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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배틀그라운드] "육군 유격? 해군은 전투수영"···천안함서 이렇게 살아남았다

중앙일보 2019.08.04 05:00
23일 진해 제8전투훈련단에서 성인봉함 장병은 생존훈련에 참여해 이함 및 전투수영 능력을 배양했다. 영상캡처 강대석 기자

23일 진해 제8전투훈련단에서 성인봉함 장병은 생존훈련에 참여해 이함 및 전투수영 능력을 배양했다. 영상캡처 강대석 기자

 
‘비상 탈출’ 장비에 탑승한 군 장병은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탈출한다. 전쟁은 장기전이다. 일단 살아남아야 다음 전투에 뛰어들 수 있다. 탈출은 비겁한 도망이 아니다.

"악!" 소리나는 해군 생존 훈련
'수중행군' 파도 가르며 전투수영
7m 높이 '직립 다이빙' 바다로 뛰어
훈련 효과…천안함 피격 58명 생존

 
전투기 조종사는 추락하기 직전 비상 탈출해 낙하산 펴서 땅으로 내려온다. 전차와 장갑차 승무원은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온다. 해군 장병도 함정이 공격받거나 좌초해 침몰할 때 바다 한가운데에서 탈출해 생존할 수 있을까. 실제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2010년 3월 천안함은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적의 기습에 해군 장병 46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다. 그러나 더 많은 58명은 생사를 건 탈출에 성공한 뒤 구조됐다. 매년 전투수영 훈련을 반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훈련 덕분에 당황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적의 어뢰공격으로 함정이 침수되는 상황을 가정해 신속하게 피해를 복구하고 함정과 승조원들의 생존성을 확보하기 위한 손상통제훈련을 하고 있다. 해군은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함정 선박 등에서 재난시 대응기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2020년까지 각 함대에 생존훈련장을 건립할 계획이다. 중앙포토

적의 어뢰공격으로 함정이 침수되는 상황을 가정해 신속하게 피해를 복구하고 함정과 승조원들의 생존성을 확보하기 위한 손상통제훈련을 하고 있다. 해군은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함정 선박 등에서 재난시 대응기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2020년까지 각 함대에 생존훈련장을 건립할 계획이다. 중앙포토

 
생존훈련은 어떻게 이뤄질까. 해군에서는 함정 화재를 진압하는 ‘소화’, 선체 손상을 복원하는 ‘방수’ 훈련과 함께 전투수영 훈련으로 생존 능력을 키운다. 지난달 24일 진해 해군기지에서 이뤄진 전투수영 훈련에 참여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유튜브에서 동영상 볼 수 있습니다.)
 
빨간 모자 쓴 조교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지내 82육상훈련전대에 들어서자마자 ‘오늘 힘들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날 훈련부대인 성인봉함 함장 김성우 중령의 감독 아래 함정 장병 모두가 집결했다. 해군 규정에 따라 치료받거나 임신한 경우가 아니라면 예외는 없다.
 
기자는 전투수영 훈련에 앞서 준비체조 동작을 힘겹게 따라하고 있다. 영상캡처 공성룡 기자

기자는 전투수영 훈련에 앞서 준비체조 동작을 힘겹게 따라하고 있다. 영상캡처 공성룡 기자

 
처음부터 포기할 뻔했다. 준비체조를 시작했는데 간단한 몸풀기가 아니다. 비교적 익숙한 국군도수체조가 끝난 뒤부터는 처음 보는 고난도 동작이 연이어 나왔다. 목소리가 작다고 10번 반복할 동작을 20번 하기도 했다. “악!!” 모든 구령은 ‘악’으로 통일했다.
 
체조가 끝나자 곧바로 2.3㎞ 뜀 걸음을 시작했다. “군복 입었으면 군인이야. 군인이 포기합니까?” 전투수영반장 전현수 준위가 뒤쳐지는 기자를 독려했다. ‘육군에 유격훈련이 있다면, 해군은 전투수영훈련을 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준비체조가 끝난 뒤 군가를 부르며 단체 구보를 하고 있다. 영상캡처 강대석 기자

준비체조가 끝난 뒤 군가를 부르며 단체 구보를 하고 있다. 영상캡처 강대석 기자

 
태양은 뜨거웠지만, 바닷물은 차가웠다. 바다에 띄운 해상 훈련장(바지선)이 목표 지점이다. ‘구명의’를 착용했지만 쉽지 않았다. 실내 수영장과는 차원이 달랐다. 파도에 밀려 앞으로 나가기 어렵고,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휩쓸리기도 한다. 갈지자로 수영하다 보니 직선으로 100m 떨어진 바지선이지만 더 먼 거리를 돌아서 수영한 뒤 도착했다.
 
