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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시대가 도왔나...재난 코미디 '엑시트' 흥행 비결

중앙일보 2019.08.06 20:34
만년 취업 준비생인 용남(조정석)과 팍팍한 현실을 견뎌내는 직장인 의주(임윤아)가 난데없이 도시를 덮친 유독가스 재난에 맞서 함께 헤쳐 가는 과정을 담은 '재난 탈출 액션' 영화 '엑시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만년 취업 준비생인 용남(조정석)과 팍팍한 현실을 견뎌내는 직장인 의주(임윤아)가 난데없이 도시를 덮친 유독가스 재난에 맞서 함께 헤쳐 가는 과정을 담은 '재난 탈출 액션' 영화 '엑시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극한직업’을 잇는 코미디 흥행작이 탄생했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코믹 재난영화 ‘엑시트’(감독 이상근)가 첫 주말 흥행 1위에 오르며 일주일 만에 손익분기점 350만 관객을 돌파했다. 4년 전 여름 시장을 달군 1000만 영화 ‘베테랑’을 앞질렀다.  
개봉 하루 전 예매율만 해도 나란히 개봉한 ‘사자’가 앞섰다. 2년 전 버디 액션물 ‘청년경찰’로 560만 관객을 모은 김주환 감독, 박서준이 미스터리 액션물로 다시 뭉친 데 기대가 컸다. 그러나 개봉 첫날 판도가 뒤집혔다.

조정석·윤아 '엑시트' 350만 돌파
'극한직업' 이어 극장가 웃음 사냥
올여름 무거운 한국영화 속 차별화
비극·신파 없이 시원한 액션 입소문
취준생·상사갑질…청년 세대 공감

 

"재난 희화화 않고 웃음 건졌다"

주인공 용남(조정석)은 대학 졸업 후 몇년째 취직을 못하고 있는 청년백수다. 가족에게 무시당하던 그는 재난상황에서 의외의 활약상을 펼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주인공 용남(조정석)은 대학 졸업 후 몇년째 취직을 못하고 있는 청년백수다. 가족에게 무시당하던 그는 재난상황에서 의외의 활약상을 펼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엑시트’의 주인공은 유독가스로 뒤덮인 신도심에 갇힌 청년백수 용남(조정석)과 대학 후배인 회사원 의주(윤아). 가족 눈총, 상사 갑질에 시달리던 이들이 산악동아리 시절 경험을 되살려 자력 생존하는 탈출기가 2030세대의 공감을 얻었다. 무거운 비극이나 신파 없이 고층건물을 기어오르고 질주하는 시원시원한 액션 스타일도 입소문을 탔다.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팝콘무비”란 게 주요 포털‧평점 사이트 관객들의 주된 반응이다.
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는 “‘나랏말싸미’ ‘사자’ 등 올여름 다른 한국영화들이 진지하고 다크한 반면 ‘엑시트’는 시원하고 가볍다”면서 “한국 재난영화의 고질적인 신파코드에서 벗어나 유머러스하고 깔끔한 재미로 차별화했다”고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자칫 무거워질 법한 재난 상황을 희화화하지 않되, 코미디와 균형감 있게 엮어냈다”면서 “비극을 살짝 비틀어 가볍지 않은 웃음을 만들었다”고 호평했다.  
 

취준생·초년생 힘합친 생존분투 

대학시절 산악동아리 선후배였던 인연으로 재난 상황에서 손발이 척척 맞게 되는 의주(왼쪽)와 용남. 쓰레기봉투, 박스테이프 등 일상용품으로 만든 방호복이 목숨을 구하는 재난탈출 무기가 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대학시절 산악동아리 선후배였던 인연으로 재난 상황에서 손발이 척척 맞게 되는 의주(왼쪽)와 용남. 쓰레기봉투, 박스테이프 등 일상용품으로 만든 방호복이 목숨을 구하는 재난탈출 무기가 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캐릭터 설정부터 영리했다는 평가다. 용남은 몇 년째 구직에 실패한 ‘취준생’, 의주는 하루하루가 고달픈 사회초년병이다. 요즘 젊은 세대를 반영한 거울 같다. 이번에 장편 데뷔한 이상근 감독이 애초 안개처럼 도시를 뒤덮는 ‘가스’ 테러를 택한 것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재난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하며 역경을 헤쳐 나가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였단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는 “영웅이 아닌 보편적 인물,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 힘을 합쳐 생존을 향해 달려 나가기에, 더욱 응원하게 된다”면서 “재난영화에 상투적으로 나오는 국가권력 등 외부세력이 개입했다면 오히려 공감이 덜 했을 것”이라 분석했다.  
 

