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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반일 감정 절제해야 반한 감정도 누그러뜨릴수 있다

중앙일보 2019.08.05 00:21 종합 29면 지면보기
허우성 경희대 비폭력연구소장

허우성 경희대 비폭력연구소장

아베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 국가(수출 심사 우대국) 리스트에서 제외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맞대응을 천명했다. 한·일 관계가 어디까지 악화할지 모를 지경이다. 최근 한·일 정부의 말이나 행동을 보면 과거에는 보기 힘들 정도로 격화돼 있다. 격화와 과잉의 증거는 상대에 대한 분노와 혐오·적대감을 보면 안다. 반일 감정이나 반한 감정도 감정 과잉의 상태다.
 

일본은 헤어질 수 없는 이웃
관계 나쁘면 안보 불안 커져

붓다의 오온설(五蘊說)에 따르면 ‘나’라는 인격은 신체(色)·느낌과 감정(受)·생각(想)·의지(行)·의식(識) 등 다섯 요소(오온)의 결합체다. 사람이 태어나 몸과 마음이 성장하면 오온도 증가한다. 즐거운 느낌과 불쾌한 느낌을 유발하는 대상이 늘어나고, 즐거움은 갈망으로, 불쾌감은 적대감과 분노로 변한다. 붓다는 과잉된 오온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하나하나를 악마·장애물·종기로 부르며 “바로 관찰하라”고 설파했다.
 
살다 보면 갈망과 적대감은 강해지고 불만도 많아진다. 그래도 우리는 세상을 버리기 어렵다. 개인적 욕심 때문이기도 하고 정치가 뱀의 똬리처럼 우리를 휘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잉의 정도를 줄이는 길밖에 없다.
 
개인감정 과잉도 문제이지만 집단 감정 과잉은 더 큰 문제다. 집단 감정은 치열한 집단 이기주의(tribalism)에서 온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정치 이념이나 민족에 따라 편을 갈라 맞서고, 심지어 적의와 분노를 드러내며 갈등하는 집단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반일 감정도 그런 사례다. 반일 감정을 갖고 태어나는 한국인은 없다. 문화와 교육·언론이 그것을 조장한다. 한 번 집단적 반일 감정이 일어나면 그것을 명상으로 관찰하기도 어렵고, 결과를 냉정하게 따지기도 힘들다. 집단 감정에 광기가 더해지면 심리적·물리적 테러를 낳을 수도 있다.
 
현재의 반일 감정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이 초래한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인해 일어난 측면이 강하다. 한국 사법부의 판단과 허술한 외교정책과 연관된 것임에도, 정부 주요 인사들과 일부 언론은 국민의 반일 감정을 자극한다. 이는 무능과 무책임을 감추려는 또 다른 무책임한 행위다.
 
반일 감정은 절제해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점이 있다. 하나는 일본인의 반한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인도 반일 감정에 대해 반한 감정이나 혐한·불신으로 맞설 것이다. 류성룡은 『징비록』을 시작하면서 “원컨대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화평을 잃지 마소서”라는 신숙주의 유언을 언급했다.
 
두 번째는 우리 사회 내부의 분노나 증오를 줄여준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외교력을 발휘하라”고 말하는 사람을 토착 왜구로 모는 건 저급한 진영 논리로 우리 사회를 분열시킬 뿐이다. 일본과의 화평을 주장한 류성룡이 토착 왜구 1호란 말인가? 그는 임진왜란의 참화를 목격하면서 화평이 생존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꼈을 뿐이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죽창’ 운운 등은 반일 감정을 부추겨 우리의 냉정한 판단을 해친다. 만일 반일 여론과 외교적 오판 때문에 한·미·일 안보체제에 회복하기 힘든 균열이 생긴다면 자유민주주의 한국의 운명은 위태로워질 것이다.
 
더는 반일 감정이나 적대감을 선동하면 안 된다. 우리 사회에 차고 넘치는 것이 그런 부정적 감정들이고, 이것들이 풀려나 사람을 늑대처럼 사납게 만들고 있다. 한·일 갈등에서 분노와 적대감을 자제하고 탁월한 계산력을 발휘해, 우리가 이기면 좋은 일이고 양국이 함께 이긴다면 더 좋은 일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처럼 일본은 ‘헤어질 수 없는 이웃’이기에 감정이 있어도 잘 삭혀서 공존할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허우성 경희대 비폭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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