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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무더기 일반고 전환에…학교들 “엑소더스 심화 우려”

중앙일보 2019.08.06 11:00
자율형 사립고 지정이 취소된 부산 해운대고 학부모들이 지난달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부산교육청의 자사고 취소 결정에 항의하며 시위하고 있다.[연합뉴스]

자율형 사립고 지정이 취소된 부산 해운대고 학부모들이 지난달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부산교육청의 자사고 취소 결정에 항의하며 시위하고 있다.[연합뉴스]

고2 아들이 서울지역 자율형사립고(자사고)에 다니는 김모(50·서울 영등포)씨는 최근 자녀 교육 때문에 걱정이 많다. 아이가 재학 중인 학교가 올해 서울시교육청의 재지정평가에서 탈락하면서 내년에 일반고 전환을 앞두고 있어서다. 아들 학년은 졸업할 때까지 자사고를 유지하지만 이대로 학교에 보내는 게 맞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김씨는 “학교가 서울시교육청의 평가 탈락에 반발해 소송전을 시작하면 어수선해질 것 같다”며 “올해 평가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분위기가 안 좋았다고 들었는데 내년에 고3이 되는 아이가 학업에 집중하지 못할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자사고 1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을 둔 박모(46·서울 노원구)씨도 현재 일반고로 전학을 알아보고 있다. 평가에서 탈락한 학교가 내년부터 일반고로 전환되면 재학생은 예전처럼 자사고 교육을 받지만, 신입생은 일반고로 입학하는 기형적인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박씨는 “아무리 2·3학년은 자사고를 유지한다고 해도 1학년이 일반고로 입학하면 혼란이 클 수밖에 없다”며 “면학 분위기가 좋은 게 자사고의 최대 장점이었는데, 이게 사라지면 굳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보낼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 자사고 지정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전국 자사고 지정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올해 교육당국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가 마무리된 가운데 탈락 자사고의 재학생들이 일반고로 전학하는 ‘엑소더스’(탈출) 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자사고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전을 벌인다고 해도 재학생 이탈, 신입생 미달 등이 이어질 경우 재정 악화로 학교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5일 경문·경희·배재·세화·숭문·신일·중앙·이대부고·한대부고 등 9개 자사고에 지정취소를 통지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들 학교의 일반고 전환을 위한 행정절차는 마무리가 됐다. 시교육청은 앞서 지난달 26일 재지정평가에서 기준점수(70점)에 미달한 자사고 8곳의 지정을 취소하기로 하고 교육부에 동의를 요청했다. 교육부는 운영평가 등 지정취소 결정 과정이 적법했다고 판단하고 지난 2일 지정취소에 동의한다는 공문을 교육청에 보냈다.
 교육부가 지난 2일 서울 9개 신일고등학교와 부산 해운대고등학교 등 10개 학교의 자사고 지정취소에 동의하면서 이 학교들의 일반고 전환이 확정됐다.   이날 자사고 지정 취소가 확정된 서울 서대문구 이대부속고등학교 모습. [연합뉴스]

교육부가 지난 2일 서울 9개 신일고등학교와 부산 해운대고등학교 등 10개 학교의 자사고 지정취소에 동의하면서 이 학교들의 일반고 전환이 확정됐다. 이날 자사고 지정 취소가 확정된 서울 서대문구 이대부속고등학교 모습. [연합뉴스]

교육계에서는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현실화하면서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현재 재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지만 학생·학부모 입장에서는 정부의 평가에 탈락한 학교에 굳이 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당장 2학기부터 일반고로 전학 가는 학생들이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자사고 재학생들이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 일반고로 이탈하는 엑소더스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대입에서 수시모집의 비중 증가로 학교 내신의 중요성이 커졌고 상위권 학생들이 경쟁이 치열한 자사고를 떠나 일반고로 전학 가는 일은 이전에도 심심찮게 목격됐다. 이럴 때마다 자사고는 일반고에서 편입생을 모집하는 방식으로 이탈 학생의 빈자리를 채워왔다. 하지만 자사고가 정부 평가에서 대거 탈락하면서 앞으로는 전출 학생이 증가하는 반면, 전입 학생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자사고에서 전출하는 학생이 전입생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최근 5년(2014~208년)간 서울지역 자사고 22곳의 전입·전출 현황을 분석해보니 2014~2016년과 비교해 2017~2018년에 전출하는 학생은 많이 증가했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4년 647명, 2015년 624명, 2016년 694명으로 매년 600~700명 수준이었다가, 2017년 901명, 2018년 838명이 됐다. 같은 기간 전입생 수도 450~500명에서 600명 이상으로 늘었지만, 전출 학생 수의 증가 폭이 더 크다. 임성호 대표는 “문 대통령이 자사고·외고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불안감을 느낀 학생·학부모가 발 빠르게 움직인 것 같다”며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학생 수 감소가 자사고 운영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자사고는 정부 지원금 없이 등록금과 재단 전입금만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학생 모집이 미달하면 재정 위기로 이어진다. 실제로 올해 학교 요청으로 일반고로 전환이 결정된 군산중앙고(전북)와 경문고(서울)도 학생 미달 사태를 겪었다. 군산중앙고는 올해 신입생 280명 모집에 174명밖에 지원하지 않아 입학경쟁률 0.62대 1을 기록했고, 경문고도 입학경쟁률이 0.69대 1이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 자사고의 한 교장은 “정부는 현재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기 때문에 피해가 없다고 하지만 이런 변화 자체가 학생·학부모에게 큰 혼란”이라며 “지정 취소 자사고들은 앞으로 학생 이탈, 신입생 미달, 재정 악화 등 삼중고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서울 자사고의 한 교장은 “정부가 자사고의 숨통을 조여서 학교 스스로 백기를 들게 하려는 전략 같다”며 “학교가 자사고로 운영되는 10년 동안 구성원들이 좋은 학교를 만들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이렇게 돼 씁쓸하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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