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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 상고심 바꾸자는데···국회는 적폐 악몽에 떤다

중앙일보 2019.08.07 05:00 종합 12면 지면보기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제도 개편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제도 개편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한국 법원은 3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소송 당사자는 항소로 2심에 갈 수 있고 상고로 대법원에서 판단하는 3심(상고심)에 갈 수 있다. 20대 국회에는 이 상고심 제도를 개편하겠다는 법안이 한 건 발의돼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2년만에 상고심 개혁 추진
상고법원 추진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 기소 뒤
상고제도 개편 법안 참여 의원 168명→12명

법조인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고등법원에 상고 여부를 판단하는 상고심사부를 설치하겠다"며 지난해 대표발의한 법안이다. 대법관 1인당 연간 상고 사건이 4000건에 달하고 민사사건의 경우 70%가 기각되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상고를 줄여 대법원이 중요 사건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개혁적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금태섭 의원실은 공동발의 의원 최소 숫자(10명)를 채우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어느 의원실에선 보좌관이 의원 몰래 서명을 해주기도 했다. 
 
19대 국회에서 상고심 개편이란 같은 취지의 다른 해결책을 추진했던 양승태 대법원의 상고법원 법안(자유 한국당 홍일표 의원 발의)에 서명한 의원은 168명이었다. 그러나 금 의원의 법안엔 단 12명만 이름을 올렸다. 법원의 상고심은 바뀐 것이 없는데 의원들의 관심만 뚝 끊긴 것이다.
 
19·20대 국회에 제출된 상고심절차 개정법률안.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19·20대 국회에 제출된 상고심절차 개정법률안.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관계자는 "검찰이 양승태 대법원의 상고법원 추진 과정에서 재판거래 의혹을 거론하며 양 전 대법원장을 기소한 후 의원들은 법안에 상고란 단어만 나와도 적폐로 몰릴까 서명을 꺼린다"고 말했다. 상고심 개편도 일종의 적폐로 분류된 것이다. 
 

상고심 개혁 추진하는 김명수 대법원 "과거 실패 반복 안 할 것" 

김명수 대법원장이 다시 상고심 개혁 논의를 시작했다. 대법원장 취임사에서 상고 제도 개선 필요성을 언급한 지 2년 만이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달 24일 한국 민사·형사법 학회 임원진 및 학자들을 초청해 직접 간담회를 주재했다. 대법원장이 상고제도 관련 논의를 직접 주재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상고제도 개편 법안에 서명한 의원 12명(20대 국회)과 168명(19대 국회)이란 두 숫자가 현재 김명수 대법원이 처한 현실을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대법원 입장에선 상고 제도 개편은 절실한 과제다. 하지만 결정권을 지닌 의원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22일 보석으로 풀려나며 구치소를 나서고 있는 모습. 오종택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22일 보석으로 풀려나며 구치소를 나서고 있는 모습. 오종택 기자

법원행정처 고위 관계자는 "우린 양승태 대법원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서두르지 않고 법원 내부와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나갈 것"이라 말했다. 내년 4월 총선 이후 구성될 21대 국회를 바라보며 "대법관 증원과 고등법원 심사부, 상고 허가제, 상고법원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라고도 말했다. 
 

상고 사건 지난해 47,979건…현직 판사들 "개선 절실"

법조계 전반에선 현행 상고심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큰 이견이 없다. 양승태 대법원 시절 상고법원 추진에 반대했던 한 현직 판사도 "상고 사건이 너무 많아 대법관이 객관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선 사전 허가가 필요한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항소심(2심)에 승복하지 않는 모든 소송 당사자가 상고할 수 있다. 상고 사건은 2000년 1만6492건에서 2018년에는 4만7979건으로 계속 증가 추세다. 
 
연간 10~20건 정도의 전원합의체 선고만 주재하는 김명수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겸임해 재판에 관여하지 않는 조재연 대법관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을 기준으로 지난해 대법관 1인당 맡은 사건 수는 평균 3998건이었다. 
 
계속 증가하는 대법원 접수 사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계속 증가하는 대법원 접수 사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대법관이 1년 365일을 일한다고 해도 심리와 별개로 하루에 약 11건의 사건 기록을 봐야 한다. 대법관별로 3명의 전속 재판연구관이 붙고 모든 대법관을 공동으로 보좌하는 70여명의 공동연구관도 분석을 돕는다. 
 
하지만 보통 대법원까지 올라오는 상고 사건의 기록이 수천 페이지에 달해 대법관을 보좌하는 연구관들조차 모든 사건 기록을 제대로 살펴보긴 쉽지 않다. 재판연구관 출신 부장판사는 "재판연구관을 해보니 대법관의 삶이 더는 부럽지 않았다"고 말했다. 
 

상고 뒤 1~2년간 기다려 받은 한 페이지 기각 결정문  

현행 상고심 제도의 또 다른 문제는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형사 사건을 제외한 2심 판결이 ▶헌법을 위반하거나 잘못 해석한 경우 ▶법률을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게 해석한 경우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이 아니면 모두 기각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소송 당사자들은 사건 내용이 담기지 않은 한장짜리 '상고 기각' 결정문을 받게 된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7년 대법원에 접수된 민사사건 1만 5364건 중 기각된 사건이 1만 322건으로 77.2%에 달한다. 행정사건의 기각률 역시 2017년 기준 76.4%로 증가 추세에 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1심과 2심에서 신속하게 재판을 해도 대법원에서 판결문도 없는 상고 기각 결정이 내려지는 데 최소 1~2년이 걸린다"며 "이런 결정을 받는 일반 시민들의 허탈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 고위 관계자는 "미국 대법원은 상고 허가제를 통해 대부분의 사건을 거르고 전원합의체에서 향후 수십년간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사건만 제대로 다룬다"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6월 20일 대법원에서 열린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 상고심'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은 대부분의 사건을 소부에서 다루며 극소수 사건만 전원합의체를 운영한다. [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6월 20일 대법원에서 열린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 상고심'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은 대부분의 사건을 소부에서 다루며 극소수 사건만 전원합의체를 운영한다. [뉴스1]

한국 대법원, 전원합의체 아닌 소부 중심으로 운영 

하지만 한국 대법원은 이와 달리 상고 사건이 너무 많아 대법관이 4명씩 배정돼 3개의 부로 나누어진 소부에서 거의 모든 상고 사건을 처리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과 같이 주요 사건만 대법원장이 주재하고 대법관 3분의 2가 참석하는 전원합의체에서 다뤄진다. 
 
하지만 전원합의체가 활성화된 2011년을 기준으로 현재까지 전원합의체 선고 건수는 민사(64건)와 형사(49건), 특별(52건) 사건을 포함해 165건에 불과하다. 법원행정처 고위 관계자는 "소부 중심의 한국 대법원은 진정한 대법원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다음 국회를 보며 천천히 가겠다고 했지만 2022년부터는 모든 정당이 대선 체제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사실상 2020~2021년 단 2년뿐이다. 그 시기를 놓치면 상고제도 개편은 다음 대법원장에게 넘겨야 한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이 임기 중 무리하게 상고법원을 추진하다 재판에 넘겨진 상황에서 김명수 대법원이 어떤 리더십으로 국회와 국민, 법원 내부를 설득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법원 내부에서만 조용히 논의되다 조용히 잊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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