사시킨다.
 
장한상이 수토단을 이끌고 울릉도를 향해 삼척부 남면 나루 대풍소(待風所)에서 배를 출발한 것은 9월 19일. 그의 지휘를 받으며 함께 떠난 대원은 역관 안신휘 등 자그마치 150명이다. 기선 1척과 화물선 1척, 급수선 4척이 동원됐다.
 
이들 배는 서풍을 타고 나아가다 바다 한복판에 이르러 풍랑을 만나 뿔뿔이 흩어진다. 그래도 용케 모두 울릉도에 도착한다. 이들이 울릉도에 머문 기간은 9월 20일부터 10월 3일까지 13일간. 대원들은 섬 서쪽 골짜기의 사람 살던 터와 돌무덤 등을 확인한다. 사람 말소리가 들리는 동굴도 탐색한다.
 
장한상은 울릉도에서 직접 보고 조사한 것을 ‘울릉도사적(鬱陵島事蹟)’에 남겼다. 여기에 주목할 만한 내용이 나온다. 독도 관련 기록이다. “울릉도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바다 가운데 섬이 하나 있는데 동남쪽에 있으며 크기는 울릉도의 3분의 1에 못 미치고 거리는 300여 리에 지나지 않는다.”
 
‘울릉도사적’이 실린『 절도공양세실록』. [사진 의성조문국박물관]

‘울릉도사적’이 실린『 절도공양세실록』. [사진 의성조문국박물관]

독도의 존재 맨눈으로 확인

지금으로부터 325년 전 독도의 존재를 맨눈으로 확인한 기록이다. 조선의 관리가 공문서에 남긴 독도에 관한 첫 기록이기도 하다. 울릉도와 독도의 거리는 87.4㎞. 독도 주변은 안개가 많은 편인데 9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는 안개가 덜하다.
 
장한상은 마침 이 시기에 울릉도에 들어간 것이다. 장한상의 이 자료와 수토 활동은 조선이 독도를 방치했다는 이른바 일본의 공도(空島) 정책 주장을 내려놓게 만드는 근거가 됐다. 300년 전 우리 조상들은 일본을 이렇게 다루었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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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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