물도 많이 먹었다. 눈과 귀로 들어오는 바다 짠물을 피할 수 없다. 해군 장병은 속도가 느린 기자를 추월해 앞으로 나갔다. 기자는 이들보다 앞서 출발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도착했다.
 
해상 훈련장까지 배영으로 이동하는 장병들. 비가 내리는 가운데 파도를 이겨내며 헤엄치고 있다. 영상캡처 강대석 기자

해상 훈련장까지 배영으로 이동하는 장병들. 비가 내리는 가운데 파도를 이겨내며 헤엄치고 있다. 영상캡처 강대석 기자

 
물에 젖은 몸은 무겁다. 전투복을 착용한 채로 바다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밧줄을 엮어 만든 하선망을 잡고 물 밖으로 나오자 온몸에서 물이 쏟아져 내려간다. 실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영복을 입고 탈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입고 있던 근무복이나 전투복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함정에서는 전투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근무한다.
  
해상 훈련장인 바지선에 도착한 해군 장병이 하선망을 타고 올라가고 있다. 영상캡처 박용한

해상 훈련장인 바지선에 도착한 해군 장병이 하선망을 타고 올라가고 있다. 영상캡처 박용한

 
이번엔 다이빙이다. 7m 높이에서 바다로 뛰어야 한다. 본격적인 이함 훈련이다. 해군에서는 함정을 포기하고 긴급하게 탈출하는 과정을 ‘비상 이함’으로 부른다. 함정은 선체 아래 일부만 바다에 잠긴다. 따라서 함정 크기에 따라 실제로 바다로 뛰어내리는 높이는 2~6m 정도다. ‘높은현측 이함법’ 훈련을 하는 이유다.
 
해군 장병이 전투수영훈련장에서 함정 가장자리를 묘사한 훈련대에서 바다에 뛰어들고 있다. 사진=해군본부

해군 장병이 전투수영훈련장에서 함정 가장자리를 묘사한 훈련대에서 바다에 뛰어들고 있다. 사진=해군본부

 
일단 무서웠다. 3층 높이에서 몸을 던진다는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할 수 있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계단을 바라보니 생각이 복잡해졌다. 성인봉함 포술장 정호정 소위는 “처음 훈련할 때보다 오히려 다이빙해본 뒤 훈련할 때 더 두려웠다”면서도 “훈련을 수차례 반복했기 때문에 이제는 두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입수준비 끝!" 어디선가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망설임도 없이 기관장 김유리 대위가 가장 먼저 바다로 뛰었다. 기자는 겁먹은 심장이 더 작아졌다. 한편으론 ‘뛰어내리지 못하면 창피하겠다’는 압박감도 들었다.
 
훈련대에 오른 장병이 높은현측 이함 훈련에 앞서 준비동작과 보고를 하고 있다. 영상캡처 공성룡 기자

훈련대에 오른 장병이 높은현측 이함 훈련에 앞서 준비동작과 보고를 하고 있다. 영상캡처 공성룡 기자

 
‘포기할까. 뛰어내릴까’ 계단을 오르면서도 여러 번 결심이 흔들렸다. 다행인지 기자는 7m보다 낮은 5.5m 높이 훈련대 앞줄에 섰다. 역시 군대는 줄을 잘 서야 한다. “입수!” 모든 준비가 끝난 뒤 조교가 외쳤다. 발아래 바다를 힐끗 쳐다본 뒤 잠시 망설였다.
 
다이빙은 자세가 중요하다. 허리와 고개를 수직으로 세우고 물에 들어가야 한다. 이때 한 손으로 코를 잡고, 다른 손으로 남자 군인은 낭심을 보호하고, 여자 군인은 팔꿈치를 잡는다. “물에 들어갈 때까지 눈을 뜨고 있어야 합니다.” 조교가 여러 번 강조했다. 눈을 뜨고 있어야 올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균형을 잃으면 머리나 등이 먼저 수면에 충돌해 다칠 수 있다.
 
"입수" 훈련 조교 구령이 나온 뒤 기자는 바다로 뛰어내렸다. 영상캡처 공성룡 기자

"입수" 훈련 조교 구령이 나온 뒤 기자는 바다로 뛰어내렸다. 영상캡처 공성룡 기자

 
일단 뛰었다. 그러나 눈을 감았다. 오히려 눈을 감고 있으니 두려움은 더 커졌다. 몸이 내려가면서 바람 소리가 크게 귓가를 스쳐 갔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걸려 물에 들어갔다. 오히려 물에 들어가면서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방심했을까. 긴장이 풀어지면서 짠물을 크게 먹었다.  
 
