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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구 맞아?" 뉴질랜드서 경험한 생애 최고 트레킹

중앙일보 2019.08.07 11:00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27)

뉴질랜드 그레이트 웍스의 '통가리로 노던 서킷'. [사진 박재희]

뉴질랜드 그레이트 웍스의 '통가리로 노던 서킷'. [사진 박재희]

 
평생 잊히지 않을 트레킹 코스를 하나 말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뉴질랜드 그레이트 웍스의 ‘통가리로 노던 서킷(Tongariro Northern Circuit)’을 꼽겠다. 트레킹 꽤나 하는 사람들은 파타고니아의 토레스 델 파이네, 네팔의 히말라야나 페루의 잉카 트레킹, 혹은 알프스를 최고로 꼽겠지만 나는 뉴질랜드의 그레이트 웍스를 앞에 세우고 싶다.
 
그레이트 웍스 트랙 가운데 밀퍼드 트레킹은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하는 지구 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길’이라고도 한다. 과연 발걸음마다 탄성을 뱉게 했다. 하지만 그 선연한 신비와 아름다움, 장엄함마저도 통가리로를 걷고 난 후에는 슬며시 흐려졌음을 고백한다.
 

국립공원된 마오리 족의 영적 성소

 
통가리로는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 언어로 ‘신성하다’는 뜻이다. 세 개 화산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은 폴리네시아인 마오리가 처음으로 카누를 타고 뉴질랜드에 정착한 이래 거룩한 땅으로 여겨왔다.
 
마오리의 지도자 테헤우헤우투키노 4세는 마오리 공동체를 지탱하는 정신적 토대이자 성스러운 영지로 지켜온 이 지역을 정부에 헌납하며 보호를 요청했다. 백인 이주민들의 무자비한 토지 개발로부터 자신들의 영적 성소를 지키기 위한 결단이었는데 이것이 국립공원의 시초가 됐다고 한다. 통가리로는 뉴질랜드가 최초로 지정한 국립공원이다.
 
통가리로 국립공원 일대는 지금도 화산활동이 활발해 연기를 내뿜고 있는 지열 지대가 많다. [사진 박재희]

통가리로 국립공원 일대는 지금도 화산활동이 활발해 연기를 내뿜고 있는 지열 지대가 많다. [사진 박재희]

 
통가리로 국립공원 일대는 지금도 화산활동이 활발해 연기를 내뿜고 있는 지열 지대가 많다. 특히 ‘폭발하는 구멍’이라는 뜻의 이름에 걸맞게 루아페후 산은 1953년 151명이 사망했던 대폭발 이후로 최근 2007년까지도 다섯 차례나 폭발했다.
 
통가리로 국립공원은 상시로 분화구 호수의 온도를 체크하고 화산 조기 경보 시스템을 운영한다. 이렇게 위험한 지역인데도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끊임없이 통가리로를 찾는다. 이곳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자연 유산인 동시에 귀한 마오리 유적이 많아 세계 인류 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다.
 
통가리로 지역은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 ‘반지의 제왕’의 촬영지였다. 영화에서 절대 반지가 만들어지고 파괴되기도 했던 ‘운명의 산’으로 등장했던 나루호에 산을 루아페우 산과 통가리로 산 사이로 한 바퀴 돌아 일주하는 여정이 바로 통가리로 노던 서킷이다. 통가리로 노던 서킷트레킹을 하는 동안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는 화산 연기 속에서 활화산의 표면을 오르내리게 된다.
 
고대 용암류와 유황 연기를 내뿜고 있는 지열 지대,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진기한 화산 전경과 분출 와지를 메운 청색과 에메랄드색의 호수는 황량하면서도 신비했다. 걷는 내내 별세계에 와있다는 느낌에 압도당했다. 마치 다른 행성에 와있는 것만 같았다. 모든 소리를 빨아들인 듯 막막했던 진공의 고요, 그런가 하면 갑자기 존재를 휘어잡아 던져버릴 듯 몰아치던 바람, 가늠하기조차 벅찬 자연의 신비를 향해 걸었다.
 
첫째 날은 화카파파 빌리지에서 망가테포포 산장까지 8.5㎞를 걷는다. 바닥을 살피며 보드 워크를 걷다가 나지막한 화산을 양옆으로 거느린 루아페우산과 처음 마주쳤을 때 그 위용에 잠시 넋을 잃는 듯했다. 한여름이지만루아페우는 허리까지 눈을 입고 있었다. 고대 용암류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진기한 풍경에 이어졌다. 과거에 용암을 쏟아냈던 분기공을 지나면 망가테포포 계곡 트랙에 이르고 산장에 도착한다.
 
하루에도 백번 일기가 변한다는 통가리로답게 두 번째 날 아침에는 안개가 두꺼웠다. 해발 1600m 높이의 고지까지 오르면 눈 아래 광활한 평야가 펼쳐진다. 축구장의 50배가 넘는다는 어마어마하게 큰 분화구 사우스 크레이터는 안개로 가득하다.
 
