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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재팬’ 배너기 6시간 걸었다 떼며...중구청 세금 225만원 썼다

중앙일보 2019.08.07 16:53
지난 6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중구청 관계자들이 태극기와 '노 재팬' 배너깃발을 설치하고 있다. [뉴스1]

지난 6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중구청 관계자들이 태극기와 '노 재팬' 배너깃발을 설치하고 있다. [뉴스1]

 
서울 중구청이 지난 6일 관내에 내걸었다 반나절 만에 뗀 ‘노 재팬(No Japan)’ 배너기를 제작·설치하는데 수백만원의 혈세가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중구청은 ‘노 재팬’ 배너기 50개를 제작하고, 설치·철거하는데 225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고 7일 밝혔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5일 보도자료를 통해 “중구는 서울의 중심이자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오가는 지역이다. 전 세계에 일본의 부당함과 우리의 강한 의지를 보여줄 것”이라며 명동·을지로·남산 등 관내에 깃발 1100개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깃발에는 지난달부터 이어지고 있는 전국적인 일본제품 불매 운동에 쓰인 ‘보이콧 재팬’ 이미지가 활용됐다.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는 한글 문구도 들어갔다. 중구는 지난 6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부터 서울역까지 세종대로를 따라 ‘노 재팬’ 배너기를 내걸었다. 중구는 당초 722개를 먼저 설치한 뒤 나머지 분량도순차적으로 총 1100개를 중구 관내 주요거리 22곳에 걸 계획이었다. 이날 우선적으로 50개만 제작했고, 민간업체를 고용해 설치했다. 
 
이런 깃발이 서울 한복판에 걸리자 반대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인 불매운동에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면 순수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어서다. 중구청 민원 홈페이지에 서 구청장을 비판하는 글이 수백개 게시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서울 한복판에 NO Japan 깃발을 설치하는 것을 중단해 주십시오’라는 글이 올라와 1만 70000여명이 참여했다. 청원자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불매운동을 정부에서 조장하고 있다는 그림이 생길 것이며, 향후 정부의 국제 여론전에도 나쁜 영향을 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예상과 달리 여론이 악화되자 이날 오후 2시 30분쯤 서 구청장은 “이유 불문하고 설치된 배너기는 즉시 내리겠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깃발을 설치했던 업체는 설치한지 불과 6시간 만에 철거에 나섰다.
 
중구청 관계자는 “깃발 제작, 설치, 제작에 들어간 예산 225만원은 일상 경비에서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일상경비란 부서 내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데 들어가는 쓰는 예산이다. 깃발 제작과 설치는 중구의 홍보전산과에서 담당했다. 그는 “철수한 '노 재팬' 깃발은 처분할 예정이며 깃발과 함께 걸렸던 태극기는 광복절에 다시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중구청의 이런 퍼포먼스를 보는 시민들의 눈초리는 달갑지 않았다. 명동에서 20년간 식당을 해온 재일교포 A씨는 “일본인 뿐 아니라 외국인이 많은 명동에 그런 것을 건다는 게 말도 안 되는 행동이다”고 말했다. A씨는 “이참에 인기 얻으려고 너도나도 그런 식으로 하는데 이래 봤자 힘들어지는 건 서민들이다. 가뜩이나 경기가 너무 안 좋아 장사도 안 되는데 명동 상인들 누가 좋아하겠느냐”고 토로했다. 광화문에서 만난 시민 정모(31)씨는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일본 제품 구매를 자제하고 있다. 지자체가 왜 피 같은 세금을 그런 곳에 낭비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다 보여주기 위한 쇼 같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청에서 열린 '일본 경제보복조치 직원 규탄대회'에 참석한 국장들이 구청에서 사용중인 일본제 사무용품을 타임캡슐에 넣고 있다. [뉴시스]

지난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청에서 열린 '일본 경제보복조치 직원 규탄대회'에 참석한 국장들이 구청에서 사용중인 일본제 사무용품을 타임캡슐에 넣고 있다. [뉴시스]

 
불매운동 대열에 참여한 지자체는 중구 뿐만이 아니다. 서울 서대문구청은 6일 구청에서 사용 중이던 일본 제품을 타임캡슐에 넣는 퍼포먼스를 했다. 구청의 각 부서·보건소·동주민센터 등 50개 부서에서 사용하는 일본산 제품을 모두 모았다. 펜·지우개·형광펜·프린터기 잉크 토너 등을 가로 90㎝, 세로 90㎝, 높이 90㎝의 투명 아크릴 박스에 담겼다. 가득 채워진 아크릴 박스는 자물쇠로 채워졌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일본 제품들을 버리는 것이 아니고 구청 1층 로비에 두었다가 일본 경제 보복 조치가 풀리면 다시 꺼내 사용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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