"양호!" 조교가 외쳤다. 실력보다 후한 평가를 줬다. 오전 훈련을 마치고 육상으로 올라와서는 젖은 몸 그대로 점심을 먹었다. 이날 국물 요리는 평소 좋아하던 재첩국이 나왔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수영하며 짠 바닷물을 많이 먹어서인지 비슷하게 느껴졌다. 오전 훈련받으며 힘이 빠져 푸짐한 해군 식단을 앞에 두고도 먹을 힘이 나지 않았다.
 
오전 훈련이 끝난 뒤 젖은 군복은 입고 배식 받는 장병. 영상캡처 강대석 기자

오전 훈련이 끝난 뒤 젖은 군복은 입고 배식 받는 장병. 영상캡처 강대석 기자

 
“수박 드세요. 오후 훈련도 하려면 수분 섭취 중요합니다” 전탐장 박종태 상사가 나무 그늘에 쉬고 있던 기자에게 다가와 수박 한 조각을 건넸다. 이후에도 장병 여러 명이 수박을 들고 기자를 찾아와 격려해 줬다. 덕분에 힘을 내 오후 훈련을 시작했다. 오전보다 더 어려운 체조를 한 뒤 다시 해상 훈련장까지 헤엄쳐 도착했다.  
 
“우리함은 피격됐다. 총원 이함한 뒤 생존하라!” 이함 명령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비상 이함한 뒤 구명정에 승선하는 훈련이다. 함정에 탑재된 구명정은 수동으로 띄울 수 있고, 함정이 침몰하면 자동으로 펼쳐지기도 한다. “이함! 이함! 이함!” 명령을 복창한 뒤 빠르게 함정을 탈출해 구명정으로 헤엄쳐 갔다.
 
먼저 구명정에 오른 장병이 전우를 끌러 올려 구조하고 있다. 영상캡처 박용한

먼저 구명정에 오른 장병이 전우를 끌러 올려 구조하고 있다. 영상캡처 박용한

 
구명정에는 식수와 조명탄 등 생존과 구조에 필요한 장비가 준비돼 있다. 영상캡처 박용한

구명정에는 식수와 조명탄 등 생존과 구조에 필요한 장비가 준비돼 있다. 영상캡처 박용한

 
힘을 합쳐야 살 수 있다. 구명정에 먼저 올라간 장병 2명이 한 명씩 끌어 올렸다. 물에 젖은 전우는 무겁다. 구명정에 배정된 25명이 모두 승선할 때까지 동료 전우를 구조했다. 구명정에는 비상식량ㆍ낚시 도구ㆍ신호탄ㆍ의약품 등 생존에 필요한 물품 28종을 담은 생환 장비가 들어있다. 구명정은 레이더 탐지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일단 구명정에 올라타면 생존 가능성이 커진다.
 
구명정이 없을 경우 옆 장병과 팔과 다리를 엮고 띠와 고리를 결합해 흩어지지 않도록 원형 대열을 유지한다. 영상캡처 공성룡 기자

구명정이 없을 경우 옆 장병과 팔과 다리를 엮고 띠와 고리를 결합해 흩어지지 않도록 원형 대열을 유지한다. 영상캡처 공성룡 기자

 
구명정이 없어도 생존할 수 있다. 수중에서 장병 25명이 손을 잡아당겨 최대한 가깝게 붙어 원형을 만들었다. 좌우 양쪽 장병과 다리와 팔짱을 끼고 구명의 ‘직조띠’와 ‘고리’를 서로 연결해 흩어지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 서로 묶여 있으면 체력소모와 공포심을 줄이면서 구조를 기다릴 수 있다.
 
‘수중행군’은 마지막 훈련이다. 물속에서 대열을 형성해 안전한 수역 또는 집결지로 이동하거나 상어 습격에 대비한다. 힘을 합쳐 단결심을 고취해 삶의 의욕과 자신감도 키울 수 있다. 5명 단위로 조를 이루고 순서대로 허리를 다리로 꼬아 엮어 1열 종대를 만든다.  
 
수중 행군으로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하는 장병. 영상캡처 강대석 기자

수중 행군으로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하는 장병. 영상캡처 강대석 기자

 
사람으로 만든 조정과 같다. 조장을 맡은 무장장 정경용 원사가 주는 신호에 맞춰 양팔로 노를 저으며 행군했다. 통신관 이승엽 소위가 1번을 맡았다. 기자는 작전관 김현민 대위와 추기부사관 윤성환 상사 사이에 들어갔다. 앞뒤에 연결된 장병을 놓치지 않으면서 양팔로 노 젖기가 쉽지 않았다. 호흡이 맞지 않으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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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막바지에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기상 환경은 더 어려워졌지만 서로 믿고 의지하면 난관을 이겨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갑판사관 안민수 대위는 “전투수영 훈련으로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훈련을 마친 장병은 환하게 웃으며 서로 격려했다. 전우애가 한층 더 두터워지는 순간이다.
 
진해 =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영상 = 강대석·공성룡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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