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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가난 겪는 청소년, 정서적 가난에 더 멍든다

중앙일보 2019.08.07 08:00

[더,오래] 조희경의 행복 더하기(12)

지역과 세대의 간격을 뛰어넘어, 후원자와의 만남은 언제나 가슴이 뭉클하다. 에콰도르컴패션 어린이센터를 방문한 후원자님이 사랑의 손길로 머리를 빗겨주자 어린이가 수줍게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한국컴패션]

지역과 세대의 간격을 뛰어넘어, 후원자와의 만남은 언제나 가슴이 뭉클하다. 에콰도르컴패션 어린이센터를 방문한 후원자님이 사랑의 손길로 머리를 빗겨주자 어린이가 수줍게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한국컴패션]

 
얼마 전 ‘틴즈업(Teens Up) 캠페인’을 기획하면서 부모의 이혼으로 힘겨운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한 30대 여성 후원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으로 상처투성이가 된 그는 고2가 되자 동생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고, 아버지와 이혼하라고 엄마를 설득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대학생활을 즐기는 친구들을 볼 때면 자신은 그들처럼 살 수 없다는 우울함에 한없이 가라앉는 자신과 싸우곤 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관심보내는 자체가 치유제  

그는 엄마가 안정을 되찾고 몇 년 전 인연을 맺은 좋은 배우자 덕분에 어린 시절의 불안함을 어느 정도 지울 수 있었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는 컴패션 일반인 홍보대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하는 이유를 물으니 그 답변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힘들고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내는 아이들에게는 경제적 도움만이 아니라, 자신감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거든요. 아이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줄 수 있다는 게 자신에게도 치유제가 돼요.”

 
그는 어린이를 후원하면서 또 다른 꿈을 꾸게 됐다고 한다. 자신의 사랑과 관심이 어린이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 본인과 비슷한 마음의 상처를 가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그것.
 

“상처받은 청소년들이 많은데 절대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해요. 제가 학창시절에 제일 힘들었던 건 혼자라고 생각될 때였어요. 주변에 저를 위해 기도해주고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많은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너무 힘드니까.”

 
필리핀 세부 내 철거민촌. 무단점유로 강제 철거 당한 집을 판자로 다시 짓고 살고 있지만 아이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사진 한국컴패션]

필리핀 세부 내 철거민촌. 무단점유로 강제 철거 당한 집을 판자로 다시 짓고 살고 있지만 아이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사진 한국컴패션]

 
우리가 사는 21세기 사회에서 가난이란 집이 없고 돈이나 먹을 음식이 없는 물질적 가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계은행이 지난 2000년에 펴낸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 자료를 보면 경제적으로 힘겨운 사람들이 경험하는 진짜 가난은 경제력 부족으로 인해 경험하는 수치심과 열등감, 모욕과 절망, 우울함과 고립감이다. 물질적 가난에서 상대적·정서적 가난으로 우리의 시선을 확장해야 하는 이유다.
 
어린이들이 겪는 경제적 결핍은 밥을 먹지 못하는 것 이상의 참담함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들과 달리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할 거라는 소외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절망감을 느끼는 순간 아이들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어버린다. 특히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기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혼자만의 힘으로는 더 나아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심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10대가 되면 상당수 후원이 취소되는 이유 

바로 이것이 가난으로 고통받는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이유다. 컴패션 어린이 센터의 아이들은 10대 청소년이 되면 상당수 후원이 취소되는 아픔을 경험한다. ‘다 큰 아이들을 왜 계속 후원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후원자가 갖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개발도상국 10대 아이들의 생계를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채석장에서 돌을 깨거나 쓰레기를 주워서 버는 몇 푼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너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내게 넌 소중한 존재이고 항상 너를 위해 기도한다’는 후원자의 편지가 자신의 삶을 바꾸었다는 한 컴패션 졸업생의 고백이 생각난다.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과 가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만이 아이들을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지금도 가난과 힘겹게 싸우며 자신의 마라톤을 뛰고 있는 전 세계의 청소년들에게 사랑을 담아 응원을 보낸다.
 
조희경 한국컴패션 후원개발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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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경 조희경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전략기획팀장 필진

[조희경의 행복 더하기] 최고급 아파트를 팔던 18년 차 마케터에서 NGO 신입생으로, 남 도우러 왔다가 내 마음 수련 중이다. 직장이 아닌 인생에서 멋지게 은퇴하고 싶어 선택한 길. 돈과 지식보다 진심 어린 마음이 더 위대한 일을 해낸단 걸 배우고 있다. 더 오래 사랑하며 살고 싶은 중년 아줌마의 고군분투 NGO 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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