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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호의 시선] 참 안 맞았던 두 사람, 문 대통령과 아베

중앙일보 2019.08.05 00:22 종합 28면 지면보기
신용호 논설위원

신용호 논설위원

처음부터 힘겨웠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 사이 말이다. 두 사람은 당선 축하를 위한 첫 통화(2017년 5월 11일)에서부터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과 ‘수용하지 못하는 국민 정서’로 부딪혀 파열음을 냈다. 그다음 통화(5월 30일)에선 북한 미사일 도발을 놓고 ‘오로지 압박’과 ‘압박+대화’로 접근법에 차이를 보였다. 그해 7월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에서 첫 회담을 갖는다. 거기서도 여전히 위안부 문제를 놓고 맞섰다.
 

첫 당선 축하 통화부터 파열음
평창 회담선 일촉즉발 상황까지
이젠 대통령이 ‘해법 주도권’ 갖길

잠깐 뜻이 맞은 적이 있다. 두 번째 회담이었다. 9월 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에서 북한의 도발로 긴장이 크게 고조되자 대화보다 최대한의 압박 강화에 합의했다. 과거사 문제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당시는 김정은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연이어 강행할 때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베 총리가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하자 문 대통령이 축하 전화를 건다. 이때 아베 총리는 “불고기를 먹으며 선거 피로를 풀었다”고 친근감을 표할 정도로 사이가 괜찮았다.
 
그 정도가 마지막이었다. 그해 말 위안부 대응을 놓고 거칠게 부딪힌다. 7월 구성된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TF가 그동안 검토했던 결과를 발표하면서였다. 문 대통령도 그때 합의 파기를 시사했다. 아베 총리는 “합의는 1mm도 못 움직인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평창올림픽 불참도 거론했다. 결국 평창에 오지만 거기서 사달이 난다.
 
지난해 2월 9일, 개막식 직전 열린 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여를 견인하기 위한 한·미 군사 훈련 연기가 불만인 듯 “훈련을 연기할 단계가 아니다”고 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이 “이 문제는 주권과 내정에 관한 문제다. 총리께서 직접 거론하는 것은 곤란하다”라고 반박했다. 이를 본 윤영찬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일촉즉발’이라 표현했다. 일촉즉발이란 닿기만 해도 곧 폭발한다는 뜻이다. 거의 싸우기 직전까지 간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아베 총리는 리셉션 행사에 통보도 없이 35분을 늦었다.
 
석 달 뒤 열린 도쿄 정상회담 오찬에선 한글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1주년 축하드립니다’라고 쓰인 딸기 케이크가 나왔다. 아베의 깜짝 선물에 참석자들이 손뼉을 쳤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케이크를 먹지 못했다고 한다. 과거 청와대 수석 시절 치아를 10개나 뽑은 문 대통령이다. 그래서 한국 측 참모들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일본 측 참모들은 아베 총리가 야심차게 준비했는데 다소 실망했다고 한다. 일본측에서도 “치아 문제로 단 음식을 잘 못 드신다고 들었다”고 했다.
 
참 안 맞았던 두 사람이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나름 많이 참았다 한다. 정상회담 때 문 대통령의 발언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거나 한·미·일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조에 소극적이라고 ‘한국 탓’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다. 문 대통령이 무엇보다 불만인 건 북한 문제에 대한 어깃장이었다고 한다. 여권 핵심 인사는 “아베 총리는 시종 남북·북미 간 화해에 불만이 많았고 제재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말했다. 다른 핵심 관계자도 “회담에서 아베 총리 때문에 열 받았다는 소리를 몇번이나 들었다”고 했다. 물론 그쪽 입장에서도 할 말이 많을 거다. 성의껏 준비한 케이크에 손도 대지 않은 것은 상대에게 실례가 될 수 있다. 역사문제에 소신이 뚜렷한 ‘강직한 변호사’는 아베 총리로서도 충분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결국 등을 완전히 돌리기 직전까지 왔다.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보복 조치가 내려지면서다. 위안부·강제징용 등 역사 문제라는 고질적 갈등 구조는 정상의 화해를 어렵게 했고 경제 전면전까지 치르게 됐다. 이번 조치엔 동북아 지형을 바꾸겠다는 일본의 저의가 담겼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아쉬운 건 어려웠겠지만 두 사람이 신뢰와 친분을 조금씩이라도 쌓으며 허심탄회하게 대화했다면 이 지경까지 왔을까 하는 점이다. 일본 강점기 흥남시청 농업과장을 지내다 월남한 부친을 둔 인권변호사와 일본 외무상 아버지의 비서를 거쳐 정치에 입문한 보수주의자. 출신부터 인생의 경로까지 참 다른 두 사람이다.
 
양국 간 갈등은 여기서 더 나가선 안 된다. 현실적인 판단과 냉철한 이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충돌의 기간은 최대한 짧아야 한다. 지금이 충돌의 최고점이어야 한다. 이후는 내리막이어야 한다. 결국은 풀려야, 풀어야 할 문제다. 아베 총리는 경제 보복으로 ‘갈등의 이니셔티브’를 쥐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이 현명한 대처로 '해법의 이니셔티브'를 쥐었으면 한다. 행여 다시 아베 총리를 만난다면 그를 훌쩍 뛰어넘는 문 대통령이기를 바라면서.
 
신용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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