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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보조금 중지” 압박에 소녀상 전시 중단…아사히 1면서 비판

중앙일보 2019.08.05 00:03 종합 8면 지면보기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평화의 소녀상’ 등이 포함된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가 4일 중단됐다. 이날 임시 벽이 설치된 전시관 출입구 앞에 관람객과 작가, 경비인력 등이 모여 있다. [연합뉴스]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평화의 소녀상’ 등이 포함된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가 4일 중단됐다. 이날 임시 벽이 설치된 전시관 출입구 앞에 관람객과 작가, 경비인력 등이 모여 있다. [연합뉴스]

일본에서 전시 중이던 ‘평화의 소녀상’이 강제 전시 중단 사태를 맞으면서 일본 내에서 문화단체의 항의 성명 등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아이치현 트리엔날레 출품작
전시 기획단 “전후 최대 검열사건”
일본펜클럽 “전시 속개하라” 성명

지난 1일부터 10월 14일까지 일본 아이치현에서 열리는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 출품된 소녀상은 전시 사흘 만인 3일 주최 측으로부터 철거 명령을 받았다. 전시회 실행위원장인 오무라 히데아키(大村秀章) 아이치현 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테러 예고나 협박으로 여겨지는 전화나 e메일이 오고 있다”며 상황 악화를 대비해 전시 중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오무라 지사는 현재는 무소속이나 원래 자민당 소속으로, 고이즈미 내각에서 경제산업성 정무관(차관보급), 아베 1기 내각에서 내각부 부대신(차관급)을 지낸 ‘친 아베’ 인사였다. 때문에 ‘테러 예방’ 등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소녀상 전시 장소인 나고야시의 가와무라 다카시(河村隆之) 시장은 “(소녀상 전시는)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는 것”이라며 전시 중단을 촉구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3년마다 열리는 일본 최대 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대한 보조금 교부 중지를 시사하는 등 소녀상 철거를 압박했다.
 
‘표현의 부자유전’ 팸플릿이 놓여 있는 ‘평화의 소녀상’. [연합뉴스]

‘표현의 부자유전’ 팸플릿이 놓여 있는 ‘평화의 소녀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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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전시를 주도했던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기획전 실행위원들은 철거 결정이 나오자 즉각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로 학계 인사들로 구성된 이들은 “전시 중단 결정은 일방적으로 통보됐다”며 “현대 일본의 표현의 부자유 상황을 생각하는 기획을 주최자가 스스로 탄압하는 것은 역사적인 폭거”라고 비판했다. 이어 “전후 일본 최대의 검열사건이 될 것”이라며 “일방적인 중지 결정에 대해 법적 대항 수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 한 소녀상이 일본에서 전시 중 철거되기는 2012년 도쿄도립미술관 전시회 이후 두 번째다. 7년 전엔 20㎝ 크기의 미니 소녀상이 전시됐는데 ‘정치적인 표현물’이라는 이유로 철거됐다. 이번 전시회에 소녀상이 초대된 이유 역시 이런 박해에 근거한다. 같은 기획전 내 다른 전시물들 역시 평화헌법 9조를 다루거나 히로히토(裕仁) 전 일왕의 초상을 훼손하는 등의 이유로 과거 철거당한 경험이 있는 작품들이다.
 
‘일본펜클럽’은 철거 당일 항의 성명을 발표하며 전시 속개를 요구했다. 성명은 “동의하든 반발하든 창작과 감상 사이에 서로 의사소통할 공간이 없다면 예술의 의의를 잃고, 사회의 추진력이 되는 자유의 기풍도 위축돼 버린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가와무라 시장과 스가 장관의 발언에 대해 “이런 발언은 정치적 압력 그 자체”라면서 “헌법 21조 2항이 금지하고 있는 ‘검열’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아사히신문도 이날 1면 기사에서 “또 하나의 ‘표현의 부자유전’이 생겨버린 결과는 중대하다”며 “소리를 낮추고 숨 죽이며 지켜보던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법학자인 사카구치 쇼지로(阪口正二郎) 히토쓰바시대대학원 헌법연구과 교수는 NHK에 “일·한 관계가 현재 매우 어려운 상황이어서 정치적인 물의나 비판이 일어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시 중지란 (상황까지) 내몰린 것은 매우 안타까운 결과이고 있어선 안 되는 사태”라며 “어디까지나 정치와 문화는 분리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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