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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이젠 통화전쟁

중앙일보 2019.08.07 00:10 종합 1면 지면보기
이제 통화 전쟁이다. 관세 폭탄을 주고받던 미·중 무역 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미국과 중국이 5일 ‘포치(破七·위안화 가치가 달러당 7위안 밑으로 내려가는 것)’와 환율조작국 지정으로 맞서며 통화 전쟁의 막이 올랐다. 세계 경제가 시계 제로로 접어들었다.

위안화 절하 다음날 25년 만에 강수
코스닥 -3.2% 상하이 증시 -1.5%

세계 경제 하락 가속화시킬 우려
위안화 약세 지속 땐 한·일도 불똥
중국 고시환율, 예상보다 덜 높여
“미국에 강하게 안 맞설 것” 분석도

 
위안화 약세를 용인한 중국에는 핵폭탄이 터졌다. 미국 재무부가 5일(현지시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1994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이 해당 국가에 상계관세를 부과할 수 있고, 향후 제재 등의 절차에 나설 수 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중국은 외환시장에서 지속적이고 큰 규모의 개입을 통해 통화가치 절하를 쉽게 해 온 오랜 역사가 있다”며 “중국이 최근 며칠 동안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구체적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5일 중국 정부가 ‘1달러=7위안’이 무너지는 포치를 용인하며 위안화 약세 카드를 꺼내들자 미국이 곧바로 응수에 나선 것이다.

 
시장은 요동쳤다. 이날 미국 3대 증시는 3%가량 급락했다. 6일 코스피는 1.51%, 코스닥은 3.21% 하락했다. 중국 상하이 증시는 1.56% 떨어졌다.

 
“미·중 환율전쟁, 양국 경제 침체 몰고갈 수 있다”
 
‘1달러=7위안’ 깨진 위안화 어떻게 되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1달러=7위안’ 깨진 위안화 어떻게 되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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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공포에 사로잡힌 것은 양국의 갈등이 폭발력이 큰 통화정책으로 번져갔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은 다소 이례적이다. 미 재무부는 일반적으로 매년 4월과 10월 환율보고서를 내면서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를 밝힌다.
 
환율조작국에 대한 판단에 있어 미국 정부의 재량권이 넓은 종합무역법을 근거로 한 것도 중국에 보내는 강력한 신호로 읽힌다. 환율조작국을 지정하는 근거는 두 가지다. 1988년 제정된 종합무역법의 환율조작국과 2015년 만들어진 무역촉진법상의 심층분석대상국이다.

 
종합무역법에는 환율조작국을 판단하는 계량화된 요건이 없다. 반면에 교역촉진법에 따르면 ▶현저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200억 달러 초과)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국내총생산(GDP) 대비 3% 초과) ▶환율시장의 한 방향 개입 여부(GDP 대비 순매수 비중 2% 초과) 등의 기준을 어겼을 때 심층분석대상국으로 지정된다. 그 때문에 명시적 규정이 없는 종합무역법을 근거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이후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이 원하는 바를 중국에 압박할 것이란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시장의 관심은 통화 전쟁으로 전선을 확대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어느 수준까지 증폭될 것이냐에 집중된다. 그 첫 번째 리트머스 시험지가 6일 중국인민은행의 위안화 고시 환율이었다. 이날 중국인민은행은 위안화 가치를 달러당 6.9683위안으로 고시했다. 전날보다 0.66% 내렸다. 시장의 전망치(달러당 6.9871위안)보다 수위를 낮춘 모양새다. 블룸버그는 “중국이 예상보다는 위안화 가치를 덜 떨어뜨리면서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 우호적인 추가 제스처도 취했다. 중국인민은행은 위안화 역외 시장인 홍콩의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오는 14일 300억 위안(42억 달러) 규모의 중앙은행증권을 발행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위안화 가치가 올라가게 된다. CNBC는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일부러 끌어내리지도 않지만 지지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환율조작국 지정 이후 중국 당국과 언론이 “환율조작국 딱지가 가소롭다.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중국이 미국에 강하게 맞서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관세 부과에 따른 충격을 상쇄할 수 있지만 위안화값이 떨어지면 중국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도 여럿이다. 우선 자본 이탈이 가속화하며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칠 수 있다. 기업 부채가 더 악화될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의 많은 대기업이 (초저금리 기조 속에) 달러 표시 부채를 끌어다 썼다”며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갚아야 할 돈이 늘어나 기업 부담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통화 전쟁이 세계 경제에 가져올 후폭풍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통화전쟁에 따른 세계 경제 둔화세는 미국 경제를 침체로 몰고갈 수 있고, 중국의 성장률은 이미 약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위안화 약세는 중국 제품과 경쟁하는 한국과 일본 등 제조업 국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통화 전쟁까지 이른 일련의 상황이 1930년대 대공황과 닮은꼴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스티븐 찰스 케일 코넬대 교수는 WP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사람이 관세 장벽을 쌓고 자국 통화 가치를 끌어내려 무역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는 지금의 상황이 대공황 시기에 벌어졌던 일과 닮았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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