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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작은 브랜드를 사랑하는 이유

중앙일보 2019.08.07 06:46

“우리의 역할은 진정성 있는 스몰브랜드가 크게 도약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_손창현 OTD 코퍼레이션 대표. 폴인 스토리북 <오늘의 브랜드 내일의 브랜딩> 중에서 
 

[폴인을 읽다] 숫자보다는 스토리가 중요하다: 성수연방  

취향이 생긴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과 취향이 생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등식의 관계다. 취향은 돈 없이 생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 월급이 통장에 들어온 날, 주민등록증의 잉크도 안 마를 무렵의 내가 제일 먼저 간 곳은 작은 보세 옷가게였다. 아기자기한 소품들 사이에 마음에 쏙 드는, 빨간 스커트가 있는 곳이었다.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혹여나 누가 사가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 월급을 받은 날, 바로 가게로 달려가 스커트를 사 입고 나갔는데 얼마나 신이 났던지. 
 
그 이후로 한동안 월급을 받으면 꼭 그 가게에서 옷을 하나씩 사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 입지도 않을, 불편한 옷들이지만 일종의 의식이었다. 나만 아는 가게에서, 나를 위한 옷을 사는 것으로 한 달 동안 고생한 나에게 주는 보상이었다.
 
물가가 지독하게도 비싼 서울에서 학비와 월세는 물론이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압박에 각종 학원도 다니는 건 미덕이라기보다 기본이다. 거창한 꿈을 나누던 친구들은 모두 노량진과 신림동으로 달려갔고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온갖 스터디에 치여 살고 있다. 입학한 해부터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나는 이 모든 것이 아득했다. 아득바득 살아서 남는 것이 고작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삶이라니. 
 
끝이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뭔가 다른 삶을 살고 싶어도, 돈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버렸기에 타협해서라도 이 순간을 넘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최소한의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세상이지 않은가. 그래서 열심히 벌고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쓰기로 했다. 그렇게 소비는 나의 개성, 취향을 담기에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 되어버렸다. 가치적인 소비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를 소비한다는 것은 막막한 세상에서 숨 쉴 만한, 작은 틈을 내어주고 있다.
 
성수동 ‘성수연방’. 시내 맛집과 함께 소규모 식품업체가 성장할 수 있는 공유 공장이 있다. [중앙포토]

성수동 ‘성수연방’. 시내 맛집과 함께 소규모 식품업체가 성장할 수 있는 공유 공장이 있다. [중앙포토]

 
이제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패턴이 이전 세대와 다르다는 이야기는 클리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세대별로 어떤 현상을 분석하고 묶어내는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유의미한 분석 틀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만 알고 있는 브랜드는 꽤 자주 화두가 되곤 한다. 필름 카메라, 향수 공방, 자취생을 위한 건강한 음식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다니는 친구들과의 대화는 일상이 되었다. 현상이라고 할 만큼 뚜렷한 소비 패턴이기는 하다.
 
이러한 현상을 잘 잡아내고 새로운 소비문화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바로 OTD 코퍼레이션의 손창현 대표다. 그는 요즘 핫한 복합문화공간 성수연방의 수장이기도 하다. OTD 코퍼레이션은 복합문화공간 '아크앤북', 경리단길과 가로수길의 유명 맛집 음식과 맥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파워플랜트', 전국 유명 맛집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셀렉트 다이닝 브랜드 '오버 더 디쉬', 디저트 편집숍 '헤븐 온탑' 등의 브랜드를 론칭했다.
 
폴인 스토리북 <오늘의 브랜드 내일의 브랜딩>의 성수연방 편에서는 새로운 소비 패턴에 대한 정확한 분석, 새로운 브랜딩에 대한 인사이트를 엿볼 수 있다. 특히나 손 대표는 밀레니얼 세대의 다른 소비 패턴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그는 절대적 빈곤이 사라지면서 소비 패턴도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집을 사고 나면 자가용을 사고 여유가 있으면 애니콜 휴대폰을 샀던 시대와는 달리, 개성을 담는 그릇으로써 소비문화가 자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는 스타벅스, TGIF와 같이 빅브랜드를 소비하는 사람을 트렌디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는 아니나, 일정 부분 적합한 분석이라고 본다. 다만 절대적 빈곤이 사라지고 국민 소득이 증가해서라기보다는, 소위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패턴이 노동 임금 대비 치솟는 집값과 물가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것을 찾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패턴을 감지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주는 점이 인상 깊다. OTD 코퍼레이션은 "From Big To Small(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을 기치로 내걸고 스몰 브랜드를 발굴하고 오프라인 기반의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들이 스몰 브랜드에 주목하는 이유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패턴 때문만은 아니다.
 
폴인(fol:in) 웹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스토리북 <오늘의 브랜드, 내일의 브랜딩>의 표지. [사진 폴인]

폴인(fol:in) 웹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스토리북 <오늘의 브랜드, 내일의 브랜딩>의 표지. [사진 폴인]

 
성수 연방에는 스몰 브랜드가 더 많은 물건을 생산할 수 있게 돕는 공유 공장이 있다. 스몰 브랜드 하나였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지만 여러 브랜드가 모이면서 가능해졌다. 이렇게 성수연방은 생산에서 판매, 그리고 문화 경험까지 하나의 공간에서 담아내고 있다. 아크앤북에서 책을 읽으며 샤오짠이라는 브랜드의 만두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OTD 코퍼레이션이 놀라운 점은 취향을 넘어 삶의 이야기를 경험하는 공간을 기획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수연방의 로고는 방패 모양이다. 바로 중세시대의 성처럼 생산과 소비, 유통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고 휴식을 취하며 삶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이다. 이제 성수연방은 생산에 대한 이야기부터 스몰 브랜드를 발굴하는 것을 넘어 스몰 브랜드가 함께 연대하고 성장해가는 방식을 담고 있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브랜드의 로고가 아니라, 사는 행위가 어떤 스토리와 가치를 담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됐다. 숫자보다 스토리가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김아현 객원에디터 folin@folin.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