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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늙어갈수록 우리 젊게 살자

중앙일보 2019.08.07 10:00

[더,오래] 강인춘의 웃긴다! 79살이란다(42) 

[일러스트 강인춘]

[일러스트 강인춘]

 
아파트 11층에서 내가 탄 엘리베이터는 잘 내려가다가 또 3층에서 멈춘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녀석은 고개를 숙인 채 타더니 이내 문 쪽을 향해 돌아선다.
녀석은 오늘도 변함없이 헐렁한 러닝셔츠에 잠옷 같은 바지 차림새다.
맨발에 그 흔한 까만 세줄 슬리퍼까지 변함이 없었다.
옆에서 본 턱수염은 듬성듬성 제멋대로 자라나 흉한 꼴을 더욱 부추긴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이 시간쯤이면 나는 운동 가방을 들고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헬스장으로 가는 시간이다.
녀석과는 가끔 이렇게 엘리베이터 안에서 조우하지만
볼 때마다 왜 불쾌해 보이는지….
아마도 내 나이보다는 5, 6년 정도는 아래로 보이는데도
녀석의 행동거지는 80살을 훌쩍 넘어선 꾀죄죄한 늙은이로 보인다.
10층에서 탄 젊은 주부는 아예 못 본채 고개를 돌려버린다.
 
녀석은 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왜 ‘다 죽어가는 노인상’을 자청해서 그리는 것일까?
천성인 게으름 탓일까?
그래도 그렇지 공동생활을 하는 아파트에서
남의 눈에 사나운 행동은 가려서 해야 하는 것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짜샤!
(꼴 보기 싫은 친구니까 내 마음대로 싸질러 부른다)
부탁 하나 하자.
제발 그 헐렁한 러닝셔츠는 입지 마. 잠옷 바지도.
그리고 그 낡고 찢어진 검정 슬리퍼 질질 끌지 마. 허리도 좀 활짝 펴봐.
너 때문에 이 좁은 엘리베이터 속에서 내 얼굴에 화끈하게 불 질러야 하겠니?
우리 서로 늙은 티 내지 말고 사는 날까지 깨끗하게, 곱게, 그리고 젊게 살자.
 
짜샤!
그리고 마지막 부탁이다.
3층에서 엘리베이터는 타지 마.
3층 정도는 운동 삼아 걸어서 내려가도 되잖아.
 
강인춘 일러스트레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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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춘 강인춘 일러스트레이터 필진

[강인춘의 웃긴다! 79살이란다] 신문사 미술부장으로 은퇴한 아트디렉터. 『여보야』 『프로포즈 메모리』 『우리 부부야? 웬수야?』 『썩을년넘들』 등을 출간한 전력이 있다. 이제 그 힘을 모아 다시 ‘웃겼다! 일흔아홉이란다’라는 제목으로 노년의 외침을 그림과 글로 엮으려 한다. 때는 바야흐로 100세 시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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