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발적 불매운동 나선 한국인, 조용히 한국친구 끊는 일본인

중앙일보 2019.08.06 14:10

"한국을 괴롭히는 일본이 나빠요. 일본 과자도 사탕도 안 먹어요."

일본 민영 TV의 와이드뉴스쇼엔 연일 한국의 반일(反日) 운동이 소개되고 있다. 

[현장에서]한국과 다른 일본 분위기
15년 인연 일본 지인 연락 끊기고
한국 지인과의 약속 일방적 취소도
한국 음식 올린 인스타엔 댓글 줄어
"절대 회복 못할 국민들간 앙금 발생"
국민들 돌아오지 못할 강 안 건너도록
양국 정치인, 문제 해결 적극 나서야

 
지난달 17일 서울 시민들이 일본의 수출규제에 항의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17일 서울 시민들이 일본의 수출규제에 항의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일제라면 과자도 먹지 않겠다는 한국 초등학생의 다짐에 일본 방송에 출연한 패널들이 놀라곤 한다. 
주말이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이는 한국 내 ‘NO(노) 아베’ 시위까지, ‘보이콧 재팬’의 뜨거운 열기는 시시각각 일본에 전달되고 있다.

한국 정치권에선 "방사능 도쿄를 관광금지구역으로 지정하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원래 비중 없는 정치인들의 극단적인 주장까지는 잘 보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도 조금씩 동요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 단절이 확대되고, 한국 관광객 감소로 지역 경제가 위축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5년째 살고 있지만, 지금처럼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화가 난 적은 없는 것 같다."

일본 대학의 한국인 교수는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일본인들의 반한 감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또 최근 세미나 참석을 위해 도쿄를 방문한 전직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이제 어떤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양국 관계가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몇십년 전부터 알고 지낸 외교 분야 전문가들의 태도,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의 말투 등 내가 느낀 일본의 공기가 그랬다"고 털어놓았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리자 분노한 한국 시민들이 3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 정권 퇴진'을 외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리자 분노한 한국 시민들이 3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 정권 퇴진'을 외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뜨겁고 직접적인 한국 내 반일 기류에 비교하면 일본의 민심은 조용하게 움직인다. 
 
도쿄의 한국 회사에 근무 중인 50대 초반의 A 씨는 "일본인 지인들이 나를 피해 다니는 게 확실하다”고 말했다. 거래처 직원으로 2003년부터 15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일본인 지인과 만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연락이 와서 술자리를 함께했는데, 최근엔 3개월째 연락이 없다"며 "상대방이 한국인을 피하고 싶다는데 내가 먼저 연락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고 했다. 
 
최근 또 다른 거래처의 일본인 직원이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과 함께 식사하는 게 부담스럽다"며 일주일 뒤로 잡혀있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경우도 있었다고 A 씨는 털어놓았다.
 
30대 후반 여성인 한국인 회사원 B 씨. 유학 시절부터 15년 이상을 일본에서 지내온 그는 도쿄 코리아타운에서 먹은 한국 음식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게 취미다. 
과거엔 사진을 올릴 때마다 일본인 친구들의 반응이 대단했지만 한·일 갈등이 격화된 뒤엔 180도 달라졌다. A 씨는 "일본인 친구들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한국과 관련된 긍정적인 글을 남기는 걸 꺼리는 것 같다"며 "한창때와 비교하면 댓글이 6분의 1, 7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런 일본 내 분위기는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후지TV와 산케이 신문이 3~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화이트 국가에서 한국 제외’조치를 지지한다는 답변이 67%였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19.4%에 불과했다. 
 
아베 총리 지지층에선 무려 81%가 찬성을 했고, 아베 총리를 지지하지 않는 층에서도 55.2%가 이번 조치에 찬성했다.
 
보수 언론의 조사뿐만이 아니다. 진보적 색채인 TBS 방송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이번 조치가 타당했다는 답변이 64%, ‘타당하지 않다’는 18%였다.
 
"임진왜란 이후 한ㆍ일 관계가 언제 좋았던 적이 있느냐"며 쉽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양국 관계에 정통한 이들 중엔 "앞으로 월드컵, 올림픽을 몇 번씩 공동개최한다 해도 회복하기 어려운 감정의 앙금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우리 국민은 뜨겁게 반발한다면, 일본 국민은 차갑게 떠나고 있다. 
양국 국민들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 않도록, 이제 정치가 움직여야 한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