"따따따" 구조 신호 입에 붙네

건물 옥상에서 구조헬기에 신호를 보내는 의주와 용남. 곁에 있는 실물 크기 광고배너들이 허를 찌르는 용도로 쓰인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건물 옥상에서 구조헬기에 신호를 보내는 의주와 용남. 곁에 있는 실물 크기 광고배너들이 허를 찌르는 용도로 쓰인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따따따 따 따 따 따따따!” 영화를 보고 나면 입에 맴도는 극 중 구조신호다. 실제 SOS 모스 부호를 입으로 소리 낸 것. 응급환자를 옮기려 대걸레와 담요로 들 것을 만들고, 쓰레기봉투‧고무장갑으로 방호복을 만드는 등 용남과 의주가 주변 생활소품을 활용하는 모습은 흡사 맥가이버 같다. 이런 재난대피요령은 관객들 사이에도 화제가 됐다. 평소 쓸데없다고 핀잔이나 듣던 용남의 클라이밍‧철봉 기술이 재난 탈출에 필살기로 쓰일 땐, 묘한 쾌감과 함께 뭉클함까지 느껴진다.   
유독가스 수위가 점점 높아지는 상황을 게임하듯 돌파해나가는 맨몸 액션 장면들도 제법 설득력 있게 그렸다. 윤진율 무술감독은 “100m 넘는 빌딩 사이를 손쉽게 건너는 게 기존 할리우드 재난영화 스타일이라면 ‘엑시트’는 3~4m 거리도 막상 뛰려면 겁이 덜컥 나는 실제 상황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는 “본인은 처절한데 인간적인 요소와 웃음이 배어난다”는 점에서 “성룡 세대 맨몸 액션 코미디가 연상된다”고 했다.  
 

조정석·윤아 '몸 던진' 등반 액션 

부실해 보이는 하늘다리, 공사 잔해도 이들에겐 목숨이 걸린 동앗줄이 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부실해 보이는 하늘다리, 공사 잔해도 이들에겐 목숨이 걸린 동앗줄이 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무엇보다 배우들의 활약상이 돋보인다. 걸그룹 ‘소녀시대’ 출신 윤아는 이번이 첫 스크린 주연. 조정석도 그간 영화 주연으론 큰 흥행을 맛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번 영화를 기점으로 입지가 달라질 듯하다. 특히 직접 암벽등반을 배워 소화했다는 액션 장면들이 발군이다. 각각 몸 쓰는 데 능한 뮤지컬 배우, 아이돌 출신이란 강점을 잘 살렸다. 강유정 평론가는 “올여름 대진표만 보면 송강호의 ‘나랏말싸미’, 유해진‧류준열의 ‘봉오동 전투’, 박서준의 ‘사자’ 등 그간 더 강력한 필모그래피를 가져온 배우들이 눈길을 끌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엑시트’의 앙상블이 가장 매력적”이라면서 “투톱 주연뿐 아니라 박인환‧고두심‧김지영 등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가 장르적으로 잘 융합됐다”고 돌아봤다.  
 

"답답한 사회, 코미디 전성기"

용남의 어머니 역으로 등장한 고두심. 그에 더해 박인환, 김지영 등 베테랑 배우들도 탄탄하게 극을 견인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용남의 어머니 역으로 등장한 고두심. 그에 더해 박인환, 김지영 등 베테랑 배우들도 탄탄하게 극을 견인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이번 영화는 용남이 어머니(고두심) 칠순잔치에 갔다가 재난을 겪는다는 설정이다. 온 가족이 힘을 합쳐 난관을 극복하고, 천덕꾸러기 같던 용남이 친지에 인정받는 과정은 중‧장년층 관객에게도 어필할 만하다. 10∼20대 자녀가 부모와 함께 보는 가족 관객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짜릿한 액션을 일반 2D뿐 아니라, 움직이는 좌석‧물‧바람 등 특수효과를 더한 4D, 아이맥스 등으로 다양하게 즐기려는 N차 관객도 벌써부터 나타났다. 지난 주말 온라인 영화 커뮤니티 ‘익스트림무비’에서 이 영화 재관람 횟수를 묻는 이 글엔 벌써 두세 번 봤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올해 첫 1000만 대열에 합류한 ‘극한직업’에 이어 ‘엑시트’ 등 가볍게 즐기는 코미디의 인기가 계속되리란 전망도 나온다. 정덕현 평론가는 “웃을 일 없이 사회가 답답한 형국인데 누가 심각한 영화를 보려 하겠느냐” 반문하며 “코미디 혹은 정반대로 너무 힘들어서 울고 싶은 지점을 건드려주는 이야기가 호응을 얻을 것”이라 내다봤다.  
영화 '엑시트' 비하인드컷.영화 초반 용남이 허구한 날 동네 놀이터에서 철봉만 하던 장면 촬영 막간 모습이다. 재치 넘치는 발재간 연기는 조정석 아닌 다른 배우를 떠올리기 힘들 만큼 발군의 웃음을 자아낸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엑시트' 비하인드컷.영화 초반 용남이 허구한 날 동네 놀이터에서 철봉만 하던 장면 촬영 막간 모습이다. 재치 넘치는 발재간 연기는 조정석 아닌 다른 배우를 떠올리기 힘들 만큼 발군의 웃음을 자아낸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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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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