드라이아이스를 백만톤쯤 풀어놓으면 이런 풍경이 되려나? 앞서 걷는 사람들을 차례로 안개가 흡수해 버렸다. 팔을 뻗어 손끝이 닿는 거리 만큼만 존재하는 기묘한 세상, SF영화 속의 다른 우주에 도착한 느낌이다.
 
숨겨진 보석, 마오리 신의 정령이 깃들었다는 세 개의 에메랄드 호수가 안개를 걷고 나타났다. [사진 박재희]

숨겨진 보석, 마오리 신의 정령이 깃들었다는 세 개의 에메랄드 호수가 안개를 걷고 나타났다. [사진 박재희]

 
붉은빛의 분화구, 레드 크레이터에서 진한 연기와 유황 냄새가 달려들었다. 아찔한 능선을 따라 정상을 넘는 순간 드디어 기다렸던 보상이 찾아왔다. 숨겨진 보석, 마오리 신의 정령이 깃들었다는 세 개의 에메랄드 호수였다.
 

신음이 저절로 나온 화산석 계곡

 
호수는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 호수의 물을 만지는 것은 금지되어있다. 광물질 빛을 받아 수십 가지의 색의 보석이 들어있는 듯하다. [사진 박재희]

호수는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 호수의 물을 만지는 것은 금지되어있다. 광물질 빛을 받아 수십 가지의 색의 보석이 들어있는 듯하다. [사진 박재희]

 
“우리가 진짜 여기 왔네!” “심지어 이 풍경을 보면서 점심을 먹을 거라고. 믿어져?” 초현실적인 풍경에 자리를 잡고 점심으로 싸 온 샌드위치를 꺼냈다. 주변 지대의 광물질로 호수는 에메랄드빛 초록, 사파이어 블루, 미세한 연두가 섞여 신비한 색이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호수와 설산에 둘러싸인 센트럴 크레이터를 바라보며 우리는 거기가 통가리로의 하이라이트일 거라고 믿었다.
 
에메랄드 호수를 뒤로하고 언덕을 돌아서 계곡을 마주했을 때 그 순간만큼은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내가 가진 언어로는 이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그 광대함을 말하지 못하겠다. 외계의 혹성 표면처럼 울긋불긋한 화산석과 식생의 계곡은 공상 영화 속에서 스타 게이트를 넘어 도착한 낯선 행성의 분화구였다. 아득했고 인간의 언어는 초라하고 쩨쩨하게 느껴졌다. “말도 안 돼.” “어떻게 해. 너무 멋있다.” 말이라기보다 신음이었다.
 
통가리로 노던 서킷의 트레킹 도중 발이 떨어지지 않는 절경의 포인트를 수없이 만난다. [사진 박재희]

통가리로 노던 서킷의 트레킹 도중 발이 떨어지지 않는 절경의 포인트를 수없이 만난다. [사진 박재희]

 
깊은 바닷속을 연상시키는 화산 지형을 지나면 오투레레 산장에 도착한다. 루아페후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따스한 햇볕에 바람을 타고 물결치는 터석풀(Tussock grass), 눈부신 만년설을 덮고 서 있는 산, 그 자리에서 다시 망부석이 되고 싶은 아쉬움이 등산화를 뚫고 뿌리내렸다.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어내며 길을 나섰다. 당연히, 그때 우린 상상하지 못했다. 거기에서 와이호호누까지 통가리로가 다시 한번 우리를 완벽하게 다른 차원의 경지로 이끌어 줄리라는 것을.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온 듯한 풍경을 걸으면서 마치 달이나 화성에 가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사진 박재희]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온 듯한 풍경을 걸으면서 마치 달이나 화성에 가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사진 박재희]

 
‘운명의 산’ 나우루호에와 만년설에 뒤덮인 루아페후가 이끄는 대로, 지구 위의 어느 곳이라고 믿을 수 없는 고원의 들판을 걸었다. “여기는 화성 같지 않아?” “달 표면 같기도 해.” 달에도 화성에도 가보지 못한 우리는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구 위의 어느 곳이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마지막 날은 화카파파빌리지까지 돌아가는 날이다.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알았는지 거센 바람은 배낭을 자꾸만 뒤로 잡아당기는 듯했지만 걸음을 뗄 때 마다초록 불이 들어와 내 몸을 채우는 느낌이다. 통가리로의 신비한 에너지 충전을 기억하며 내 생에 최고의 트레킹을 기록한다.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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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필진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 한량으로 태어나 28년을 기업인으로 지냈다. 여행가, 여행작가로 인생2막을 살고 있다.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나는 여행자다. 길에서 직접 건져올린 이야기, 색다른 시각으로 비틀어 본 여행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여정을 따라 함께 걸으며 때로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 생생한 도보 여행의 경험을 나누며 세상을 깊이 여행하는 길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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