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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미국, 한·일 중재 두 문장…일본·호주와 전략대화는 16개항

중앙일보 2019.08.05 00:03 종합 10면 지면보기
강경화 외교부 장관(뒷줄 오른쪽 둘째)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앞줄 왼쪽), 왕이 중국 외교부장(앞줄 왼쪽 둘째),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맨 왼쪽) 등이 지난 2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부 장관 회의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뒷줄 오른쪽 둘째)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앞줄 왼쪽), 왕이 중국 외교부장(앞줄 왼쪽 둘째),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맨 왼쪽) 등이 지난 2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부 장관 회의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 국무부는 2일 홈페이지에 ‘장관급 3자 전략대화 공동성명’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게재했다. 1724개 단어, 16개 항으로 일본의 화이트 국가 배제 결정 16시간 전인 1일 오후 4시(현지시간, 한국시간 오후 6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린 태국 방콕에서 이뤄진 미·일·호주 외교장관 회담의 결과물이었다. 한국으로선 일본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막판 관여가 절실했던 시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고노 다로 일본 외상, 머리스 페인 호주 외교장관과 함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 발전을 위해 능동적으로 협력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시각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한-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회의에 참석 중이었다.
 

ARF 보도문에 동맹 순위 드러나
폼페이오, 나흘간 한·일 언급 1회뿐
인도·태평양 안보구상 한국 소외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결과도 3일 국무부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폼페이오 장관과 강 장관, 고노 외상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달랑 두 문장(64개 단어)이었다. 일본 조치에 대한 언급 없이 “한·미·일 관계의 중요성을 확인했다”는 원론만 담겼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2일 “미국이 전날 밤까지 (화이트 국가 배제를 막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고 소개했지만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동선을 보면 그의 ‘동맹 우선순위’는 우리 생각과 다른 듯했다.
 
ARF 기간(나흘) 폼페이오 장관의 한·일 관계 언급은 단 한 차례. 지난달 31일 오후 기자회견에서였다. “양국이 긴장을 해소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스스로(together themselves) 함께 찾을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이었다. 2일 일본의 화이트 국가 결정 이후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ARF 종료 직후 폼페이오는 호주로 날아갔다. 마크 에스퍼 신임 미 국방장관도 합류했다. 직후 “아시아 지역에 재래식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냈다. 트럼프 행정부에 중요한 것은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구상으로, 역내 절대패권을 유지하는 것이고 이에 적극 동참하는 일본·호주와 신중하게 접근하는 한국은 같은 동맹국이라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2015년부터 5년 내리 ARF를 취재했지만 이번처럼 북한의 존재감이 없는 경우는 처음이다. ARF는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역내 다자 안보 협의체로, 늘 ARF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번엔 이용호 외무상이 불참한 데다 김제봉 주태국 북한대사는 발언 신청도 하지 않았다. 강 장관은 ARF에서 “북한의 미사일 및 발사체 발사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지만 공론화되진 않았다.
 
이와 관련, 현지에서 공감하기 힘든 외교부 고위 당국자의 발언이 나왔다. 그는 “일단 (북·미) 회담에 나오면 (미사일) 시험발사가 어려우니 그 전에 해서 신형 단거리 미사일의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쿨(cool)하게 생각하면 그 해석도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게 과연 쿨한 해석일까.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 단거리 미사일 도발의 위험성을 평가절하하는 것도 문제인 마당에,  한국에 직접 위협인 미사일 도발을 우리 외교 당국자가 남 얘기 하듯 해도 될까. 지금의 안보 위기는 일본 한 나라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다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말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우리 정부 당국자가 도발을 북한의 입장에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보일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쿨’이란 단어는 그럴 때 쓰는 게 아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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